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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이 한 때(고려시대)아시아대륙에서 최강이였던 이유?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몽골은 유목민족으로 말을 기르며, 어린 시절부터 말을 타며 지냈습니다. 그러한 일상이 전쟁에 있어서 기마전을 통해 기동력이 상대와 비교하였을 때 월등하게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말을 타고 앞으로, 옆으로, 심지어는 뒤로도 활을 쏠 수 있는 마장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장수를 제외하고 대부분 보병이었던 상대와는 전쟁에 있어서 전력의 차이가 많이 나게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보통 그러한 말을 2~3마리 끌고 다니면서 싸우다 말이 지치면 다시 바꾸어 타고 하여 기동력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몽골이 중국을 정복할 때도 만리장성이 있었으나, 몽골을 공성전을 하지 않고, 말을 타고 기동력으로 성벽을 우회하여 돌아 뒤를 치는 공격으로 병력과 시간을 낭비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전쟁을 하였습니다. 과거 전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군량 보급이었습니다. 보통 10만 대군이다 하면 절반 이상은 보급에 관련한 병력으로 실제 전투력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몽골군에 있어서는 보급병력이 거의 필요없었습니다. 사전에 육포를 만들어 병력 각자가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전투 필요없는 인력이 아니라 모두가 정예군이었습니다. 추가로 얇게 잘라 편 고기를 만 안장 아래에 넣고 말을 타고 다니다보면 그 온기에 익은 고기도 먹었습니다. 이것이 몽골군대의 핵심전력인 몽골족과 투르크족의 특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지역을 확보해나감으로써 농경민족 출신의 보병대도 확보되었고, 금나라 공격을 통해 획득된 공성 기술을 가진 거란, 여진 등은 공병대로 공성전의 능력까지 추가되면서 유럽까지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소위 연합군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죠. 그리고 차지한 지역의 국민들도 군대로 편입시켜 규모를 늘려갔고, 그 지역의 모든 경제력을 군대에 집중하여 군사력을 키워나갔습니다.그리고 엄격한 군율과 지휘체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싸움에 이겨도 동료가 모두 죽고 혼자만 살아오거나 한다면, 엄격히 처벌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의 병력손실과 무조건적인 승리의 정신무장이 되어있는 군대였습니다. 이 모든 것의 최상위에는 칭기스칸이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오늘날에도 활용되는 기습전, 침투전, 게릴라전, 유인전, 전격전, 기만전 등을 고안했고, 기동력을 이용한 심리전, 정보전, 포위전, 우회기동전 등을 폭넓게 활용하였으며, 기병과 공병, 포병을 잘 활용하는 복합적인 전술가였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갖추었던 몽골은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국가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몽골이 가장 어려워했던 상대가 바로 고려였습니다. 제 9차 고려-몽고 전쟁의 28년간의 싸움 끝에 고려도 머리를 조아릴 수 밖에 없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조공을 바쳤을 뿐 국가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계속적인 저항이 일어나다 보니 몽골도 완전히 고려의 국가를 없애지는 않고, 유화책을 사용하여 제후국으로 두고 국혼을 통해 몽골의 공주들을 고려의 왕자와 결혼시켜 그 관계를 돈독하게 하려했습니다. 특히 고려 충렬왕은 몽골 쿠빌라이칸의 사위가 되어 몽골의 쿠릴타이라는 고위급 회의에도 참석할 정도로 서열이 높았으며, 그만큼 고려를 인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충선왕의 경우도 쿠릴타이의 외손자였기 때문에 몽골 황실 내에서도 상당히 높은 서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뭐 어쨌든 끈질기게 저항한 고려는 맞지만, 강력한 몽골에 무릎을 꿇은 것은 사실이니 몽골의 강함은 당시 적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대단한 힘을 가진 국가였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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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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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도 분단국가였었는데 어떻게 통일을 할 수 있었죠?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맞습니다. 독일의 통일은 통일되었다는 오보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독일은 전범국가였기 때문에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승인이 있어야만 통일할 수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고, 미국이 소련을 압박하여 소련과 동독의 교섭을 이끌어내었습니다. 그리고 서독 정부는 동독 정부와 경제적으로도 협력할 때도 반드시 지원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내는 등 전략적인 대응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서독의 콜 총리는 통일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며, 이에 서독을 민주국가, 부강한 국가로 만들어 동독 주민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과 서독에 대한 동경으로 여론을 이끌었습니다. 독일 통일의 주역으로는 에곤바, 빌리브란트, 헬무트콜, 동독주민들, 소련의 고르바초프, 미국의 조지 부시, 서독 교회 세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설계하고 노력하고, 각자의 이해관계가 맞았기에 급진전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동독에서 선거부정 문제가 발생하였고, 여행자유제한 등의 문제로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하는 시민들이 해마다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이후 상황이 급진전되어 동독의 기민당과 사민당이 1989년 4월5일 개원한 민주의회에서 서독과의 통일 협의를 개시하고, 동독 총리가 서독의 수도 본에서 콜 총리와 화폐를 비롯한 사회통합 합의를 이룸으로써 사실상 통일을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이후 동독이 공산국가의 연합인 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 탈퇴하였고, 동독 의회가 독일민주공화국의 소멸을 의결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89년 11월 9일 동독 정부의 대변인인 권터 샤보프스키가 여행제한이 어느 정도 완화되었다는 정책을 발표하기 위한 기자회견에서 정책 수립에 참여하지 않았던 샤보프스키가 "서독을 포함한 외국여행을 자유화한다."고 발표했고, 언제부터냐는 이탈리아 기자의 질문에 "지금 당장!"이라고 답하면서, 그 발언이 뉴스로 긴급보도되었고, 그 제목이 "The Berline wall has collapsed(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로 되면서 방송을 보고있던 동독 시민들이 모두 베를린 장벽으로 향했고, 결국 장벽이 무너졌고, 1990년 5월에 동독과 서독, 영국, 미국, 프랑스, 소련이 참석한 회의에서 독일의 통일이 논의되었고, 1990년 10월 3일 정식 통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정말 감격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국제적인 이익이 잘 맞고, 우리 민족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통일될 수 있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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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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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와 기독교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전 다른 분이 질문하여 조사했던 내용을 다시 한번 공유드립니다. 기독교는 천주교, 개신교, 오리엔트 정교, 정교회, 네스토리우스파 등 예수를 메시아라 믿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모든 종교를 통틀어 일컫는 말입니다. 기독교가 최상위 개념이라고 할 수 있죠.천주교(가톨릭)와 개신교는 사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에서 분리된 종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가톨릭이란 말은 '두루 따르는, 모두를 포함한'이란 뜻을 가진 고대 그리스어 카톨리코스(Katholikos : 영어 Catholic)에서 온 말인데 '보편적'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하나같이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으로, 특히 당시의 유대교에서 분리된 여러 종교 집단들로부터 구분하는 의도도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 가톨릭은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와 구분하는 종파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개신교(Protestantism)는 독일의 로마 가톨릭 신부이자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독일종교개혁을 시작으로, 서유럽에서 활발히 일어난 종교개혁으로 등장한 그리스도교(= 기독교) 종파입니다. 국내에서는 기독교라는 말이 흔히 개신교와 동의어처럼 쓰이고 있지만, '기독교'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포함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종교들을 통칭하는 더 넓은 뜻의 말입니다.천주교는 교황, 주교, 주임신부, 보좌신부의 체제로 되어있고, 개신교는 교황을 인정하지 않고 각 교단마다 총회에 총회장이 있고, 임기는 1년이나 교황처럼 불가침의 권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천주교에서는 신부, 수사, 수녀는 결혼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여 현재 원칙이 되었고, 개신교에서는 목사, 전도사 등 모두 결혼을 할 수 있습니다.천주교에서는 "혼인하지 않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처음부터 결혼하지 못할 몸으로 태어난 사람도 있고 사람의 손으로 그렇게 된 사람도 있고 또 하늘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결혼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을 받아들일 만한 사람은 받아들여라"(마태오 19장 11-12절)는 말씀을 근거로 신부 · 수사 · 수녀는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을 선택함.천주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12제자에게 사죄권을 주었기에 신부 사제 앞에서 신자들이 죄를 고백하고 성사를 하면 사제가 예수 그리도에게 위임받은 권한으로 죄를 사해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그 피로 하나님께 회개한다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천주교는 예식을 미사라고 하고 신부강론을 포함한 말씀전례, 성찬전례로 나뉘고, 개신교는 예배라고 하고 목사의 설교가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합니다.천주교와 개신교는 모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존중합니다. 성경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있고, 구약성경은 유대교의경전을 그리스도교가 받아들인 것이고,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서를 비롯하여 사도행전, 사도들의 서간, 묵시록이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트리엔트 공의회(1545년에서 1547년)에서 7권의 외경을 포함한 구약성서 46권과 신약성서 27권을 정경으로 확정하여 믿음에 교과서로 쓰고 있습니다.개신교는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구약성서 중에서 그리스어로 옮긴 70인 역에만 있는 성서는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외경을 포함시키지 않고 분리하였습니다. 이에 구약성서 39권, 신약성서 27권만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이에 천주교는 성경 뿐만아니라 성전도 중시하여 말씀전례와 성찬전례로 구성하여 미사를 보고 있고, 개신교의 경우에는 오직 성경만을 중시하기 때문에 말씀 중심의 예배가 진행됩니다.아마도 질문하신 분이 말씀하신 기독교는 개신교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천주교와 개신교는 성모마리아를 보는 시각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성모마리아를 신앙의 모범으로 여기고 공경하나 개신교에서는 성모마리아는 신심과 전구(대신 기도해주는 사람이라는 뜻)를 인정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에 대한 엄마로서 하나님을 믿었던 한 사람으로만 여기기 때문에 개신교회에서는 성모상 등을 볼 수 없습니다.해당 답변은 이전에도 다른 분이 문의하셔서 답변하였던 내용입니다. 질문을 등록하실 때 비슷한 내용으로 문의한 질문이 뜹니다. 그것을 살펴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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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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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의 눈썹은 왜 없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모나리자의 눈썹에 대한 질문은 여러번 있어왔고, 향후도 그러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 답변이 있었기에 다시한번 정리해봅니다. 모나리자 그림에서 눈썹이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정설은 없고, 가설만 있습니다.우선 첫번째 가설로는 시대적으로 이마가 넓은 것이 미인상이었기에 애초에 눈썹을 그리지 않아 더 아름답게 보이고자 했다는 설,두번째로 당시에는 그렸었지만 세월이 흐르며 여러가지 환경에 의한 변질에 의해 바래졌거나 눈썹 부위가 떨어져 나갔다는 설,마지막으로 눈썹을 그리지 못했거나 실수로 그리지 않은 미완성작이라는 설이 있습니다.세 가지의 가설 중 두번째의 경우에는 떨어져 나간 흔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어 가능성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첫번째와 세번째 가설 중 살펴본다면 비슷한 시기의 다른 여성 그림들도 눈썹이 그려져 있지 않다면 첫번째의 가설이 유력하다 볼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세번째의 가설과 같이 미완성작이거나 실수로 그리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제기된 가설과는 달리 여성들 중 화장을 위해 눈썹을 밀어버리고 그리는 분들이 계신 것처럼 당시 모나리자가 눈썹을 밀었고 화장 안 한 상태의 민낯을 그렸다던가, 눈썹숱이 적고 피부색과 비슷하여 거의 보이지 않게 그린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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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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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은 머리칼 뿐 아니라 수염과 손,발톱도 안 잘랐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身體髮膚는 受之父母니 (신체발부 수지부모)不敢毁傷이 孝之始也니라 (불감훼상 효지시야)효경에 나오는 말로 몸과 터럭은 부모에게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라는 뜻입니다. 성리학의 나라인 조선에서는 그에 대해 더욱 엄격한 생활수칙으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머리카락이나 수염, 손발톱을 전혀 손질하지 않고 계속 길렀던 것은 아니라, 모든 것이 부모에게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일부 지저분하게 보이던가 하는 것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을 훼손하는 것이라 보고 단정하게 자르거나 다듬었습니다.그리고 정돈 후 잔여물마저도 소중히 여겨 그냥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일정한 날을 정해 태운다던가 했다고 합니다.따라서 이러한 효경의 가르침은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머리카락 하나도 소중히 여기라고 하는 것이지 단순히 머리를 자르지 않거나 수염을 무작정 길러야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는 것부터가 효의 시작이라는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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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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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으로된 이유와 배경은?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의 국화가 무궁화로 인정되고 있는 현실이지만, 현재 무궁화는 법률이 아닌 관행으로만 국화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표장, 국회의원 배지, 법원 마크 등에도 무궁화 이미지가 사용되고 있으니 실질적으로는 국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궁화가 언급된 것은 아주 오래전이었습니다. 고조선 시대에는 제사를 올리는 신단 주변에 무궁화를 심어 그 신성함을 더했으며, 신라시대에 최치원이 당에 보내는 외교문서에도 신라를 무궁화의 나라라고 표현했을 정도입니다. 이처럼 과거부터 민족의 정신과 연결된 무궁화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정책으로 일본이 무궁화를 탄압의 대상으로 삼았고, 전국의 무궁화 묘목 8만 그루를 불태우는 만행도 저질렀다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에 1949년부터 무궁화를 나라꽃이라 하여 전국에 보급되었고, 공식적으로 나라꽃으로 인정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는 무궁화를 길거리에서 잘 볼 수도 없는데 말이죠. 하지만 무궁화는 영원히 피고 또 지고 또 피는 꽃이라는 뜻으로 우리 민족이 영원토록 번성할 것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간혹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무궁화가 토종, 즉 자생종이 아니다, 자생 지역이 넓지 않다는 이유로 나라꽃으로서 다시 검토해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지만, 고조선 때부터 신성시 하던 꽃이라면, 단순히 현재의 좁은 한반도 영토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옛날 찬란했던 우리 옛 땅의 기운을 모두 가지고 있는 강인한 꽃이므로 충분히 대한민국의 나라꽃으로 합당할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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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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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간의 의미관계 중에서 상하관계에 대한 질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해당 내용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의어와 하의어의 상하관계를 반대로 설명하고 있네요. 낱말들 중에는 어떤 낱말이 다른 낱말을 포함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포함하는 경우를 상의어, 포함되는 경우를 하의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악기'라고 하면 상의어이고,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등 구체적인 것들은 하의어입니다. 예와 같이 하의어는 상의어의 한 종류인 것입니다. 따라서 상의어가 범위가 넓은 것이고, 하의어가 범위가 좁은 것입니다. 즉 상의어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낱말, 하의어는 구체적이고 자세한 낱말입니다. <상의어 / 하의어 예>계절 / 봄, 여름, 가을, 겨울과일 / 사과, 배, 딸기, 복숭아, 포도국가 / 한국, 일본, 중국, 미국, 영국, 러시아
학문 /
역사
2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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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크랩은 게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반적인 게는 갑각아문 중 '단미하목-게'에 속하고 킹크랩은 '집게하목-집게'에 속합니다. 말씀하신 친구분은 이렇듯 엄격하게 보아 일반게와 집게를 구분해서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이 갑각아문에는 '가재하목'도 하위분류로 있으므로, '다 똑같은 게지 다를게 뭐야'라고 하시면 통칭하여 바닷가재도 게가 될 수 있는 것이니, 엄밀하게 말하면 게와 킹크랩은 구분되는 것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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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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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다보면 은유법이 나오던데 은유법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은유법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상태나 움직임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수사법입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비유하여 표현하는 수사법의 하나입니다. 비유법에는 은유를 포함하여 직유, 풍유, 제유, 환유, 의인, 의성, 의태, 중의가 있습니다.은유법은 시에서 많이 사용되는데 어떠한 사물등을 다른 것에 빗대거나 에둘러 표현함으로써 그 의미가 드러나지 않게 감추어 감동을 증폭시키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김동명의 시 '내 마음은'을 보시면, 내마음은 호수요/그대 노저어 오오/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내 마음은 촛불이요/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 없이타오리다.//내 마음은 나그네요/그대 피리를 불어주오/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나의 밤을 새이오리다.//내마음은 낙엽이요/잠깐 그대의 뜰에 머물게 하오/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그대를 떠나오리다밑줄 친 표현들은 원관념인 '내마음'과 보조관념인 '호수, 촛불, 나그네, 낙엽'을 동일시 하여 보조관념이 가진 함축적 의미를 원관념인 '내마음'에 부여하는 방식으로 활용합니다. 이것과 반대되는 개념으로는 '~같는 ~'의 구조적인 표현구를 가진 직유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곰 같은 힘', '비단 같이 고운 피부' 등은 직접적으로 동일 비교하는 방식으로 표현되므로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시를 어렵게만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를 읽으실 때는 작가가 어떠한 의도로 표현했든 상관없이 독자가 읽고 느껴지는대로 감상하시면 됩니다. 간혹 이 시가 무엇을 뜻하는 것이지라고 골몰하며 후벼 파다보면 작품의 직관성이 떨어져 흥미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분석은 전문가의 영역입니다. 그 전문가라도 작가의 의도를 모두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시는 그냥 읽혀지는대로 읽고 직관적으로 드는 느낌대로 감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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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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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가 자립형태소로 쓰인 예문에는 무엇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느'는 관형사로 자립 형태소입니다. 이것은 이것으로만 문장을 구성하거나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형태론적으로 자립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햇살이 좋은 어느 날 예쁜 구두를 신고 내게 오세요.'라고 독립적으로 단독으로 쓰인 것도 있지만'어느덧 결정의 그날이 다가왔다.', '어느새 석양은 붉게 물들고 어둠이 저만치 온 듯 했다.'처럼 합성어로 쓰인 것도 있는데 둘 다 자립형태소입니다. 보통 단일 형태소(독립적으로 띄어 쓸 때)로 이루어졌을 때 자립 형태소는 명사, 대명사, 수사, 관형사, 부사입니다. 용언의 어간, 어미, 조사, 접사는 의존 형태소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학문 /
문학
2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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