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인도와 파키스탄은 종교 때문에 분리된 것으로 아는데이 둘의 민족 은 같은가요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문화적인 면과 혈통, 언어에서는 파키스탄과 인도 북부 지역과는 관련이 있는 편[2]이지만, 힌두교와 시크교를 주로 믿는 인도와는 달리 파키스탄은 이슬람이 주 종교이다. 이 때문에 갈등을 좁히지 못했고, 영국의 식민통치로부터의 독립 이전부터 파키스탄은 인도로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었다.[3] 결국 유혈충돌이 발생하였고 양측의 대립 끝에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 인구가 많았던 인도 북서부 지역과 동벵골 지역 두 곳이 파키스탄으로 독립하면서 인도와 파키스탄은 분리독립하게 되었다.
Q. 우리나라 최초에 소설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최초의 금서, 금오신화금오신화의 저자인 김시습은 무려 5살 때 중용, 대학에 통하여 신동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명석했다고 한다.세종대왕이 5살의 그를 불러 칭찬하며 비단을 하사할 정도였으니 말이다.그렇게 세월이 흘러, 그는 삼각산에서 세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3일간 문을 닫고 나오지 않다 책을 불살라 버렸다고 한다.결국, 머리를 깎고 21살에 방랑의 길에 들어서 세상의 허무함을 글로 지어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하였다.그 와중에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된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은 사형에 처했고, 이 시신들은 모두 김시습이 수습하게 된다.숙부가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는, 유학의 도를 행할 수 없는 세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행위는 없다는 사실을 김시습은 깨달았다.이 난세에서 오로지 자기 한 몸만이라도 깨끗이 하며 방랑하는 것 또한 시대를 염려하는 지식인의 한 행동이 될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후에 단종을 제사 지낸 후 김시습은 승려의 차림을 한 채 전국 방방곡곡을 유람했고, 결국 세조에게 도첩을 받게 된다.또한, 금오산실에서 기거하면서 김시습은 문학 활동에 주력하였다.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를 지은 것도 이 무렵이다. 김시습은 평생 관직에 오르지 않았다. 단종에 대한 절개를 지킨 그는 후에 생육신으로 추앙받으며 존경받는 인물로 꼽히기도 하였다.금오신화는<만복사저포기 萬福寺樗蒲記>·<이생규장전 李生窺牆傳>·<취유부벽정기 醉遊浮碧亭記>·<남염부주지 南炎浮洲志>·<용궁부연록 龍宮赴宴錄> 등 5편이 전해지고 있다
Q.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한 번이라도 민주주의를 해 본 적이 있나요
현재 러시아는 헌법 상으로 민주주의 국가임을 표방한다. 러시아의 헌법에는 삼권분립과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등 일반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표방하는 내용들이 나온다. 즉 북한이나 중국처럼 제도적으로도 공산당 일당 독재를 보장하는 나라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러시아가 제도상으로 민주주의를 처음 접하게 된 시기는 역설적으로 페레스트로이카가 본격화된 1980년대 말부터 사회 전반적으로 극심한 혼란기를 겪었던 1990년대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었던 보리스 옐친은 정치, 경제적으로 무능하다는 평가를 들었어도 제도상으로 민주주의를 보장하고자 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1990년대 극심한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겪으면서도 언론이나 표현의 자유에 있어 현재보다 훨씬 자유로운 환경을 누릴 수 있었다.[5]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2000년대 초반에서 2010년대 중반까지 정치적으로 다양한 야권세력이 성장할 수 있게 된 바탕이 되었다.
Q. 동굴이나 암벽에 그린 벽화는 왜? 그린 걸까요?
동굴벽화(洞窟壁畵)는 동굴이나 암벽(cliff, rock face)의 벽면 및 천장 부분에 그려진 그림의 총칭이다. 현존하는 인류 최초의 그림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벽화는 4만 년 전의 후기 구석기 시대부터 제작되었다.라스코 동굴의 벽화벽화는 모두가 동굴 깊숙한 곳에 그려져있고 입구 부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광물성의 안료(顔料)로 그려진 채화(彩畵)와 윤곽을 파 낸 선각화 두 종류가 있다. 가장 오래된 벽화는 오리냐크 초기의 손바닥의 음형(陰形)이나 양형(陽形)이다. 이 손모양과 병행하는 시기에, 점토질의 암반(岩盤)에 손가락으로 아무렇게나 그린, 평행하고 교차하고 굴곡된 이른바 '마카로니'가 그려졌다. 중기에는 데생풍(風)의 동물이 많지만 동물의 다리는 두 개만이 나타나 있고 형식은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서서히 묘선(描線)에 비수(肥瘦)가 생기고 또 다리도 네개로 표현하게 된다. 후기에는 드물게 2채화(二彩畵)가 나타나지만, 그러나 오리냐크 회화는 본질적으로 데생이다.솔류트레기(期)에서는 회화적 유품이 없고, 막달레니아 초기에 소묘풍(素描風)의 회화에서 다시 출발한다. 점차 선의 억양이 생기고 중기에는 동물의 털이 선영(線影)으로 처리되거나 찰필화(擦筆畵)와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 평도(平塗)한 회화가 나타난다. 그리하여 후기에는 적색·갈색·황색·흑색 등 두 색 이상의 그림물감을 섞거나 분류해서 칠한다든지 하여 형상의 입체감과 현실감을 꾀하는 다채화(多彩畵)가 나오게 된다. 동물의 자태도 자연스럽게 되어 순간의 운동이 매우 리얼하게 그려지게 되었다. 막달레니아 최종기엔 적색의 반점이나 염주알 같은 도형적(圖形的)인 표현이 나타나서 구석기시대 미술은 그 막을 내리게 된다. 저명한 유적으로서 오리냐크기의 크냐크, 패슈 메를, 막달레니아기의 니오, 라스코, 알타미라, 폰 드 고옴 등이 있다.
Q. 우리나라 군대역사에 대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대한민국 국군(大韓民國國軍, 영어: Republic of Korea Armed Forces)혹은 줄여서 한국군, 남한군은 1948년 8월 15일에 창설된 대한민국의 정규군으로, 대한민국 육군, 대한민국 해군, 대한민국 공군과 대한민국 해군 예하의 대한민국 해병대로 구성되어 있다.대한민국 국군의 창설 후, 한국 전쟁을 거쳐 1964년에는 베트남 전쟁에 파병, 1973년 철수 때까지 32만 명이 참전하였다. 그 외에도 1991년 걸프전, 1993년 소말리아, 1999년 동티모르 등에 세계 평화 유지를 위해 파병되었다. 창설 당시 국군의 모든 지휘권은 대한민국 정부에 있었으나 한국 전쟁 당시에 이승만 대통령이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에게 국군의 모든 작전지휘권을 이양하였고, 1978년 7월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되면서 유엔군 사령부에 있었던 국군의 모든 작전지휘권(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로 이양되었다. 1992년에 지상군 사령부에 대한 지휘권이, 1994년에 평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게 환수되었다. 2022년 세계 군사력 순위 평가에서 대한민국 국군의 군사력 순위는 8위 영국, 7위 프랑스에 앞선 세계 6위로 평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