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어째서 세계1차 대전에서 패배한 후에 2차 대전까지 일으켰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차 대전 후에 많은 전쟁 보상금을 갚아야 했고 자신들의 국토를 이태리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 넘겨 주게 되었고 더군 다나 1930년대 세계 경제 공황으로 인한 경제를 타개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순간 나찌당과 히틀러의 등장으로 2차 대전이 벌어 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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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여론조사가 있었다는데, 어떻게 실시한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세종 대에 여론 조사의 기록이 있습니다. 전국의 전·현직 관리는 물론이고 세민(細民·가난하고 비천한 백성)들에게까지 모두 가부를 물어 그 결과를 아뢰도록 하라.” 1430년(세종 12년) 3월 5일 세종대왕은 가히 혁명적인 명을 내리는데 호조가 ‘전답 1결 당 조 10두 징수’를 골자로 한 공법(세금) 방안을 제출하자 세종이 ‘전국적인 여론조사’를 지시한 것입니다. 이 최초의 여론조사에는 무려 5개월여가 걸렸다고 하니 꼭 4개월이 지난 7월5일에는 ‘여론조사 중간점검 회의’까지 열었다고 합니다. 이때 호조판서 안순(1371~1440)은 “지금까지의 조사를 보면 경상도에서는 찬성이 많고 함길·평안·황해·강원 등은 반대가 많다”고 중간보고했고 세종은 “각 도의 (여론 조사) 결과가 도착하면 중앙 및 지방의 관리들은 공법의 장단점과 해결방안을 마련해서 보고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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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겸사복은 어떻게 임명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시대의 상승승지(尙乘承旨)에 기원을 둔 내사복시 제도(內司僕寺制度)에서 비롯되어 1409년(태종 9)에 처음 창설되었다고 합니다. 그 뒤 1464년(세조 10)에 정비된 조직을 갖추었으며, 주로 국왕의 신변 보호와 왕궁 호위 및 친병 양성 등의 임무를 맡았던 금위(禁衛)의 군사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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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격언 중 공짜보다 비싼 건 없다라는 말은 어떤 말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짜보다 비싼 건 없다’는 말은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명언입니다. 이 말은 세상에는 무료로 얻어 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라는 말이며 모든 것에는 댓가가 따른 다는 말 입니다. 이말은 기회비용 이라는 말을 설명 하는데도 사용 되어 지기도 하는데 어떤 선택을 하면서 포기한 것의 가치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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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희가 동학을 천도교로 개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손병희가 동학을 천도교로 개명 한 이유는 “이제 인문이 천명하여, 각 종교를 자유로이 신앙하는 것이 만국의 공례이고”에 함축돼 있다고 합니다. 손병희는 천도교를 근대종교로 개혁함으로써 종교 자유를 획득하고자 천도교라고 개명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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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기에 쓰였다고 하는 대완구에 대한 질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의 필살기 '대완구'는 임진왜란 때 사용됐던 포탄 비격진천뢰(포탄)를 발사하는데 사용 되었다고 합니다. 대완구의 크기와 무게는 총 길이 64.4㎝, 무게 360㎏으로 된 화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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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은 해운업을 하다가 어떻게 정치에 입성하신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목포상업학교(현 전남제일고등학교)를 1943년에 졸업했다고 합니다. 김대중은 곧바로 해운회사에 취직했고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은 1945년에 그는 해운업계에 널리 알려진 성공한 사업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정계에 뛰어들었고 청년 김대중이 정치에 뛰어든 것은 6.25전쟁과 부산정치파동(釜山政治波動)을 겪으면서 올바른 정치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독재자로 군림하고, 친일파들이 다시 득세하자 부패한 정권과 싸울 것을 다짐했던 1957년 김대중은 가톨릭 영세를 받는다고 합니다. 영세명은 토마스 모어이라고 합니다. 신앙은 그가 겪게 될 고난의 역정에서 의지가 되었고 화해와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살게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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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천인이 양인이 되는 길은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에서 천인이 양반이 되는 길도 있었습니다. 국가에 많은 돈이나 쌀을 기부 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노비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대상이기에 주인이 가지고 있는 노비 문서만 없애 준다고 양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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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야의 종소리는 언제부터 시작됐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후기인 1895년에 종각에서 보신각이라는 명칭으로 바뀌면서 정오와 자정에 타종하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1908년 4월부터 포(砲)를 쏘는 것으로 대체됐다가, 결국 ㅇㄹ제 강점기에 타종이 중단되고, 1929년에 일본 경성 방송국이 특별기획으로 정초에 '제야의 종소리'의 생방송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서른세번 치는 관습은 불교에서 비롯됐는데 도리천 33천에 널리 울려 퍼져 국태민안 (國泰民安)하고 모든 중생이 구제받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도리천은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세계로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악에서 구하기 위해 33천 (天)으로 분신했다는 불교 전설에서 유래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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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호랑이 같은 야생동물도 잡아먹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조선시대에는 호랑이 고기를 먹는 경우가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호랑이는 고기를 먹기 위해서 보다는 그 가죽을 벗기어 그 가죽으로 호피로 된 외투를 만들어 입은 것이 일상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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