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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후손인 발해는 어떻게 세워졌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가 동북쪽 이민족들을 통제 관리하였는데 요서지방의 영주 지역에 고구려 유민, 말갈족, 거란족이 모여 살았습니다. 틈틈히 고구려의 재건을 노리고 있던 대중상, 대조영, 걸사비우 등이 조금씩 세력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당나라의 가혹한 통치에 반발한 거란 세력이 족장인 이진충과 손만영을 필두로 반기를 들었고, 당의 유주 지역까지 공격하여 막대한 타격을 입히게 됩니다. 여기서 대중상, 대조영의 고구려 유민 집단과 걸사비우를 필두로 한 말갈족 들도 함께 하였습니다. 사실상 고구려 유민과 말갈은 고구려 연합국이었으니 같은 국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반란이 장기화되어 당에서도 군대를 보내어 역공을 하였고, 거사가 실패로 돌아갈 시점에 대중상, 대조영의 고구려 유민집단과 말갈족은 요서 지방의 동만주 지역으로 이동하였고, 고구려의 옛 땅이었던 동모산을 근거로 주변에 성을 쌓고 연해주까지 확장하였고, 고구려를 이은 새로운 국가를 선포하였고 국호를 '진'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동모산에도 옛 고구려 사람들이 터전을 잡고 있었으나 고구려 부흥의 명분이 있어 큰 전쟁 없이 협상 및 회유 등으로 영토를 복속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대진국이라고 불리며, 정복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혀갔으며, 해동성국이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막강했습니다. 대중상 이후 대조영이 왕이 되자 당에서는 막강해진 진국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그에게 발해군왕이라는 형식적인 책봉 서신을 보내왔으나 대진국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며 황제국으로서 면모를 이어갑니다. 그렇지만 당시 당의 국제적인 영향력이 큰 시대라 대진국도 외교적으로 발해라는 국호를 병용하여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698년 건국 시에는 진이었다가 713년에 발해라는 국호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문왕 때 왕권을 강화하는 시기인 774~779년에 국호를 고려(고구려도 장수왕 이후 고려로 국호 변경)로 썼다가 왕권강화정책이 실패로 돌아간 780년부터는 일본의 천황에게 문왕이 보낸 서신에도 발해국왕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후에는 발해로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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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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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조선은 무슨 뜻을 가지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이란 명칭이 ‘땅이 동쪽에 있어 아침 해가 선명하다(地在東表 朝日鮮明)’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는 조선이란 한자의 뜻을 새긴 풀이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중국의 만주어 관할 구역의 경우 과거 우리의 지역이었기에 그 어원이 ‘주신(珠申)’에서 왔고, 조선, 숙신, 여진 등이 모두 같은 어원을 지녔다는 설이 있고 단군신화에서 나오는 ‘아사달’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가장 이른 시기에 제기된 설로, 위나라 사람 장안(張晏)은 습수(濕水)·열수(列水)·산수(汕水)라는 강 이름에 조선이란 명칭의 연원이 있다고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현재까지로선 조선이란 국호의 어원은 명확치 않은 상황입니다. 고조선이란 국호는 원래는 그냥 조선이었지만 후대의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서 오랜 예전의 조선이라는 뜻입니다. 조선이라는 국호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처음 사용하였는데 고조선은 왕검조선(王儉朝鮮))이라 하였고 이는 기자조선(箕子朝鮮)이나 위만조선(衛滿朝鮮)과 구분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 후로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는 단군조선을 ‘전조선(前朝鮮)’, 기자조선을 ‘후조선(後朝鮮)’이라 표기하였습니다.조선이라는 뜻은 한자의 뜻대로 동방의 해뜨는 나라로 예의가 있고 고운 나라라는 뜻이라고 풀이하지만, 이것이 고조선이 개국할 당시에도 그런 뜻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중국의 산해경이라는 고서에도 조선이 동방예의지국이라 되어있고, 공자도 조선의 예를 배울 수 있다면 뗏목을 띄워서라도 조선에 가고 싶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 뜻을 유추하여 조선이 '동방의 해뜨는 나라이며 예가 바르고 높은 나라'라는 뜻이 아닐까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후한서 동이열전에도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내용이 나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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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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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를 먹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한가요? 해외에서 수입까지 해서 먹는 다고 알고 있는데~~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홍어를 삭혀서 먹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한 것 같습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바이킹의 나라 아이슬란드의 경우 상어를 삭혀서 먹습니다. 전라도 잔치에 홍어가 빠지면 안되듯이 아이슬란드의 경우에도 잔치에 삭힌 상어가 빠지면 안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홍어의 경우 먹게 된 유래를 살펴보면, 여러가지 설들 중에서 고려시대 몽고와의 항쟁 때 고려 조정이 몽고에 항복을 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삼별초 군이 남해안 일대를 최후의 보루로 진을 펼쳤습니다. 이에 고려 조정에서는 삼별초를 토벌하기 위해 토벌군을 내려보냈고 삼별초군을 고립시키기 위해 인급의 모든 주민들을 내륙으로 이주시키는데 흑산도 앞 영산도 섬사람들이 나주의 한 포구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곳이 영산포입니다. 사람들은 해마다 홍어를 잡아 흑산도에서 영산포로 실어나르는 도중에 홍어가 발효되어 삭아버리게 되었고,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났지만 썩지는 않은 것에 이상히 여겨 먹어보았더니 독특한 맛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맛에 매료되어 지금까지 이어오는 것이라는 설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흑산도는 삭히지 않은 홍어가 유명하고, 영산포는 많이 삭힌 홍어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홍어가 썩지 않고 발효되는 것은 개체의 요소 배출 체계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른 생물들은 우리가 소변을 볼 때처럼 요소를 몸 밖으로 배출하나 홍어의 경우에는 피부로 보냅니다. 그래서 홍어가 죽게 되면 이 요소가 분해되어 암모니아로 변환되는데 이것이 코를 찌르는 냄새를 발생시키지만 부패균을 억제하여 오랜 기간 썩지 않고 발효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연골여류의 특징이라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삭혀서 먹는 상어의 경우에도 동일한 원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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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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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는 여러 문명이 있습니다. 흥망성쇄를 거듭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과거 문명의 대부분은 식량과 자원이 풍부한 강 주변의 비옥한 토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수메르,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이집트 등 주요 문명들이 그러했습니다. 이 당시 초기에는 대부분이 부족국가로 비옥한 토지에서 나오는 식량과 풍부한 물 등을 기반으로 점점 그 규모가 커져갔습니다. 이렇게 문명이 커지자 그 문명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의 형태가 생겨나게 되고 그 국가도 부족의 연합에서 시작하여 발전하여 중앙집권적인 국가로 성장하게 되고 국가의 경제력, 군사력, 문화영향력이 커지면서 점차 그 세력의 확장이 커지게 되었습니다.세계를 통치하는 패권국가의 시작은 페르시아로 볼 수 있고, 세계 제국을 건설한 로마, 유럽과 동양을 아우르는 징키스칸의 원나라, 자본주의 경제 제국의 네덜란드, 세계 최강의 해상 제국이었던 영국, 그리고 과학 기술로 극강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현재까지 군사, 경제, 문화까지 아우르는 미국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의 고대국가 중 중국의 당나라, 그리고 대한민국의 뿌리인 고조선 or 고구려 등도 광활한 영토와 제국적인 성향을 보이기는 하였으나, 패권국가로 보기에는 그 사료 등이 동양에 한정적이라고 보여집니다. 초기 패권국가로의 확장은 자국 영토 내에서의 자원 및 발전의 한계 등으로 인한 영토 확장 확보를 위해 주변 지역 또는 신대륙을 군사력과 발전된 문명기술로 시작하였으나, 그렇게 확보된 속국 또는 식민지를 문제 없이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종, 종교, 민족, 언어 등에 이질적인 특성을 가진 이들 간에 차별없이 받아들이고 모두에게 기회를 주는 포용성, 즉 관용이 패권국가 유지에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패권국가는 경제력, 군사력, 과학 기술력, 선진 문화 등을 바탕으로 하여 주변국 또는 민족을 차별없이 포용할 수 있는 관용의 다문화정책 등이 기반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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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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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저희는 식량으로 벌레를 정말 먹게될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곤충의 경우 개채수 확대가 쉽고, 생각보다 많은 영양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곤충의 경우 전통적으로 여러 국가에서 식재료로 사용했고, 지금도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밀웜, 귀뚜라미, 전갈, 매미, 메뚜기. 굼벵이. 누에 등이 그렇습니다. 굼벵이와 누에의 경우 여전히 한약재로 사용하고 있으며, 중국과 동남아 지역에서 주식은 아니지만 밀웜, 귀뚜라미, 전갈, 매미 등을 별미로 먹고 있습니다. 최근에 한국 아이돌팀에 있는 태국 멤버가 부모님이 해주신 밀웜과 귀뚜라미 요리를 먹는 장면을 방송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70년대 생인데 제가 군대에 있었던 90년대 초에도 군대에서 메뚜기를 잡아다가 소금간을 해서 후라이팬에 볶아 간식으로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말이죠. 그리고 제대 후 압구정동의 한 결혼식 뷔페에서도 메뚜기볶음(튀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먹고 있고 통조림으로 대형마트에서도 판매하고 있는 번데기도 있죠. 곤충은 단백질을 필두로 하여 많은 영양소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미래의 대체식량으로 손꼽히는 대상이긴 합니다. 식물 또는 열매로는 가장 일반적인 것이 콩입니다. 그리고 많은 글로벌 회사들이 대체육 개발에 나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식물성 단백질에 여러 화학조미료 성분을 가미하여 고기와 비슷한 식감과 맛을 가진 식량을 만드는 것이죠. 우리가 잘 아는 콩고기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짜 고기의 맛을 대체하기 어렵다는 시장의 반응에 따라 배양육이라고 하여 도축하지 않고 세포만 체취하여 그것을 배양하여 고기를 얻는 방식도 연구되고 발전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디스토피아적인 생각으로 이런 일들이 언젠가는 일어날 것이라 걱정하기는 하지만, 우리 인간들이 잘 연구하여 상생하며 환경도 보존하여 계속 맛있는 밥과 채소, 고기를 먹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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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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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유비가 유씨인 게 중요했던 이유가 뭔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그렇다고 하더라도 고대 중국의 경우 명분을 중요시 합니다. 한 왕조가 존재하나 탐관오리와 환관 조조와 같은 이가 나라를 좌지우지 하고 있으니 이들을 한 왕조를 무너뜨리는 역적으로 규정하고 군사를 일으켜 한 왕조를 재건하겠다는 명분을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 왕조가 그렇듯 대부분 친족 성씨 세습이므로, 한 왕조와 같은 성씨를 가진 유비에게는 군사를 일으킨 것이 역성 혁명이 아닌 한 왕조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대의 명분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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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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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 6학년 자녀들에겐 어떤 책들을 권하는게 좋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 / 미카엘엔데의 모모, 꼬마친구 짐크노프 / 조지오웰의 동물동장 같은 고전을 추천드립니다. 각 작품들은 어린이 청소년 용으로도 각색되어 나와있습니다. 위 작품들은 사회 속에서의 주변인들과의 관계, 자아와 자존감을 향상시켜가는 주인공의 성장이야기, 그리고 동물농장에서 보여주는 권력에 의한 탐욕에 자신을 잃어가는 모습들, 계급 사회에 대한 고찰과 그에 대한 비판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고학년으로 가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고전이 최근 나오는 창작동화나 소설보다 더 내용이 깊다고 보여집니다. 이러한 책을 읽어가면 보다 높은 문해력과 창의력, 논술 등의 역량을 함양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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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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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이름에 대해 궁금한것이있어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구려와 고려가 고조선과 조선처럼 예전과 요즘의 같은 국호를 구분하기 위함은 아니었습니다. '구려'라는 뜻은 위대하다 성스럽다의 뜻이었는데 여기에 높을 '고'를 써서 '고구려'라고 칭하였습니다. 고구려 20대 장수왕 (광개토태왕의 아들)부터 '고려'라고 국호를 변경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 후고구려를 표방하였던 궁예를 따르던 왕건이 새롭게 삼국을 통일한 후에 과거 장수왕 때부터 사용하였던 국호인 '고려'를 그대로 사용한 것입니다. 두 나라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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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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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최초로 설립된 병원은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말씀하시는 병원은 아마도 한의원 같은 곳이 아니라 근대식 병원을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대한민국의 근대식 병원의 시초는 1885년에 미국인 의사 알렌(마이애미 의과대학 출신의 의료선교사)에게 명성황후가 지어준 <광혜원>입니다. 급진개화파의 우정국 거사 때 민씨 가문 형제가 많이 다쳤는데 신의술로 고쳐내는 것을 보고 놀라고 감사한 마음으로 짓게하여 알렌을 교수이자 의사로 진료를 볼 수 있게 하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진료과목은 특별히 정해지지 않고 종합적으로 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광혜원은 얼마 후 <제중원>이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합니다. 하지만 국가 재정 부족으로 인해 문을 닫고 맙니다. 이후 민간에서는 제중원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여 간판을 걸고 민간병원으로 운영되었고, 향후 세브란스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은 근대병원의 효시는 자신들이라고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측에서 주장합니다. 그런데 1899년 국가가 주도하여 다시 제중원이라는 이름이 아닌 <광제원>이라는 이름으로 병원이 다시 문을 열게 됩니다. 이후 1908년 수도에는 <대한의원>이라는 이름으로 지방에는 1910년에 <자혜의원>이 설립됩니다. 이후 대한의원은 경성대 의대가 되고 이후 <서울대학교 병원>이 됩니다. 그래서 국가 주도의 국립병원이었던 광혜원에서 제중원이었다가 문을 닫고, 다시 광제원, 대한의원, 경성의대를 거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병원으로 발전하였기에 서울대학교병원이 근대병원의 효시라고 서울대학교 병원 측에서 주장합니다. 두 병원 간의 원조 전쟁은 아마도 자존심 싸움인 듯 합니다. 두 측 다 주장하는 논리의 명분은 있으니 그냥 근대식 병원의 효시는 처음 건립된 <광혜원>으로 하는 것이 맞는 것 같고, 서울대병원이나 세브란스병원은 그 가지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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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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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위인 중에 의사는 누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중기에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이라는 한의사가 있습니다. 근대에 와서는 한국 전쟁 시기에 부산에서 피난민들을 돌보며 진료를 했던 장기려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이종욱 박사는 의사이자 세계 보건 기구인 WHO의 6대 사무총장을 했던 분으로 의과대학 시절에 한센병 환자 진료 봉사를 하며 뜻을 세워 의료 봉사 활동을 시작해 2003년에 세계 보건 기구 사무총장에 선출되면서 한국인 최초로 국제기구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이때 특히 저개발 국각의 소아마비 및 결핵 퇴치 사업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태석 신부가 있습니다. 그는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가톨릭 사제가 되어 아프리카 수단에서 병원과 학교를 설립하여 수단 원주민을 위해 헌신하여 그 지역 이들의 꿈과 희망이 되었던 분입니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후보에 올랐던 이호왕 박사있습니다. 서울대 의대를 나온 이호왕 박사는 세계 최초로 신증후군 출혈열의 원인 바이러스(한타바이러스)를 발견하고 예방 백신까지 개발한 우리나라의 과학자입니다. 그 외에도 많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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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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