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풍물놀이, 혹은 농악은 한국의 농경문화에 기반을 두고 성장한 전통 연희문화로 일반 농촌의 민중들은 풍물놀이를 통해 각종 촌락 제의에 활용하거나 유희 수단으로 삼아 마을 차원의 결속력을 다졌고 조선 후기 성장한 유랑예인집단인 남사당 역시 여러 연희 과장 가운데 풍물놀이를 포함하고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전쟁, 산업화를 거치면서 농촌의 해체가 진행되며 점차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70,80년대 청년대학생 및 운동권 지식인 사이에 민족문화재발견의 바람이 불어 일부 젊은 국악인들은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을 보이며 다양한 시도를 접목했고, 이것이 1970년대 또하나의 문화운동인 소극장 운동과 접목되어 민속악회 시나위 창설됩니다.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사물놀이는 원래 절에서 불교의식 때 쓰인 법고, 운판, 목어, 법종의 4가지 악기를 가리키던 말이었으나 뒤에 이것이 북, 징, 목탁, 태평소로 바뀌었고 지금은 다시 북, 장구, 징, 꽹과리의 4가지 민속타악기로 바뀌어, 일반적으로 사물놀이라고 하면 이 4종류의 악기로 연주되는 음악이라고 합니다.
원래 사물(四物)이란 불교의식에 사용되던 악기인 법고(法鼓)·운판(雲板)·목어(木魚)·범종(梵鐘)을 가리키던 말이었으나, 뒤에 범패(梵唄)의 바깥채비 소리에 쓰이는 태평소·징·북·목탁을 가리키는 말로 전용되었다. 그리고 다시 절 걸립패의 꽹과리·징·장구·북을 가리키는 말로 전용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러한 편성에 따른 음악은 1978년 최초로 ‘사물놀이’라는 이름으로 창단된 연주단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이들의 농악을 다루는 연주 기량은 아주 뛰어났고, 농악을 무대용 음악에 알맞게 효과적인 방법으로 구성하였다. 그래서 농악의 생동하는 음악성과 치밀한 연주 기교는 상당한 반응을 일으켰고, 해외 연주활동을 통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