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길가메시의 서사는 고대 왕권의 정당성을 어떻게 세워주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태고의 작품이지만, '길가메시 서사시'는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도 큰 울림을 줍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 속엔 원시의 자연 상태에서 온전히 벗어나서 도시 문명 속에서 우쭐대며 살아가는 오만한 인간의 허영과 어리석음을 꼬집는 날카로운 풍자와 은유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길가메시 서사시'는 문명의 가장 큰 특징인 정치적 조직화가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줍니다.일단 정치적으로 국가 조직에 배속된 인간은 웬만해선 정부를 벗어날 수가 없는데, 흡사 인위적 교배를 통해 가축화된 동물이 야생으로 회귀하기 힘든 이치와 다르지 않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화된 사회에 일단 편입되면 주민들은 합법적 공권력을 갖춘 정부의 감호 속에서 납세와 부역의 의무를 집니다. 일단 그렇게 정치적 삶에 익숙해진 인간은 무정부의 자연 상태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 점에서 문명화된 삶(civilized life)은 곧 정치적 삶(political life)이고, 정치적 인간은 자연 상태를 벗어난 인간임을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Q. 아즈텍 신화에서 사람의 희생 의식이 신과의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아즈텍 의식의 가장 유명한 측면 중 하나는 희생이었습니다. 아즈텍인들은 우주를 균형 잡기 위해 인간 희생이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희생당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전사, 노예, 또는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이었습니다.희생 의식은 종종 사원 정상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제사장은 희생자의 가슴을 열어 심장을 꺼내고 신에게 바쳤습니다. 희생된 사람의 몸은 일반적으로 사원 밖에 묻히거나 강에 던져졌습니다.아즈텍인들의 희생 관행은 종종 야만적이거나 잔인하다고 여겨지지만, 그들에게는 종교적 의무였습니다. 그들은 인간 희생이 우주의 질서와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었습니다.아즈텍 의식과 희생은 아즈텍 문명의 중요한 측면이었습니다. 그들은 신들과의 관계 그리고 죽음을 바라보는 방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Q. 크렌치가 독일사회주의랑 통일당 서기장이랑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1989년 9월 헝가리 국경이 느슨해진 틈을 타고 동독 주민 1만 3000명 이상이 헝가리를 지나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었습니다. 국경을 넘다가 체포된 사람들은 부다페스트로 이송되었는데, 이들은 동독으로 송환되는 것을 거부했고, 뒤이어 동독 내에서 대대적인 대중 시위가 일어나자 동독의 최고 지도자 호네커는 사임했습니다.그런데도 시위는 더 확대되어 갔고, 많은 주민이체코슬로바키아를 경유해 서독으로 가고자 했습니다.호네커의 뒤를 이어 등장한 크렌츠는 사태 완화를 위해 난민들의 서독 방문을 허용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으나, 급박한 상황 속에서 상황이 와전되고 급기야 서독 방문이 즉각 허용될 것이라는 언론의 오보까지 발생했습니다. 이에 고무된 많은 동독 시민이 무력해진 국경 경비대를 뚫고 서베를린으로 넘어갔습니다.이렇게 시작된 베를린장벽 붕괴는 공식 연표에는 1989년 11월 9일로 기록되어 있지만, 장벽 전체가 철거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시민들은 해머와 곡괭이를 가지고 벽을 부수기 시작했고, 동독 정부도 추가로국경 초소를 개방하기 시작했습니다.결국 다음날인 12월 23일부터 서베를린 시민을 포함해 서독 주민들이 비자 없이 자유롭게 동베를린을 비롯한 동독 지역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