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에스페란토'어는 공용어인가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말하는 언어는 중국어입니다.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스페인어를 씁니다.세계에서 가장 쉬운 민족어는 인도말레이어입니다.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언어는 한국어(한글)입니다.그리고 유일한 중립어는 에스페란토입니다.1. 에스페란토란?1887년에 폴란드 안과 의사 자멘호프(Ludoviko Lazaro Zamenhof, 1859-1917)박사가 창안한 배우기 쉬운 국제 공용어.2. 에스페란토 창안의 배경자멘호프가 태어난 폴란드의 비알리스토크는 당시 러시아 지배 아래 있었으며 유태인인 자멘호프는 유태인, 폴란드인, 독일인, 러시아인들이 서로 다른 언어로 씀으로 인해 갈등과 불화가 생긴다고 판단하고, 모든 사람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국제공통어를 고안하게 되었다. 유럽의 여러 언어에 능통하였던 그는, 그들 언어의 공통점과 장점만을 모아 예외와 불규칙이 없는 문법과 알기 쉬운 어휘를 기초로 한 언어 에스페란토를 창안하였다. Esperanto는 그때 사용하였던 자멘호프의 필명으로 '희망하는 사람'의 뜻이며 나중에 이 언어의 이름이 되었다. 3. 에스페란토 주의란? 「1민족 2언어 주의」에 입각하여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 다른 민족과는 중립적이고 배우기 쉬운 "에스페란토" 언어의 사용을 주창하는 『 세계 언어 평등권 운동』이다.4. 에스페란토의 언어 구조에스페란토의 문자는 모두 28개로 a, e, i, o, u 등의 5개의 모음과 23개의 자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자 1음(一字一音)」의 원칙에 따라 모든 문자는 하나의 소리를 내고 또한 소리나지 않는 문자도 없으며, 강세(强勢)는 항상 뒤에서 둘째 음절에 있다. 각 어간에 품사 고유의 어미를 붙여 명사는 -o, 형용사는 -a, 부사는 -e, 동사(원형)는 -i로 끝나고, 시제(時制) 또한 동사의 어간에 과거형은 -is, 현재형은 -as, 미래형은 -os를 붙여 나타낸다(예: amo 사랑, ama 사랑의, ame 사랑으로, ami 사랑하다, amis 사랑하였다, amas 사랑한다, amos 사랑할 것이다). 특정한 의미를 갖는 접두어와 접미어를 사용하여 많은 단어를 파생시켜 사용하므로 단어 암기의 노력이 매우 줄어드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예: patro 아버지, patrino 어머니, bopatro 장인, bopatrino 장모). 복수는 어미에 -j, 목적어는 -n을 붙여 나타낸다. 5. 국내외 에스페란토 단체세계 에스페란토 협회 : 세계 에스페란토 운동을 이끌고 있으며 네델란드 로테르담에 본부를 두고 있다.한국 에스페란토 협회 : 한국에서는 사단법인 한국 에스페란토 협회가 전국에 지부를 두고 보급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에스페란토 문화원 : 매월 에스페란토 보급을 위한 강습회를 개최하고 있다.단국대학교 : 현재 단국대학교(서울, 천안 캠퍼스)에서는 1985년부터 에스페란토를 정규 과목으로 개설하여 학점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 인기가 매우 높다.6. 에스페란토 방송과 문학 작품중국, 바티칸, 폴란드, 오스트리아, 쿠바 등 11개국에서 단파 및 위성방송을 통하여 매일 수차례씩 에스페란토 국제 방송을 하고 있다. 《성경》, 《논어》, 《코란》을 비롯하여《햄릿》등 셰익스피어의 희곡, 《죄와 벌》, 《데카메론》, 《파우스트》, 《돈키호테》, 《설국》 등 동서고금의 작품들이 에스페란토로 번역되었을 뿐만 아니라, 원작 소설과 시의 창작 활동도 활발하다. 한국의 고전과 문학 선집도 에스페란토로 발간되어있다. 7. 에스페란토의 활용인터넷의 보급 확산으로 세계는 지구촌이 되었고,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는 것이 인류의 최대 관심사인 지금, 에스페란토는 인종, 종교, 이념, 국적을 초월하여 세계 모든 사람들이 특정 민족어를 사용하지 않고 대등한 입장에서 자유로운 대화를 가능케 해주고 있다. 실로, 에스페란토는 '인터넷 시대의 국제어'라 할수 있다. 이곳 누리집 (홈페이지)의 『추천 사이트』에 가면 이를 직접 체험 할수 있을 것이다.
Q. 기네스북에 등재된 음악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Michael Jackson의 82년 [Thriller]앨범은 5,200만장의 판매고로 기네스북 1위, 미국 밖에서 1억장 이상 팔린 최초의 앨범, 최장 기간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타이틀곡 '스릴러'의 뮤직비디오는 '가장 성공한 뮤직비디오'. 1984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고의 남성 보컬' 등 총 8개 부문을 휩쓸며 '한 해에 가장 많은 그래미상을 받은 인물'. 이후 5개의 그래미상을 추가로 거머쥐며 '역대 가장 많은 그래미상을 받은 인물'. 1992년 '음악업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가수'. 싱글 '유 아 낫 얼론(You Are Not Alone)'은 '발매 첫 주에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한 최초의 가수'. 여동생 자넷 잭슨과 함께 작업한 싱글 '스크림(Scream)'의 성공은 잭슨 패밀리에게 '가장 성공한 팝가수 가족'. '영국 차트에서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싱글을 순위에 올린 인물'. 'R&B(리듬앤블루스) 가수 중 1위 앨범을 가장 자주 낸 아티스트'였던 잭슨은 2006년, '역대 가장 성공한 연예인'. 최연소 빌보드 1위.아오야마 테루마는 지난 2008년 발표한 싱글 '소바니이루네(곁에 있을게)'가 롱벨소리 최다판매로 기네스북에 등재.AKB48의 유사 연애게임 'AKB48 1/149 연애 총선거'가 기네스북 '가장 많은 팝 가수가 등장하는 비디오 게임'.AKB48 세계에서 제일 인원수가 많은 팝 그룹.Paul McCartney 가장 성공한 팝 아티스트로 기네스북에도 등재.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성공적인 작곡가’로 기록. Beatles의 Yesterday는 가장 많은 가수들이 따라 부른 노래로 기네스북 1위.Baccara 여성그룹 최대 음반 판매량.Bing Crosby의 White Christmas 크리스마스 캐롤 송 중 3천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싸이의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가 유튜브 최다 추천(likes, 좋아요)기록. 휘트니 휴스턴은 그래미상 6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21회 수상 등 총 411개의 상을 받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여가수. 헝가리 출신 하바시는 세계에서 피아노를 가장 빠르게 치는 헝가리의 유명 피아니스트로 기네스북에 등재 Brian Wayne Transeau의 ‘Somnambulist (Simply Being Loved)’라는 곡은 보컬의 쪼개지는 편집이 6178번으로 구성되어있어 가장 많이 쪼개진 음악. [2015년 기네스북에 등재 "예정" 기록]메탈리카(Metallica)는 '1년간 7개 대륙에서 공연한 유일한 밴드.메탈리카는 2013년 북미, 남미,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프리카에 이어 남극대륙에 위치한 기상관측기지에서 이색 퍼포먼스를 보며주면서 이와 같은 기록을 세웠다.에미넴(Eminem)은 [Rap God]을 통해 '가장 많은 단어를 포함한 곡. 6분 4초 동안 총 1,560개의 단어가 나온다.마일리 사일러스(Miley Cyrus)는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스타'로 등재되는데, 이는 작년 MTV VMAs에서 보여준 'Wrecking Ball'의 무대 덕분(?)이라고 한다.샤키라(Shakira)가 페이스북에서 1억개의 좋아요(like)를 받은 첫 번째 인물.케이티 페리(Katy Perry)는 가장 많은 트위터 팔로워를 보유한 인물.(52,463,838명)원 디렉션(One Direction)은 데뷔 앨범부터 연이어 세 장을 발매 첫주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려 놓은 그룹.
Q. 한자는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자의 기원한자는 전설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5천년 전, 중국의 황제(黃帝)라는 임금 때창힐이라는 사람이 새와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그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한다.그러나 창힐 한 사람이 그 많은 한자들을 만들었다고 믿기는 어렵다.한자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다듬어져 오늘날과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가장 오래된 한자의 형태는 약 3,500년 전, 황하 유역에서 발달한 은나라 때 만들어진갑골문자(甲骨文字)이다.이것이 여러 시대를 거치는 동안 그 자체가 변형되고, 그 수가 증가되어 현재에 이르렀다.초기에는 3천 자 정도이던 것이 한(漢)나라 때에는 1만 자, 당송(唐宋) 시대에는 3만 자,淸(청)나라 때에는 4~5만 자를 헤아릴 정도로 불어났다.
Q. 크리스마스는 언제부터 유래되었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4세기 경 소아시아지역(지금의 터키에 해당)에 살던 '성 니콜라스'라는 실존 인물이 산타의 기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성 니콜라스는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풀었고, 이 이야기는 유럽 전역으로 널리 퍼지게 됩니다. 17세기 경 미국으로 이주한 네덜란드 사람들이 성 니콜라스를 네덜란드식 발음으로 '산테클라스'라고 불렀고, 이것이 나중에 '산타클로스'라는 영어 발음으로 바뀐 것입니다.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흔히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는데요,메리는 즐겁게라는 뜻이고,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와 미사를 뜻하는 단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즉,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그리스도에게 즐겁게 미사를 올린다'라는 뜻입니다.크리스마스는 약 4세기 경부터 기독교의 기념일로 지정되었고, 약 19세기 경부터는 요즘처럼 대중적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풍습이 정착되었습니다.우리나라는 광복 후 미국의 영향을 받아 1950년부터 이 날이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Q. 노래의 유래가 너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곡조를 붙여 부르는 소리나 말, 또는 글.음악의 관점에서는 좀더 엄밀하게 ‘시에다 곡을 붙인 하나의 악곡 형식’이라고 정의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음악적 형식의 엄밀성을 앞세운 것이 다를 뿐이다. 노래가 곡조와 말소리라는 두 요소로 이루어진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곡조+말소리’의 형식을 갖춘 것이면 일단 노래로 규정할 수 있겠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우선 곡조만 하더라도 짧고 단순한 것에서부터 길고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밭에서 말이나 소를 몰 때 내는 소리인 ‘이랴 낄낄낄’이나 장사꾼의 외침 등은 분명히 일상어와는 다른 곡조를 지니고 있지만 이것들을 노래라고는 하지 않는다. 곡조의 단순성 때문에 노래라는 양식에 포함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곡조가 단순하다고 해서 노래에서 반드시 배제되는 것도 아니다. 자장가나 베틀노래 같은 민요들은 단순한 곡조가 반복되는 것이지만 노래의 범주에 든다. 이는 곡조의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의미의 맥락이 분명한 노랫말이 있어서 곡조의 단순성을 보완해 주기 때문이다.그렇다고 해도, 책을 읽는 독서성(讀書聲) 같은 것은 노랫말의 맥락이 정연하지만 노래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 까닭은 곡조의 변화가 단순하기 때문인데, 이 독서성이 전문적으로 노래하는 사람에 의해서 다듬어진 시창(詩唱)이나 송서(誦書)는 곡조의 변화폭이 넓어서 노래가 된다.이렇듯 곡조의 단순성과 변화성은 노래인 것과 노래 아닌 것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를 기준으로 해서 가르는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 없고 관념 또는 관습으로 인지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노랫말의 경우에도 어느 선까지는 노래로 인정되고 어디서부터는 아닌가라는 구분이 확연하게 체계화된 바는 없다. 장사꾼의 외치는 소리는 그 뜻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곡조의 단순성 때문에 노래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청산별곡 靑山別曲>에 나오는 ‘얄리 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라든가, 아이들의 동요인 ‘랄랄랄……’ 같은 것은 그 자체로는 지시적 의미가 없으면서도 노래라고 본다.또, 노래의 발생기(發生期)에는 오늘날 미개부족의 그것처럼 무의미한 음성에 곡조를 붙여 불렀을 것으로 추론하는데 이도 또한 노래로 본다. 이러한 사례들로 미루어보건대, 노래와 노래 아닌 것을 분간하는 데는 노랫말보다 곡조의 변화폭과 양식성이 더 크게 관여하는 것 같다.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경우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상가(喪家)에서 곡을 하는 곡성은 흔히 사설까지 곁들이는 수가 있으므로 곡조의 변화와 함께 노랫말의 맥락까지 갖추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노래라고 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노래’의 어원 및 특성과 관계가 깊은 것으로 이해된다.중세 국어자료가 보여주는 바로는 ‘노래’는 그 당시 ‘놀애’로 표기되어 있으므로 ‘놀다[遊]’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므로 노래는 오락성 또는 연희(演戱)의 성격을 명칭 자체에 이미 담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점은 ‘노래’와 ‘부르다’가 관용적으로 결합하는 사실과도 부합된다. ‘부르다’의 여러가지 뜻 가운데서 ‘외치다’의 뜻이 큰소리로 노래한다는 성격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그런데 한자로 된 기록이나 기타 자료에서 노래를 가리키는 말은 여러가지로 나타난다. 가(歌)·악(樂)·요(謠)·곡(曲)·성(聲)·사(詞)·타령·성악·소리·가락 등이 그것이다. ‘노래·가·소리’ 같은 것은 범칭이고 ‘요·곡·타령’ 같은 것은 개별적인 작품을 가리키는 경향이 있지만, 그 쓰임새가 반드시 일정한 것은 아니다.그 밖에도 ≪삼국유사≫에 나오는 ‘창량(唱良)’ 같은 것도 노래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노래와 관련하여 여러가지의 명칭이 더 있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1) 기원노래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단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역사 이전의 시대에도 노래는 있었을 것이다. 그 초기의 노래라는 것은 원시적인 타악기에 맞추어 별 의미가 없는 소리를 지르는 정도였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동·서양에서 두루 통용되고 있다.노래에는 노랫말이 필수적이다. 원시시대를 상고해 올라가 보면 언어의 불완전한 발달이 예상되어 그 때에는 노랫말도 무의미한 것으로 채워졌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은 노래에서 말소리보다 곡조가 선행한다고 보는 데서 이루어진 것이다.그러한 관점에서 음악의 기원을 보게 되면, 감정이 흥분된 상태의 절규에서 노래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혹은 감정을 소리로 나타내려는 인간의 욕구에서 노래의 기원을 찾기도 하고, 노동의 리듬과 공동작업의 맞춤소리에서 발전한 것이 노래라고 하기도 한다.그런가 하면, 음향에 의하여 신호를 전달하기 위해서 원시적 악기를 사용하였고 거기서 오는 악음(樂音)의 쾌감 때문에 노래가 창조되기 시작하였다는 논의도 있다. 또는 종합예술의 형태인 춤에 부합해서 발달하였다고 보기도 한다.그러나 곡조에 선행해서 일상회화의 고저나 강약과 같은 변화요소를 발전시킨 것이 노래라고 하는 말소리 선행설도 있다. 따라서 지금의 단계로는 노래의 기원을 어느 한 가지로 말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2) 삼국시대 이전노래의 기원이 언어에 선행하거나 또는 병행한다는 사실에 미루어 볼 때, 우리나라의 노래도 구석기시대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구석기시대가 언제인가 하는 문제가 역사학계에서도 아직 확실하게 밝히지 못한 상태인 데다가, 이 시대에 노래의 흔적을 찾을만한 고고학적 자료도 알려진 바가 없다.그러나 구석기시대인들의 유물 가운데서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을 조각한 것이 있으므로 그들의 활동이 주술적(呪術的)인 신앙과 관련되어 있었으리라고 보고, 그 주술의 방식이 노래의 초기적 형태와 유사할 것임을 추측할 수 있는 정도다.대략 서기전 4천년 정도로 추정되고 있는 우리 나라의 신석기시대인은 고아시아족으로 추정된 바 있다. 뒤에 이들이 단군조선을 건국하여 한민족의 형성에 뿌리 구실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은 우주만물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늘에 제사하는 습속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후대에 행해진 제천의식으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종교의식에 노래가 있었을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신석기시대에 와서 노래의 구체적 기원을 찾는 것은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우리 노래의 기원도 고아시아족의 음악문화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한편, 서기전 10세기 전후 남만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청동기시대에는 한민족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예맥족(濊貊族)이 알타이계 언어를 사용하고 농기구를 만들어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이들이 씨를 뿌린 뒤와 곡식을 거둔 뒤에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는 중국 쪽의 기록에서 이들의 노래는 농경생활과 밀접한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同盟), 예(濊)의 무천(舞天)이라든가 마한의 노래는 대체로 춤동작과 결부된 것이며,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의식으로 행해졌다는 점에서 종교적 성격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고, 그 동작이 오늘날의 ‘두레’와 흡사하다는 점에서 농업사회의 습속이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결국 이 시기의 노래는 춤과 함께 존재하였고 신에게 기원하는 종교적 기능을 가졌으리라는 점은 공통적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그런데 이 시기에는 노래의 담당층과 향유층이 따로 나뉘지 않고 모두가 함께 제천의식에 동참하였을 것이고, 그 형태는 의식에 참여한 사람들이 단순한 형태의 춤과 함께 그 노래도 비교적 단조로운 악곡을 지녔을 것으로 짐작된다.이 시기에 사용된 악기에 대해서는 기록이 별로 없으나 변진(弁辰)에 대한 중국기록에 보면, 슬(瑟)이라는 악기가 있었다고 한다. 또 서기전 2천년경의 것으로 보이는 골제적(骨製笛)이 있지만 이것들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