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토지대비 인구가 많던데 저출산도 괜찮지 않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저출산과 인구고령화가 맞물려서 향후 생산노동력이 부족하게 됩니다. 단순히 땅이 넓지 않은데 인구가 줄어도 상관없지 않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지속 가능성의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의 경우 도시 집중화가 문제되는 것이지 인구 과밀이 문제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국가의 모든 시스템이 현재의 수준에 맞게 마련되어있는 상황에 저출산과 인구고령화의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한 상황은 2~30년 이후 이 사회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인력이 급감한다는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됩니다. 1. 부양비의 증가2018년부터 생산연령비율은 감소하고, 저출산으로 감소하는 유소년인구보다 고령인구가 늘어나 부양비가 급증하게 됩니다. 2. 생산연령인구 감소 및 노동력 저하이로 인해 노동생산성이 감소하여 제조업 등이 먼저 무너지고, 미래의 성장잠재력도 전무해집니다.3. 지역 공동화로 인하 지역소멸 우려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로 향후 학교 등의 교육인프라 과잉현상이 발생할 것이고, 현재 35만명의 병역의무자가 20년 후에는 20만명 미만으로 떨어질 위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역의 경우 시군구 기준으로 소멸할 우려가 있는 지역이 89개지역이며, 30년 내에 84개 지역, 1,383개의 읍면동이 사라질 위기라고 합니다. 해당 사항은 65세 이상의 인구비율 및 20~39세 가임여성 인구비율을 토대로 예측합니다. 4. 노인빈곤 및 과도한 복지등 지출로 재정수지 악화로 국가경제 위기 초래저출산으로 생산연령비율이 줄어들면 향후 노인 복지등을 위한 연금 축적액이 줄어들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은퇴 후 지급될 국민연금 등이 줄어들게 되어 노인빈곤문제가 발생합니다. 국가가 계속하여 근본적인 저출산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고령인구의 복지부양을 유지하게 되면 그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고, 재정수입은 줄었는데 재정지출이 늘어 재정수지의 악화로 국가 경제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고령인구의 재취업, 생산제조시설의 스마트화, 지역통합 등으로 우선 대응해나가야 하고, 근본적인 저출산문제를 개선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정부에서 마련해야 할 것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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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점이 고려시대 때 목화씨를 가지고 왔다고 했는데 원래 가져오면 안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문익점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목화밭을 보고 목화를 고국으로 들여와서 키우면 백성들이 겨울에도 따뜻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같이 갔던 시종에게 목화씨를 따오라고 시켰습니다. 그 이후 실을 짜서 옷만드는 기술이 발달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문익점이 목화씨를 붓대에 넣어 몰래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원나라에서 수출 금지 품목은 화약과 지도 같이 전쟁, 군사력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익점의 전환적인 역할에 대해 목화씨를 가지고 온 지 100년이 지난 후 김굉필이라는 사람이 그의 공을 기리는 시를 쓰면서 그 내용에 ‘문익점은 남몰래 목화씨를 주머니에 넣어 가져왔다.’고 표현한 그 내용에 후대에 살이 붙어 붓대 속에 몰래 넣어 가지고 왔다고 와전된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고려시대가 아닌 삼국시대에도 목화를 이용해 짠 옷감이 발견되면서 문익점이 최초로 들여온 것은 아닌 것 같고, 아마도 대량 재배를 성공시키고 널리 확산시킨 최초의 인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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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사이즈가 어떻게 이루어 지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바이올린의 사이즈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미지출처 - 대구 바이올린 레슨 & 연주 블로그 포스팅]1/16이 유아용이고 4/4가 성인용입니다. 나이에 따라 선택하는 것은 아니고 사용하는 사람의 팔길이에 따라 사이즈를 선택합니다. 그럼 어디에서 어디까지의 팔길이를 재야하는 것일까요? [이미지출처 - 대전그린악기 블로그 포스팅]위의 이미지처럼 왼쪽 팔을 들어 올려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고 손을 똑바로 측면으로 완전히 폅니다.위에 보이는 사진처럼 자신의 팔 길이를 측정하여 나와있는 치수표를 보면서 악기의 사이즈를 결정하면 크게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아이가 계속 자라기 때문에 6개월~1년에 한번씩 팔길이를 다시 측정하여 너무 크거나 너무 작은 악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바꿔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연습용 바이올린은 비싼 제품을 살 필요가 없으며, 만약 전공을 하게 된다면 그 때 고려해도 늦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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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들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들은 산해진미로서 땅과 물에서 나는 것들을 진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음식들이 올라갑니다. 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들 각각의 의미보다는 진상하는 방식과 위치에 대한 의미가 더 많습니다. 좌포우혜 : 포 같이 말린 음식보다는 혜 같이 소금에 절인 음식이 좋다는 뜻어동육서 : 육류보다는 바다에서 나는 어류가 좋다는 뜻두동미서 : 꼬리 음식 이라는 뜻의 미보다는 머리 음식 두가 좋으니 건강에 좋은 것을 먼저 먹으라는 뜻즉, 좋은 음식을 먼저 먹고 자주 먹어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조율시이 : 제사상에서 위패로부터 가장 멀리 둡니다. 즉 약과 같이 가끔씩 먹는다는 의미라고 합니다.대추는 뼈에 좋고, 밤은 머리에 좋고, 배는 배에 좋고, 감은 피부에 좋은 음식으로 몸에 좋은 음식 순으로 배치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조선시대에 군신관의 관계를 나타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대추는 씨가 1개이니 임금을 뜻하고, 밤은 밤송이 하나당 3알이 들어있으니 3정승을, 감은 씨가 6개이니 6조를 뜻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배는 명확하지 않네요)홍동백서 : 백색 즉 흰색의 음식보다는 붉은색 종류의 음식이 몸에 좋고 좋은 것을 먼저 먹고 자주 먹어 건강하게 오래 살라는 뜻상기와 같이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제사는 살아 생전 고인께서 잘 드시던 음식을 준비하며 그 분을 기리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차례에서 추석은 그 해 수확한 음식들을 진상하는 것이니 좋은 제수음식들을 장만하여 진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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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그림은 왜 프랑스에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모나리자의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의뢰인에게 전해주지 않고 1516년에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프랑스로 이주하면서 가지고 갔다고 전해집니다. 16세기에 퐁텐블로 궁에 이 작품이 전시되어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는데 어떻게 이곳에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아마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초청받아 이주하면서 프랑수아 1세에게 선물한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이후 튈리르궁에 있는 나폴레옹 개인 침실에 걸려있었다가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18세기 이후에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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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양반의 비율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10년의 호구조사에 따르면, 조선시대 양반의 비율은 총 가구수 2,894,777호 중에 54,217호로 1.9%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에도 상위 1%대가 세상을 호령하고 살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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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조상님이 쓰신 한자로 된 일기가 남아있다면 가치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모든 글이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지는 않지만 개인의 일기도 문화재적 가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우선 어떤 분의 글이고, 그분과 그분의 글이 시대적인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는 희소가치가 있는 것인지, 판단되어져야 합니다. 개인적인 일기가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들도 있습니다.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라던지, 조선시대 선비 이문건(조광조의 제자)의 육아일기인 양아록, 이재의 갈암선조전후면례일기,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등이 있습니다. 한번 전문 문화재 감정하시는 곳에 의뢰하여 판단을 받아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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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가 형식적 요소랑 사회문화적 가치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방원의 하여가의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如此亦如何 (여차역여하) - 이런들 어떠하며如彼亦如何 (여피역여하) - 저런들 어떠하리城隍堂後垣 (성황당후원) - 성황당 뒷담이頹落亦何如 (퇴비역하여) - 무너진들 어떠하리吾輩若此爲 (오배약차위) - 우리도 이같이 하여不死亦何如 (불사역하여) - 죽지 않은들 어떠하리원문은 한시의 형태로, 5언 6구로 이루어진 소율(小律)의 형태를 따르고 있는 근체시입니다.이것이 포은집(정몽주의 글을 모은 책) 속에 전해 내려오다가 후대 광해군 시절에 심광세가 고시조 형태로 번역하였다 합니다. 이유는 너무 성리학에 매몰된 학자들이 사대주의로 인해 우리의 시는 연구하지 않고 한시만을 고집하는 모습에 우리 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하며, 번역하여 내놓았다고 합니다. 이런들 엇더하며 져런들 엇더하료만수산(萬壽山) 드렁츩이 얼거진들 엇더하리우리도 이갓치 얼거져 백 년(百年)까지 누리리라 ('아래 아'는 키보드 표기법을 몰라 발음대로 적었으니 양해바랍니다.)형태적 갈래는 평시조이자 단시조에 속하고, 내용적으로는 서정시에 속합니다.하여가는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이 고려의 충신이었던, 정몽주에게 고려왕조를 고집하지 말고, 자신과 함께 새로운 세상에서 천수를 누리자고 회유하기 위해 보낸 글입니다. 이에 정몽주가 단심가로 자신의 충정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가를 함으로써 결국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측근인 조영규에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봉건사회의 대부분의 혁명이 역성혁명이었는데, 이성계와 그의 아들 이방원은 민심을 수습하고, 그 정당성을 학자이자 충신이었던 정몽주에게 인정받으면서 덕과 인을 갖춘 성군임을 인정받고 조선의 건국을 선포하려 하였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사건이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 3개월 후에 조선 건국이 선포되었고, 고려는 기억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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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프랑스가 식민지배했던 국가들은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영국의 식민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 캐나다, 이집트, 이라크, 쿠웨이트, 바레인, 오만, 인도, 파키스탄, 부탄, 남아프리카 공화국, 나이지리아, 가이아나, 잠비아, 짐바브웨, 수단, 남수단, 케냐, 탄자니아, 소말리아(일부 지역), 통가, 투발루, 우간다, 몰디브,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등등 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식민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캐나다 퀘백, 알제리, 캄보디아, 카메룬,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차드, 도미니카, 이집트, 콩고, 기니, 모로코, 말리, 가봉, 모리셔스, 코트디부아르, 라오스, 마다가스카르, 모리타니, 콩고공화국, 니제르, 아이티, 세네갈,토고, 중국 텐진, 광저우만, 시리아 등등 이었습니다. 더 살펴보면 추가로 있을 것입니다. 중복된 국가가 있는 이유는 시기별로 영국과 프랑스가 주고 받고 한 경우도 있어 번갈아가며 식민지배를 당했던 곳은 양쪽다 있습니다. 너무 많아서 정말 세기가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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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이 한 때(고려시대)아시아대륙에서 최강이였던 이유?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몽골은 유목민족으로 말을 기르며, 어린 시절부터 말을 타며 지냈습니다. 그러한 일상이 전쟁에 있어서 기마전을 통해 기동력이 상대와 비교하였을 때 월등하게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말을 타고 앞으로, 옆으로, 심지어는 뒤로도 활을 쏠 수 있는 마장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장수를 제외하고 대부분 보병이었던 상대와는 전쟁에 있어서 전력의 차이가 많이 나게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보통 그러한 말을 2~3마리 끌고 다니면서 싸우다 말이 지치면 다시 바꾸어 타고 하여 기동력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몽골이 중국을 정복할 때도 만리장성이 있었으나, 몽골을 공성전을 하지 않고, 말을 타고 기동력으로 성벽을 우회하여 돌아 뒤를 치는 공격으로 병력과 시간을 낭비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전쟁을 하였습니다. 과거 전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군량 보급이었습니다. 보통 10만 대군이다 하면 절반 이상은 보급에 관련한 병력으로 실제 전투력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몽골군에 있어서는 보급병력이 거의 필요없었습니다. 사전에 육포를 만들어 병력 각자가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전투 필요없는 인력이 아니라 모두가 정예군이었습니다. 추가로 얇게 잘라 편 고기를 만 안장 아래에 넣고 말을 타고 다니다보면 그 온기에 익은 고기도 먹었습니다. 이것이 몽골군대의 핵심전력인 몽골족과 투르크족의 특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지역을 확보해나감으로써 농경민족 출신의 보병대도 확보되었고, 금나라 공격을 통해 획득된 공성 기술을 가진 거란, 여진 등은 공병대로 공성전의 능력까지 추가되면서 유럽까지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소위 연합군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죠. 그리고 차지한 지역의 국민들도 군대로 편입시켜 규모를 늘려갔고, 그 지역의 모든 경제력을 군대에 집중하여 군사력을 키워나갔습니다.그리고 엄격한 군율과 지휘체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싸움에 이겨도 동료가 모두 죽고 혼자만 살아오거나 한다면, 엄격히 처벌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의 병력손실과 무조건적인 승리의 정신무장이 되어있는 군대였습니다. 이 모든 것의 최상위에는 칭기스칸이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오늘날에도 활용되는 기습전, 침투전, 게릴라전, 유인전, 전격전, 기만전 등을 고안했고, 기동력을 이용한 심리전, 정보전, 포위전, 우회기동전 등을 폭넓게 활용하였으며, 기병과 공병, 포병을 잘 활용하는 복합적인 전술가였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갖추었던 몽골은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국가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몽골이 가장 어려워했던 상대가 바로 고려였습니다. 제 9차 고려-몽고 전쟁의 28년간의 싸움 끝에 고려도 머리를 조아릴 수 밖에 없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조공을 바쳤을 뿐 국가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계속적인 저항이 일어나다 보니 몽골도 완전히 고려의 국가를 없애지는 않고, 유화책을 사용하여 제후국으로 두고 국혼을 통해 몽골의 공주들을 고려의 왕자와 결혼시켜 그 관계를 돈독하게 하려했습니다. 특히 고려 충렬왕은 몽골 쿠빌라이칸의 사위가 되어 몽골의 쿠릴타이라는 고위급 회의에도 참석할 정도로 서열이 높았으며, 그만큼 고려를 인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충선왕의 경우도 쿠릴타이의 외손자였기 때문에 몽골 황실 내에서도 상당히 높은 서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뭐 어쨌든 끈질기게 저항한 고려는 맞지만, 강력한 몽골에 무릎을 꿇은 것은 사실이니 몽골의 강함은 당시 적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대단한 힘을 가진 국가였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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