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유씨와 류씨는 같은 성씨 아닌가요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먼저 우리 나라에 성씨 중에는.. 유씨와 류씨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립니다. 즉 원래 한자로 '류'로 소리나는 성을 가진 사람과.. '유'로 소리나는 성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이름은 성이 맨 앞에 오니까.. 예를 들어 류동호라는 사람의 이름을 부를떄는 '유동호'라고 들립니다. 이것이 두음법칙인데요. 중학교에 가면 자세히 배우시겠지만..두음법칙이란 특정한 모음 앞에서 ㄴ,ㄹ이 음절의 첫소리로 발음날때 ㅇ,ㄴ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柳(버들 유)라는 한자는 이렇게 두 가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細柳(세류)柳綠色(유록색)유-류가 똑같은 한자인데, 맨 앞에 오느냐,, 다른 글자 뒤에 오느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죠?이것이 두음법칙입니다. 청록-녹색, 노동-근로 등 이러한 예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버들 류(유) 오얏 리(이), 비단 나(라) 등 두음법칙의 적용에 따라 두가지로 소리날 수 있는 성씨가 몇 가지 있는데..현재 대법원에서는 이 성들을 두음법칙을 적용해 이, 유, 나 등으로 통일해 표기할 것을 정하고 있고,출생신고 등 관청에 등록되는 모든 이름의 표기를 그렇게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우리가 아는 유관순 열사도 사실은 류관순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류씨성을 가진 친구가 일상 생활에서는 자기 이름을 류씨로 표시하는 것은 문제 없지만..주민등록등본상의 이름은 현재 '유'라고 표시해야 하므로, 실명인증을 하는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서는본명이 유00로 나올 수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정작 이 이름을 쓰는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성씨를 다르게 표기하는게 옳지 않은 일이라고 해서대법원에서 법을 개정했다고 하더군요. 이제는 두음법칙에 따라 성을 고쳐 쓸 필요 없고 그렇게 등록된 사람들도절차를 밟으면 원래의 성대로 표기할 수 있다고 합니다
Q. 차티스트 운동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차티스트(Chartist) 운동이란, 19세기 중엽 영국에서 있었던 노동자들의 운동입니다. 그들은 인민헌장(People's Charter)를 정치권에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 운동을 벌였습니다. 이 인민헌장의 내용은 보통선거, 비밀선거, 선거구의 공평화, 매년의 의회 개선, 의원의 재산 자격 폐지, 의원 세비 지급 등의 6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1800년대 중엽은 영국에서 한창 산업혁명이 벌어지던 시기입니다. 기존의 농촌 사회는 해체되고, 농촌으로부터 인구가 집중되며 도시화가 벌어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의 영국에는 노동법도 없었기에 상당수의 저임금 노동자들은 하루의 긴 시간을 열악한 조건속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또한 이 시기 영국에는 명예혁명 이후 의회민주주의와 입헌군주제가 싹트긴 했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투표권이 부여되었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투표권을 가진 사람은 전체 인구의 5%도 되지 않는 특권계층이었습니다차티스트들은 자신들의 열악한 현실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선, 자신들이 정치적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노동계급이 정치인들을 뽑는데 관여할 수 없다면 정치인들은 그들의 눈치를 볼 이유도 없기 때문이라 여겼죠. 차티스트 운동은 몇 차례에 걸쳐서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차티스트 운동을 벌인 구성원들 중에서도 중산 계급 운동가부터 가난한 저임금 노동자들 다양한 계층들로 분포되어 있었습니다.그 배경을 먼저 말하자면, 1832년 영국에는 한번 투표권 개정이 일어나 유권자들의 수가 늘어났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집권한 휘그당 정부는 1834년 '신 구빈법'이라는 법안을 통과시켜서, 빈민들에 대한 구호를 상당부분 폐지합니다. 따라서 공업이 발전했던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신 구빈법 반대운동'이 전개되고 이 세력이 이후 차티스트 세력이 되면서 차티스트 운동의 대중적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따라서 차티스트 운동이 처음 출범한 것은 1830년대 말이었습니다. 그들은 인민헌장의 법제화를 통해 정치 질서를 민주적으로 개혁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구성원의 출신 성분, 성향은 다양하게 갈리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는 공장주, 은행가 같은 중산 계급도 있었고, 비교적 높은 임금을 받는 숙련 노동자들도 있었고, 그보다 열악한 조건에 시달리는 저임금 미숙련 노동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128만명의 서명을 모아 인민헌장의 법제화를 요구하는 청원을 의회에 제출했지만, 이는 235대 46의 표결로 의회에서 거부당하고, 그 직후 차티스트 운동의 지도부는 대다수가 체포됩니다. 이 이후 차티스트 운동의 구심점이 사라져버리고, 남은 지도부는 이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무능을 보여주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대규모 파업을 일으키지만 이는 군대에 의해 쉽게 제압되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