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고전적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차이점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자유와 시장 기능을 강조하는 면에서 공통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이 많이 다릅니다. 아담 스미스 시기에는 국가나 사회적 기능의 크기와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이미 환경문제, 노동문제 등을 겪고 또 대공황을 거치면서 수정자본주의가 등장했으며 이에 따라 국가의 역할이 매우 커졌으며, 시장의 실패를 국가카 바로잡아야 한다는 신념이 등장한 시대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사회민주주의가 유행하고 복지국가의 개념도 퍼져나가고 있을 때 다시 시장의 자유와 국가의 간섭 배제를 주장한 것이 신자유주의이지요. 또한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범위를 넘어선 다국적 자본의 이해를 대변했는데,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핵심적 가치로 옹호하였는데 이러한 현상은 아담 스미스 시절에는 없던 일입니다.
Q. 고구려가 멸망하고 만주지역에 남은 조선족들은 어떻게 구분하고 배려해야 하는지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구려는 만주벌판을 누빈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이나,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였습니다. 다수의 지배층은 당에 흡수되고, 일부는 신라에 귀속되었습니다. 고구려의 피지배층은 대부분 발해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이들 대부분은 말갈족이었습니다. 이 말갈이 분화되어 거란이니 여진이니 생긴 것인데, 이들은 사실상 중국화되었습니다. 발해 유민들을 고려 왕건이 받아들여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나머지 고구려 후손이나 발해 후손들은 거의 중국화되어 우리가 찾을래야 찾기 어려운 시간이 되었습니다.하지만 일제 시대 간도나 연해주, 중국 본토로 이주한 조선족들은 우리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독립운동을 위해 생계를 위해 건너가신 분들이 대부분이지요. 그들의 국적은 중국이나, 러시아, 중앙아시아 국가가 되므로 그 역사와 아픔에 공감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계신분들을 지원하고 예우하면 될 것입니다.
Q.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한 절들이 받은 불이익에 관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 불교유적은 산속에 많이 있습니다. 통일신라 유적이나 고려 불교유적도 그렇지요. 우리나라 불교의 최대종파인 지눌이 불교의 세속화를 비판하며 수선결사운동을 한 것도 세속을 떠나 종교 본연의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지요, 통일신라 하대 유행한 선종도 9산이라 하여 산중 불교의 모습을 보였습니다.조선은 명실상부하게 유교와 성리학의 나라로 불교를 억제했습니다.도성 안에 승려가 못다니게 하고 불교 사원수를 대폭 줄이고 더 못지게 하였습니다. 고려가 불교에 빠져 재정을 낭비해 나라가 망했다보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왕실은 신앙으로서 불교를 믿고 지원한 역설적 사례가 많이 있었지요. 세조나 세종이 대표적입니다,국가 정책적으로는 불교를 억합했으나 왕실은 불교를 버리지 않았지요. 하여 대신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컸습니다.
Q. 왜 초현실주의를 그리기 시작했나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차세계대전은 본격적인 현대전으로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대규모 국가전에 살상력이 크게 증대한 첫번째 전쟁입니다. 인명피해와 시설피해, 참전군인수 등에서 첫번째를 기록한 대규모 현대전의 시작입니다. 전쟁의 참혹성은 인간성에 대한 회의마저 들게하고, 서구 문명 자체에 대햐 회의까지도 일어났습니다.이러한 1차대전을 배경으로 탄생한 것이 초현실주의입니다. 철학에서는 실존에 대햐 고민의 결과 실존주의가 나타났습니다. 미술계는 다다이즘, 입체파 등 초현실주의가 등장했습니다. 이는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성의 파괴, 전쟁의 참혹함을 무의식이나 초현실을 통해 도피 혹은 극복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입니다.
Q. 독립운동가의 의사와 열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의사와 열사 모두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하다 돌아가신 분을 뜻합니다. 하지만 의사는 무기를 가지고 독립투쟁을 하다 돌아가신 분이죠.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의사가 해당됩니다. 반면에 유관순 열사는 평화적인 방법의 3.1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중에서도 지조를 지키시다 돌아가셨기에 열사라 부릅니다.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어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주장하려하는데, 일본 및 다른 나라들에 의해 인정을 못받아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자결하어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온몸으로 표현하신 이준도 따라서 열사로 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