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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신분제도는 어떻게 나뉘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골품제도는 처음 왕족을 대상으로 한 골제와 왕경 내의 일반 귀족을 대상으로 한 두품제가 별개의 체계를 이루고 있었고 뒤에 두 계통이 하나의 체계로 통합된 것으로 보이며 그 결과 골품제도는 성골, 진골, 구대의 골과 육두품에서 일두품에 이르는 여섯개의 두품을 포함해 모두 8개의 신분으로 나뉘었습니다.성골은 김씨 왕족 중 왕이 될수있는 자격을 가진 최고의 신분, 진골도 성골과 마찬가지였으나 처음 왕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하며 성골이 소멸되자 김춘추때부터 왕위에 올랐습니다.진골 아래의 여섯개 신분은 상하계급으로 구별되며 6두품, 5두품, 4두품은 하급귀족으로서 관료가 될수 있었으나 3두품,2두품,1두품은 그러지 못하여 일반 평민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본래 골품제도는 8등급으로 구분되었으나 성골이 소멸하고 또한 평민들의 등급구분이 없어지게 된 결과 진골, 6두품, 5두품, 4두품, 백성의 5등급으로 정리되었습니다.834년 제정된 거기, 기용, 옥사 에 대한 사용 제한규정에서 보면 4두품은 백성과 같은 규제를 받고 있어 점차 백성층으로 강등된 듯 합니다.3두품, 2두품, 1두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세분된 의미를 잃어 9세기 경이 되면 평인 혹은 백성이라 통칭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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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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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쪽의 고대 문명이라고 하는 히타이트 왕국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히타이트는 B.C1600년경 아나톨리아의 중북부의 하투샤를 중심으로 세워진 나라로 이 제국은 B.C14세기 중반 수필룰리우마 1세에 의해 전성기를 누렸으며 아나톨리아의 대부분과 북부 레반트와 메소포타미아 상류 지역의 일부를 포함한 영역을 다스렸습니다.B.C15세기~13세기 사이 히타이트는 근동 지방의 패권을 놓고 이팁트 신왕국, 아시리아 제국, 미탄니 제국과 충돌했고 최종적으로 아시리아 제국이 히타이트의 대부분을 합병했으며 남은 지역도 프리기아의 세력에 의해 멸망되었습니다.B.C 1180년 멸망한 히타이트 제국은 여러 도시 국가로 분열되었으며 그중 일부는 B.C8세기까지 존속된 뒤 신아시리아제국에게 복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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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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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은 기중기도 없는 시절에 왜 만들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인돌이 무덤의 기능만 한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있으며 고인돌은 여러 정황으로 보았을 때 무덤 이외에 제단, 묘표석의 기능으로 만들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제단의 기능을 주장하는 것은 탁자식 고인돌은 어디서나 사람들이 쉽게 바라볼수 있도록 주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며, 받침돌 위에 큰 덮개돌을 얹어 외형적으로 웅장함을 나타낸다는 점, 무덤방을 형성하기 어려운 받침돌의 구조 등을 들어 무덤보다 제단의 기능을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며고인돌이 무리를 지어 있는 경우 다른 고인돌에 비해 유달리 크거나 받침돌의 방향이 다른 고인돌이 보이는데 이는 묘역의 기념물 내지 묘역 조성 집단의 권위와 위용을 드러내기 위해 축조했다거나 묘역을 표시하는 단순한 기능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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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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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초복이잖아요~ 초복 중복 말복의 말의 유래는 언제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초복, 중복, 말복을 통틀어 삼경일 또는 삼복이라 부르며 경일을 복날로 삼은 것은 경이 오행 중 금을 나타내며 계절로 가을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가을철에 금의 기운이 재디로 내려오다 여름철의 더위가 너무 강해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복종한다는 의미로 여름의 더운 기운이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세번 굴복시켰다고 하여 삼복이라 부릅니다.삼복은 중국 진나라때 시작되었고 진나라의 덕공이 음력 6월부터 7월 사이 세번 여름에 제사를 지내고 신하들에게 고기를 나누어 준데서 유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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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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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멸망할 당시 낙화암 절벽 아래로 실제로 뛰어내렸을까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 문인들이 낙화암과 백제를 소재로 한 글을 쓰면서 백제가 멸망하면서 삼천궁녀들이 이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었구나와 같은 표현을 남겼는데 여기서 삼천은 많은 수를 나타내는 문학적인 수사 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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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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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시대 우리나라 사람은 왜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꿨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황민화정책은 조선인들을 일본의 왕에게 충성하는 국민으로 만들겠다는 것으로 이를 위해 우리의 민족의식을 없애는 민족말살정책을 함께 추진합니다. 즉 우리말과 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 역사를 가르치지 못하게 했으며 일본의 왕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황국신민의서사를 외우게 하고, 일본 왕실의 조상을 모신 신사에 참배하도록 했으며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들겠다는 것으로 창씨개명도 이때 이루어 집니다.일제가 모든 조선인들에게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라고 명한 것은 1939년이며 이름을 바꿀수 있는 기간은 1940년 2월 11일 ~ 6개월간이었고 이 기간에 신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여러 불이익을 주었습니다.각급 학교에 들어가기 어려웠고, 청년들은 징병이나 징용 대상자가 되었으며 일반인들은 식량 배급에서 차별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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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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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으로 들어온건 언제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 이승훈이 18세기 로마 가톨릭교회 신앙을 처음 들여올때 부터 한국의 기독교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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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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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는 왜 88개의 건반으로 이루어졌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피아노 등장 전 건반악기는 하프시코드를 사용했는데 이 악기는 건반을 세개 눌러도 음을 크게 낼수 없었고 당시 선반 뒤에 연결된 현을 뜯어 소리를 냈습니다. 1709년 해머로 현을 두드리는 방식의 피아노가 나온 뒤에 음의 강약 조절이 가능해졌습니다.피아노 발명자는 이탈리아 악기 제작자 크리스토포리이며 그는 자신이 만든 피아노에 피아노포르테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이는 이탈리아어로 부드럽고 강하게 라는 뜻입니다. 초창기 건반은 54개였습니다.18세기 말 건반이 61개로 늘었고, 19세기 82개로 늘었으며 지금의 88개가 표준으로 자리잡은 것은 1900년 이후이며 88개인 이유는 사람의 청각범위 때문으로, 인간이 귀로 들을수있는 소리 영역은 약 20~2만 Hz인데 이 가운데 뇌가 구별할수있는 최고 주파수는 4000Hz입니다. 여기까지의 음역을 연주하는 데 최적의 건반수가 88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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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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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와의 힘겨운 전쟁중에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던 원인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팔만대장경을 만든 이유는 부처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팔만대장경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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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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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의 유래를 알고싶습니다. 왜 초복.중복.말복으로 세번이나 해놨을까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복날에 대한 최초 기록은 사마천이 쓴 중국의 사기에서 나오며 '기원전 679년 진덕공 2년 삼복날에 제사를 지냈는데 성내 사대문에서 개를 잡아 충재를 막았다 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이를 보아 복날은 중국에서 유래한 속절이며 중국 진나라때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고, 삼복날 보양식을 챙겨먹는 풍습이 이때부터 존재했음을 알수 있습니다.세번의 복날을 모두 경일로 정한 것은 중국 후한의 유희가 지은 사서 석명에 나오는데 경은 속성상 오행으로 볼때 금을 의미, 계절로는 가을을 상징합니다.즉 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여름의 뜨거운 더위에 굴복한다는 뜻에서 세번의 경일에 엎드릴 복자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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