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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건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어버이날은 대한민국에서는 1956년 5월 8일로 지정되었고 원래 미국의 어머니날이었습니다.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도 어머니날이었으며 아버지의 날이 별도로 없어 차별당한다는 의견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의견으로 아버지를 포함하기 위해 어버이라는 고어가 재발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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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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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교복은 언제부터 입게 되었으며 어떤 계기로 입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국에서는 성균관의 청금복이 교복의 원조입니다. 청금복은 태종 11년 6월에 처음 제정되었는데 이때 청금복은 청금난삼을 의미했습니다.조선총독부에 의해 성균관의 기능이 강제로 중단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의해 그 명맥만 유지되고있을 당시 일제의 조선지배 정책의 일환으로 일제의 인허가에 등장한 새로운 대학들에서 서구식 복장의 교복형태들이 등장, 대표적인 것은 1886년 설립된 한국 최초의 여학교인 이와학당의 치마저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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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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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와이프는 진짜 악처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소크라테스의 아내는 악처로 알려지나, 앞뒤 정황을 보면 현처일 가능성이있습니다.그는 유명한 철학자이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돈도 없는데 매일 돈 많은 사람과 사색한다고 나가는 남편이 좋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고 소크라테스가 물려받았으나 운영 등에 무관심해 거의 내팽겨쳐진 석공소도 그의 아내가 운영했습니다.그의 아내가 소크라테스를 내쳤다는 기록이 없고 외려 그가 독배를 마시고 사망시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그녀가 다혈질이기도 하고 잔소리에 자주 싸우긴 했지만 부부관계가 파탄날 정도는 아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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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3.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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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사물놀이의 유래는 어떻게 온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본래 풍물놀이, 혹은 농악은 한국의 농경문화에 기반을 두고 성장한 전통 연희문화로 일반 농촌의 민중들은 풍물놀이를 통해 각종 촌락 제의에 활용하거나 유희 수단으로 삼아 마을 차원의 결속력을 다졌고 조선 후기 성장한 유랑예인집단인 남사당 역시 여러 연희 과장 가운데 풍물놀이를 포함하고있었습니다.일제강점기와 전쟁, 산업화를 거치면서 농촌의 해체가 진행되며 점차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70,80년대 청년대학생 및 운동권 지식인 사이에 민족문화재발견의 바람이 불어 일부 젊은 국악인들은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을 보이며 다양한 시도를 접목했고, 이것이 1970년대 또하나의 문화운동인 소극장 운동과 접목되어 민속악회 시나위 창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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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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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화장실을 가장 먼저 사용한 나라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원전 2800년 , 신석기 시대이던 스코틀랜드의 주거지인 스카라브레에 배수구로 통하는 움푹한 벽 구멍이 공중화장실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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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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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의 탈춤 유래가 어떻게 될까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대 이래로 농사가 잘 되라고 농민들이 거행하던 농경의식이 가면극의 기원이라는 설로 농경의식의 모습은 현재 남아있는 서낭굿 등의 부락굿에서 잘 나타나고 있고 농경의식설에 의하면 신의 얼굴을 모방하여 만든 가면은 차차 인간의 모습을 닮은 가면으로 바뀌었고 자연과 갈등을 주술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굿이 사회적인 갈등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려는 것으로 변모해 가면극이 발생했다고 하며 농악대가 악사로 전환되거나 가면극의 관중이 극의 진행에 개입하는 점 등은 서낭굿 단계에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라고 하며 농악대의 잡색 놀이는 가면극의 맹아를 보여주며, 화회별신굿탈놀이나 강릉관노탈놀이는 굿의 형태를 탈피하지 못한 가면극으로 농경의식이 농민의 행사 였기에 가면극은 처음부터 민중의 연극으로 자랐다는 설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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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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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일본의 우리나라 문화재 약탈을 위한거라는 얘기가 있던데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임진왜란인 히데요시의 정복욕이 주된 요인이지만 조선과 명이 삼포왜란 이후 부족한 면포 수출량을 더 통제하자 일본의 면포 값이 올랐고 그것이 전쟁의 원인 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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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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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미술가였다는데 어쩌다 군인이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히틀러는 화가 지망생으로 미대 입시에 낙방하였습니다.히틀러는 자칭 예술가, 실제 백수와 다름없는 무의미한 삶을 보내다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독일 통일을 이룬 뒤 제국이 선포된 이래 황제의 독일 제국은 불패를 자랑하는 강력한 국가였습니다.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육군에서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으나, 1차세계대전이 터지자 독일 제국 정부에 청원까지 하며 바이에른 왕국군에 자진입대합니다.자원입대 이유는 군대는 신체적 구속이었지만 전쟁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었기 때문입니다.그럼에도 굳이 옆나라인 독일 육군에 입대한 것은 당시 오헝제국군이 손가락으로 세다가 모자라서 발가락까지 동원해야 헤아려야 할 만큼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라 자신이 혐오하는 슬라브 병사들과 같이 싸울수 없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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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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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대 소나 황소는 가격이 엄청 비쌋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425년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귀신에게 제사하고 손님에게 대접하는데 쓰거나 먹기 위해 끊임없이 소를 잡는데 1년동안 잡은 소가 수천마리에 이르렀다고 기록되어있고, 제사를 지낼때 소고기를 올린 것은 물론 명절마다 소를 잡아 잔치를 했습니다.나라에서 농사를 지어야 할 소가 있어야 하니 소를 잡지 말라는 우금령을 선포해 도살을 금지하지만 조선후기 영조 때 17세기 후반에 하루에 잡은 소가 1000여마리로 늘어나도 1775년 명절에 도축한 소만 2만~3만마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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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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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말기의 사회적인 모순은 어떤게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신라 말 정치기강이 문란해지며 귀족들의 정권 다툼과 대토지 소유 확대로 백성들의 생활은 더 곤궁해졌고 이 시기 지방 토착 세력과 사원들은 대토지를 소유하며 유력한 신흥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귀족들의 농장이 확대되면서 지방 자영농민들은 몰락, 사회 불안의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중앙 정부의 통치력 약화로 대토지 소유자들이 세금을 부담하지 않는 대신 농민들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되면서 농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중앙 귀족들에게 대항하는 지방 유력자들을 중심으로 무장조직이 결성되었고 이들을 아우른 큰 세력가들이 호족으로 등장하게 됩니다.9세기 이후 자주 발생한 자연재해로 농민의 처지는 더 어려워지고 이에 정부는 수리 시절을 정비하고 자연재해가 심한 지역에 조세를 면제해 주는 등 농민구휼정책을 시행하였고 해적으로부터 농민을 보호하여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했으나 효과는 적었고 따라서 토지를 상실한 농민들은 소작농, 유랑민, 걸식, 화전민, 노비로 전락합니다.9세기 말 진성여왕때부터 중앙 정부의 기강이 극도로 문란해지고 지방의 조세 납부 거부로 국가 재정이 고갈되었으며 이에 중앙 정부는 계속 납세를 독촉, 이에 대항하여 농민들은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상주에서 일어난 원종과 애노의 난을 시작으로 농민 항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중앙 정부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상실하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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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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