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양반의 비율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조선시대는 신분제 사회로 양반, 중인, 양민, 천민 등이 있는데요.
이중에서 양반이 전체 사회의 몇퍼센트를 차지하였는지 궁금하여 질문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10년의 호구조사에 따르면,
조선시대 양반의 비율은 총 가구수 2,894,777호 중에 54,217호로 1.9%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에도 상위 1%대가 세상을 호령하고 살았었네요.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전기에는 단정지어 말씀드릴 수 있는 데이터가 부족하지만', 오퍼센트 미만으로 보입니다. 조선 초기에는 더 적었다가 이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족보가 위조되고, 정부재정타개책으로 공명첩 등이 너무 많이 발행되어 양반의 수는 급속히 늘어나게 됩니다. 조선 말에 이르면 70~80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신분제가 사실상 의미를 갖지 못하고 고종 대 갑오개혁으로 공식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기에 이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누구나 양반의 자손이고 싶은 마음은 똑 같을 것입니다.
양반이 초기에는 5프로 이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정말 그럼 양반할만 했겠죠,
시간이 흐르다보니 양반을 돈으로 사는 시대가 돌아와 양반몰락에서 고종때 드디어 신분제 폐지되어 끝내는 있으나 마나한 양반제가 폐지가 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기에는 약 7% 정도였으며, 후기로 갈수록 증가하여 70%까지 상승합니다.
비율이 상승한 이유는 전쟁을 겪으며 궁핍한 나라 재정을 채우기 위해 관직을 돈 주고 파는 공명첩이 무분별하게 발행되는 등 매관매직이 성행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또한 중인들이 장사를 통해 돈을 벌어 몰락한 양반들의 족보를 사들인 이유도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고 대략적인 수 역시 초기, 중기, 하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허나 후기에는 양반의 비율이 무려 70%가 넘었다고 합니다.
[ 조선왕조실록 : 양반의 수를 조절하기 위해 4대 내에서 벼슬살이를 하지 않으면 양반 자리에서 밀려나게 만드는 엄격한 통치제도가 있었다. 양반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3~4% 정도 밖에 안되었다. ]
양반 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족보가 필요한데 그런데 조선 후기에는 몰락 양반들이 족보를 팔거나 가짜족보가 만들어지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기 양반의 비율은 1~2 프로 였다고 하고요 조선 후기 삼정의 문란으로 인한 공명첩 납속책등의 무분별한 발행이 이어져 많은 양인들이 양반의 지위를 획득하였고 철종때에 이르러 백성의 70퍼센트가 양반이었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문윤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양반 비율은 조선 초기 7%에서 후기 70%정도입니다. 후기로 갈 수록 비중이 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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