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싶은데 학원은 비싸고 방송은 무서워요 방법이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실시간으로 대화 하기를 원하신다면 유튜브 방송이 제일 좋은데 만일 좀 꺼려 지신 다면 네이버 블로그 등을 통해서 그림을 공유 하면서 대화를 남기고 답변 하는 방식도 갠찮을 것 같네요. 유튜브 보다는 좀 더 답답한 마음도 들겟지만 그래도 의사 소통 하시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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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존법이라는 것이 실제로 규정화된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화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 대한 존대 여부를 말하는 사람(화자)이 아닌 듣는 사람(청자)을 기준으로 하는 어법입니다. 흔히 직장 등 공식적인 관계에서 쓴다고 알려져 있지만 상호 존대가 원칙이며, 한국어에서 압존법은 사적인 관계에서 사용하는 존대법 입니다. 현대 국어 사전에서는 하지만 회사 생활에서는 쓰지 말라고 합니다. 사실 써도 안써도 약간 찜찜 하지만 사회생활에서는 안 쓰는게 맞다고 하니 그럴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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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승려들이 참전한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산대사, 사명대사, 영규대사 등은 승병 (승군)을 조직하고 지휘하여 임진왜란에서 맹활약하였다. 임진왜란 초기 관군보다 더 많은 숫자의 의병과 승병이 활동했고, 승전보를 올린 곳에는 의병과 승병이 있었다고 합니다. " 조선 왕조 실록""난중일기""징비록" 등에 승병의 활동이 기록은 되어 있으나 그 활동에 대한 기록이 미비 했던 것은 조선은 불교국가가 아니라 유교 국가라는 국가 이념상의 무제로 승려들에게 고마운 마음은 있었으나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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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의자왕은 왜 의자왕이라고 불리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보통 왕들은 이름이 있고 돌아가신 후에 시호가 정해 집니다. 예를 들어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 374년 ~ 412년 음력 10월 )은 고구려의 제19대 국왕이며 이름은 담덕(談德) 또는 안(安)으로 고국양왕의 아들이시지요. 의자왕은 의자왕(義慈王, 599년 ~ 660년, 재위 : 641년 ~ 660년)은 백제의 제 31대, 마지막 국왕입니다. 이름은 부여의자(扶餘義慈)며 망국의 군주이기 때문에 시호를 받지 못했기에 그냥 의자왕으로 불리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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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습은 어떤 개념이었나요? 그리고 이를 통해 지배자 계층이 어떻게 유지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습은 국법으로 정해지기도 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관습으로 자리잡기도 하였습니다. 전자는 재산 상속이나 신분 및 권력의 세습, 또는 공장(工匠)의 장인의 세습과 같이 ≪경국대전≫ 등의 국법에 규정되어 있으며, 후자는 학문·기예·직업의 전수와 같이 집단의 문화적 규칙에 따라 행해졌다고 합니다.≪경국대전≫ 예전편(禮典篇) 노비토전사패식조(奴婢土田賜牌式條)에는 누구에게 공이 있어 종들 및 토지 몇 결(結)을 특별히 누구 누구에게 상을 주어 영구히 세전(世傳)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하는 는 교지가 있다고 합니다.이를 통해 왕이 특정 가문에서 노비와 토지를 세습할 수 있도록 법으로 인정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세전지재물(世傳之財物)’인 노비와 토지는 함부로 훼손할 수 없었으며, 만일 후손들이 이를 팔아먹을 경우,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토지와 인력등의 세습으로 인해 양반 귀족과 천민 계급은 대를 물려 세습이 가능 했고 이러한 세습 문화는 후일 조선 사회가 새로운 기술이나 문명을 빠르게 흡수 하지 못하게 만든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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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증자가 호재인 경우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유상 증자는 보통 기업이 자금이 필요할 때 주식을 더 발행 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업의 상황이 어려워 어쩔수 없이 주식을 추가 발행 하는 것은 악재에 해당 합니다. 하지만 기업이 성장 하는데 있어서 더 많은 매출을 해야 하기에 공장을 더 짓는다 던지 해서 필요한 유상 증자는 호재에 해당 학도 합니다. 그러므로 호재인지 악재인지는 기업 상황을 유심히 살펴서 판단 하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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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하자본은 무슨 말인가요? 투자자본이랑 다른 말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투하자본(IC)이란 간단히 말해서 기업이 영업( sales) 을 위해서 투하한 자본을 말합니다.영업활동과 관련된 자본만을 의미하고 투자 자산에 투자한 것은 IC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영업과 관련된 기업의 활동을 나타내는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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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들의 기록된 필체는 어떤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글씨체는 그 사람의 인격을 보여 준다고 합니다. 숙종은 조선 후기 임금 가운데 가장 글씨를 잘 쓴 것으로 평가받는데, 경희궁 용비루(龍飛樓)에 걸었던 ‘교월여촉(皎月如燭)‘ 현판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숙종의 글씨를 잘 보여준다고 합니다.영조의 경우 많은 어필 현판을 제작하게 하고 현판의 형태와 제작 방식에까지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이는 어필 현판이 통치자로서 국왕의 권력과 존재감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상징물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전시회에서 만나볼 수 있는 영조 어필 ‘건구고궁’(乾九古宮) 현판은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살았던 창의궁(彰義宮) 양성헌(養性軒)에 걸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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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때는 강화도도 함락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와 고려 시대의 준비 상태 차이 떄문 입니다. 고려는 그야말로 철저한 준비를 하고 몽골의 침략을 대비했다고 합니다. 염하를 지키는 수군, 겹으로 쌓은 성곽, 그 안의 수비군까지 소홀함이 없었습니다. 삼별초는 물론 무신정권의 사병집단인 도방까지 강화도 수비에 동원되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 병자호란 당시의 강화도 수비 책임자들은 한심할 정도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화약을 비롯한 무기를 점검조차 하리 않아서 청군이 닥쳤을 때 제대로 쓰지도 못했지요. 고려 때의 몽골과의 항전만을 떠올리며, 청군은 절대로 바다를 건널 수 없다고 맹신하고 많은 군인들이 주색에 빠져 살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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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문무왕릉은 바다에 있다던데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주 문무대왕릉은 신라 문무대왕의 해중 왕릉(海中王陵)입니다.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앞바다에 있다고 하지요. 1967년 7월 24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58호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바다에 묻힌 것이 아니라 바다 가운데 조그마한 바위 섬처럼 되어 있습니다. 삼국 통일을 이룬 문무왕이 자신이 용이 되어 침입해 들어오는 왜구를 막겠다며, 자신의 시신을 불교식으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어 달라한 유언을 따라서 만들어 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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