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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을 공유하고 모르는 것을 함께 공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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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준 전문가
맑은글터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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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나누어지는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구분은 간단합니다.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시점은 고려시대였고, 이후 정도전의 의견을 받아들여 고려의 색을 없애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국호를 바꾸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당시 강국이었던 명나라에 새롭게 조선이라는 국호로 외교적으로도 인정받았던 시점부터 고려 시대는 막을 내리고 조선시대가 시작된 것이라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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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점묘화란 무엇이며, 이 예술 형식의 주요 특징과 특유한 스타일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점묘화는 점을 찍어서 그림을 그리는 화법으로 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쇠라가 개발했다고 알려져있고, 그의 동료인 폴 시냑도 함께 점묘화의 개발에 이바지를 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신인상주의로 분류가 되었습니다. 보통의 그림의 경우 선이나 면을 물감으로 칠해서 표현하는데 점묘화는 그 선이나 면을 점으로 찍어서 표현하고 명암등을 구분할 때 농도를 달리한 점을 찍어 그라디에이션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점묘법으로 그린 그림은 가까이서 보면 그 점들이 드러나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멀리서 작품을 바라보았을 때는 일반 유화와 같은 느낌입니다. 즉 터치의 방법이 점으로 표현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점묘화는 상당히 과학적인 원리가 들어가 있는 그림으로 빛과 물감의 차이를 인지하고, 색이 섞여지면 탁해지고 검은 색에 가까워진다는 것에서 착안하여, 점묘법으로 찍은 여러 점에서 반사되는 빛을 우리의 시각이 각기 다른 빛이 아닌 여러 빛이 섞인 색으로 인식한다는 원리로 색의 조화를 표현하였습니다. 즉 물감은 섞이면 탁해지지만, 점묘법으로 찍은 물감들은 섞이지 않고 반사되는 그 빛이 섞이는 것이므로 훨씬 밝고 선명하게 보이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러한 점묘화의 원리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 기기의 이미지를 화면에 표출하는 방식과도 다르지 않는 최첨단의 과학원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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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제사나 차례지낼때 술잔을 향불위에서 두번돌려서 올리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원래 초에 불을 붙이고, 향을 피우는 이유는 조상의 영혼을 불러온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제를 올릴 때 술잔을 두 손으로 받쳐 올려 상에 올리는 행위가 제단 앞에 있는 향 위를 지나다 보니 그것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의 행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집에서는 오른쪽으로 몇 번 왼쪽으로 몇 번 돌리는 집도 있고, 향 연기에 한번 그을리는 정도로 하고 술잔을 올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확한 설이 없으니 음향오행에 의해 제사상 기준으로 시계 방향으로 6시-9시-12시-3시 또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는 집안도 있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야 하다는 집안도 있고, 잔을 돌리지 않고 그냥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올린다는 집안도 있고 아주 다양합니다. 어떤 이유로 다르게 이어져 왔는지는 모르나 그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냥 각 집안에서 내려오는 전통적인 방식에 대해 존중하고 서로 간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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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역사 속 공신으로 인정되면 특혜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삼국시대에도 녹공을 내렸다는 기록은 있으나 공신책봉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는 듯 합니다. 고려 때는 공신의 경우 토지와 노비를 내리고, 무신정권 이후에는 그 자손에게도 특혜를 대물림하게 확대되었습니다. 조선에도 그대로 이어져 그 명칭만 달리하였다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공신의 정도를 더욱 세분화하여 1~4등 공신 등 등급을 나누어 그에 따른 특혜의 정도도 달리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공신호는 개국공신부터 시작하여 총 28개에 달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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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근현대사 관련서적보다가 조세형이란인물이 있던데 왜 대도라고 부르는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과거 조세형이라는 사람은 1970~80년대 전과 17범으로 유명한 절도범이었습니다. 그가 유명인사의 집도 많이 털었기 때문에 별명이 대도 조세형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전직 국회의원, 현직 부총리, 유명기업 사장, 국내 재벌가 딸의 집 등에서 엄청난 명품들을 훔쳤기에 그랬습니다. 조세형은 밤에는 도둑질을 하지 않고, 낮에 부자집만을 골라 절도행각을 벌였습니다. 부자들이 뒤가 구려서 잘 신고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절대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훔칠 것이 많아도 딱 20분만에 작업을 하고 나왔다고 합니다. 외국인의 집은 나라망신이라 털지 않고, 판검사의 집도 털지 않았다고 합니다. 판검사의 집은 자신은 잡히지 않겠지만, 다른 절도범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그랬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훔친 돈 및 재물의 30%를 가난한 사람을 위해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도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당시 정치인, 부자들에 대한 반감이 심했으니까요. 하지만 조세형은 그냥 절도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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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미래에는 어떤 욕구가 인간을 지배하게 될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문명이 고도화됨에 따라서 더 많은 분야에서 디지털화가 이루어질 것이고, 최근 대두되어 발전하고 있는 AI 기술에 의해 지금보다 더 많은 정보가 넘쳐날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현재의 AI 기술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의 경우 그 독점을 특정 포털들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이로 인해 미래는 이러한 데이터 전쟁이 될 것이고, 그것이 현재 SNS 등의 발달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고, 일부 돈을 주어서라도 개인정보 확보에 구글, 네이버 등등의 회사들이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입니다. 지금의 분위기대로 흘러가면, 데이터는 상위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을 이용한 대중들의 취향을 분석하고 제시하여 일반 대중들은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욕망대로 선택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없게 하고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것에 심리적으로 협소한 선택을 하게 될 우려도 있습니다. 미래에 어떤 욕구가 인간을 지배할 것인가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기본적인 식욕, 성욕, 수면욕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유지되겠지만 그 유지의 형태가 영화에서처럼 기계적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어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최근 아날로그를 선호합니다. 일부러라도 몇 가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디지털에 의지하지 않고, 아날로그화 하여 그 감성을 직접 느끼는 것이 좋습니다. 디지털이 너무나도 세상을 편하게 하고 발전시켜왔지만, 인간의 가치까지 디지털화되는 것은 내가 없어지는 기분이라 그다지 좋지는 않네요. 그래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그냥 지금처럼 그대로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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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대중가요를 언제부터 트롯트라고 불렀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칭이 여러가지로 불리다 보니 혼동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가요는 '민요, 동요, 유행가 등 노래를 통틀어서 일컫는 말'입니다. 그 중 대중가요라고 명명한 것은 그러한 노래들 중 '널리 대중이 즐겨부르는 노래'라고 하여 가요에 대중이라고 일반화하여 명명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대중가요 의 한 장르로 트로트가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장르로는 발라드, 락, 힙합 등 그 분위기와 형태에 따라 구분하고 있고 그 각 장르 내에서도 더욱 세분화하고 있습니다. 1880년대 일본의 엔카가 메이지유신 연설을 위한 곡으로 초기에 만들어졌다가 1914년 4/4박자의 폭스 트로트라는 장르가 들어와 결합되면서 지금의 엔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일제 식민 치하에 우리 나라에도 전해져 변형되어 2/4박자 즉 '뽕짝'이라는 트로트가 시작되어 지금에까지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45년 해방 전까지는 일본식의 엔카와 우리나라의 트로트 장르가 혼재되어 비슷하게 발전하다가, 이후 우리나라의 트로트는 엔카와는 다르게 발전하였고, 1960년대~197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장르의 대중가요인 서양의 팝음악, 발라드, 락, 댄스가요 등이 1980년대부터 발전하여 트로트가 잠시 주춤하다가 최근에 들어와서 여러 케이블 방송에서 트로트가 이슈화되면서 다시금 인기가 살아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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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옛날에 서당은 지금으로치면 학교인가여?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옛날 서당은 조선시대 국민교육의 기능으로 신분의 제약 없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사립 초등교육기관입니다. 교육목적은 유교의 기초, 4학, 향교에의 입학준비, 유교적 예절 습득, 향풍 순화교육이었습니다. 교육내용은 강독, 제술, 습자로 진행되었고, 계절에 따라 교과내용을 달리하였으며, 주로 주입식과 암기 위주였고, 능력에 따라 그 수준을 달리 하였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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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독립유공자 묘역의 비석에 애국지사 또는 순국선열이라 쓰여 있는데 다른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독립유공자 중 애국지사와 순국선열은 죽음의 인과 관계에 있어서 그 명명의 차이를 보입니다. 먼저 애국지사는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에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한 사실이 있는 자 그 공로로 건국훈장, 건국포장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자입니다. 그리고 순국선열은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에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하다가 순국한 자 그 공로로 건국훈장, 건국포장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자입니다. 차이를 보시면, '일제에 항거한 사실이 있는 자 vs 일제에 항거하다가 순국한 자'의 차이로 항거 행위가 사망에까지 이르렀다면, 순국선열인 것이고, 독립운동은 하였으나 그 이유로 사망하지 않고 이후에 사망한 경우에는 사망 후 애국지사라 명명합니다. 두 경우 모두 대한민국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신 소중하고 감사한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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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역사드라마보면 사약먹고 많이들돌아가시던데 사약은 무엇으로만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 사용했던 사약의 재료는 천남성, 부자, 박새, 이부자, 초오, 자리공 등이 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다 독성이 강한 식물의 열매, 뿌리, 또는 잎이지만, 사실 드라마처럼 사약을 마시고 그자리에서 바로 죽지는 않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기록에는 사약을 마셔도 죽지 않아 16잔까지 마시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더 독성이 강한 것으로는 비상을 사용했는데 이는 삼산화비소라고도 합니다. 아르세노라이트라는 광물을 가열시켜 나온 결정체로 고온에서 건조하면 냄새 없는 백색가루 형태가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독성이 강해 치사량을 복용 시 급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약은 일반 죄인에게 내리는 사형이 아니라 사대부 이상의 지체 높은 이의 경우 유교사상에 입각하여 신체를 훼손하지 않고 죽게 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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