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학문
친절한코끼리20
친절한코끼리20
22.09.14

조선시대에 양반의 비율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조선시대는 신분제 사회로 양반, 중인, 양민, 천민 등이 있는데요.

이중에서 양반이 전체 사회의 몇퍼센트를 차지하였는지 궁금하여 질문드립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7개의 답변이 있어요!
  • 시간여행자75
    시간여행자75
    22.09.15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10년의 호구조사에 따르면,

    조선시대 양반의 비율은 총 가구수 2,894,777호 중에 54,217호로 1.9%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에도 상위 1%대가 세상을 호령하고 살았었네요.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전기에는 단정지어 말씀드릴 수 있는 데이터가 부족하지만', 오퍼센트 미만으로 보입니다. 조선 초기에는 더 적었다가 이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족보가 위조되고, 정부재정타개책으로 공명첩 등이 너무 많이 발행되어 양반의 수는 급속히 늘어나게 됩니다. 조선 말에 이르면 70~80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신분제가 사실상 의미를 갖지 못하고 고종 대 갑오개혁으로 공식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기에 이릅니다.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누구나 양반의 자손이고 싶은 마음은 똑 같을 것입니다.

    양반이 초기에는 5프로 이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정말 그럼 양반할만 했겠죠,

    시간이 흐르다보니 양반을 돈으로 사는 시대가 돌아와 양반몰락에서 고종때 드디어 신분제 폐지되어 끝내는 있으나 마나한 양반제가 폐지가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기에는 약 7% 정도였으며, 후기로 갈수록 증가하여 70%까지 상승합니다.

    비율이 상승한 이유는 전쟁을 겪으며 궁핍한 나라 재정을 채우기 위해 관직을 돈 주고 파는 공명첩이 무분별하게 발행되는 등 매관매직이 성행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또한 중인들이 장사를 통해 돈을 벌어 몰락한 양반들의 족보를 사들인 이유도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고 대략적인 수 역시 초기, 중기, 하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허나 후기에는 양반의 비율이 무려 70%가 넘었다고 합니다.

    [ 조선왕조실록 : 양반의 수를 조절하기 위해 4대 내에서 벼슬살이를 하지 않으면 양반 자리에서 밀려나게 만드는 엄격한 통치제도가 있었다. 양반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3~4% 정도 밖에 안되었다. ]

    양반 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족보가 필요한데 그런데 조선 후기에는 몰락 양반들이 족보를 팔거나 가짜족보가 만들어지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기 양반의 비율은 1~2 프로 였다고 하고요 조선 후기 삼정의 문란으로 인한 공명첩 납속책등의 무분별한 발행이 이어져 많은 양인들이 양반의 지위를 획득하였고 철종때에 이르러 백성의 70퍼센트가 양반이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문윤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양반 비율은 조선 초기 7%에서 후기 70%정도입니다. 후기로 갈 수록 비중이 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