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백제 22담로의 제도는 무엇이며 어느지역을 관리하며 다스린건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대의 지방 행정조직은 그 권한이 오늘날과 달리 막강했습니다. 지방관은 군사, 행정, 사법의 권한을 모두 가졌습니다. 한편으로 고대국가는 중앙집권체제를 지향하는데 이는 중앙에서 지방으로 관리를 파견해 통치함을 의미합니다. 백제는 한성시기가 전성기로 4세기 후반 근초고왕이 대표적입니다. 고구려에 의해 한강 유역을 빠앗기고 개로왕이 죽게 되어 백제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게 됩니다. 오늘날의 공주입니다. 이 지역이 협소하고 새로이 정치세력을 재편하고 백제 중흥의 기치를 펼치며 성왕대에는 부여로 옮기는데 사비시대입니다.사비시대 무령왕이 지방특별행정구역으로 22담로를 설치하는데, 왕족이나 측근을 파견해 지방장악력을 높이고자 햇던 것으로 보입니다. 담로에는 여러 설이 있는데, 특별행정구역이었다고 보는 설이 있고, 일반행정구역을 재번했다고 보는 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양쪽 모두 지방에 왕권을 미치는 목적은 같았다고 보입니다.
Q. 동도서기론의 입장에서 보았을때 서양의 정치체제를 수용하는 것은 틀린 입장인가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맞습니다. 동도서기 입장에서 기술을 배워 그들처럼 강해진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근대식 무기와 근대식 생산을 독려한 것이 중심이었습니다. 온건한 개혁이고 부분적 개혁이었지요. 정신문화나 정치체제를 바꾸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지향이 중국에서 일어났는데, 청프전쟁과 청일전쟁에서 청의 패배로 체제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판단에서 서양식 입헌군주제른 지향한 변법자강운동이 일어나지요. 서태후에 의해 3일천하로 실패했습니다.이렇듯 정치체제를 바꾸는 것은 어려웠는데, 2천년간 지속되어온 황제지배체제를 바꾸기가 어려웠다는 것이고, 결국 신해혁명으로 청조가 멸망되고 나서야 공화정이라는 서양식 정치체제를 도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이에 반해 일본은 막부체제를 전복시키며 천황제로 바꾸면서 근대식 개혁을 했기에 체제와 기술 모두 서양식을 모델삼아 개조가 가능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Q.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은 전세계에 걸쳐 있습니다. 이 둘 말고는 없나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진보외 보수는 대개의 나라에서의 정치지형 혹은 정치이념입니다. 그 중간에 온건한 중도가 있지만 정치적 격변기나 평상시에도 중도를 표방한 정치세력이 성공하기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중도가 크게 성공한 사례가 없지요.그러나 진보와 보수는 고정된 정치이념은 아니며 각 나라마다 특수성을 갖습니다. 일본은 거의 우경화된 자민당과 그보다 온건한 보수인 공명당 연합으로 오랫동안 권력을 잡아왔습니다. 민주당이 잠깐 정권교체를 이룬 적이 있지만 오래가지는 읺았지요. 미국은 보수의 공화당과 진보의 민주당, 영국의 경우 보수당과 노동당 양당 체제가 안정되게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습니다.각 나라의 진보세력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특징은 친노동, 친환경, 친복지 정도입니다. 보수세력은 친자본, 친산업, 친시장 정도로 대비되지요.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방법론도 다른데 진보는 보다 속도감있는 변화를, 보수는 법체제를 통한 온건한 개혁을 선호합니다. 이때 사안마다 두 이념이 충돌할 때 중도의 공간이 협소해 정치세력으로서의 중도의 성공이 어려운ㅈ것이 아닐까 합니다.
Q. 통일 신라는 왜 멸망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통일신라 하대 혹은 말기는 잦은 왕위쟁탈전으로 왕권이 불안해진 시기입니다. 농민반란도 일어나고 각지에서 호족이라는 새로운 정치세력, 지방세력이 성장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골품제라는 신분제의 모순도 심화되어 6두품이라는 중간지배층의 이반도 생겨났습니다.조세징수가 어려워져 세금독촉이 일어나고 이에 저항하는 농민반란도 일어났습니다. 즉 총체적 사회모순, 정치모순의 심화가 신라 붕괴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통일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 투항해 흡수되는 과정을 통해서 일어났으며,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붕괴된 것은 아닙니다.지방호족들이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는데, 궁예의 후고구려, 견훤의 후백제가 통일신라와 함께 후삼국시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견훤은 반신라정책으로 일관하고 신라 궁을 침탈하고 겁탈하는 등 모욕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후백제와 달리 궁예를 몰아낸 후 왕건은 친신라정책을 펼쳐 신라를 군사적으로 지원했는데 이때 왕건의 목숨도 위험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후고구려에 신라 왕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했으며, 견훤의 후백제는 고립되었으며 결국 고려에 의해 통일이 이루어집니다.
Q. 우리나라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가 있을때 가야 또한 있었는데 이는 하나로 인정하지 않았을까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역사는 고조선 이후 초기철기국가 즉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이 성립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고대국가로 발전한 나라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대국가의 특징은 왕권강화, 중앙집권적 통치제도 확립, 율령반포를 들 수 있습니다. 이 기준에 맞는 나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입니다 이 삼국은 한강유역을 놓고 경쟁하였습니다. 백제는 마한 중 소국 중 하나였으나 고이왕 대 통치체제를 정비하고 근초고왕 때 크게 국력을 발전시켰습니다. 신라는 진한의 소국 중 하나인 사로국에서 시작해 결국 가야를 병합하고 삼국을 통일했지요.이에 반해 가야는 연맹국가 단계에 머무른 것으로 평가됩니다. 변한 지역에서 12가야가 출현하지만 전기에는 김해 지방의 금관가야가 맹주역할을 하였고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침입을 받고 난 이후 금관가야는 쇠퇴하고 후기에는 고령 지방의 대가야가 맹주가 됩니다. 벼농사와 철기 등의 교역으로 발달했지만,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한 고대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연맹 상태의 소국으로 그쳤던 것입니다. 따라서 고대국가가 경쟁했던 시기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Q. 우리나라 최초국가는 고조선인데요. 그전에는 우리나라땅에 나라가 없던건가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반도에는 구석기 유물이 다수 출토되어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빙하기와 간빙기가 교대로 오면서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고 기온이 상승하였는데, 이때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이 북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입니다.한반도에 새로이 신석기인이 살게 되었습니다. 구석기인들은 수럽과 채집생활을 해 이동생활을 했던 반면 신석기인들은 농사도 짓고 정착생활을 했습니다. 다수의 강가나 해안가를 중심으로 신석기유물이 출토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우리의 선조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우리의 직접 선조는 청동기인들입니다. 비파형동검을 사용하고 이웃 소부족들을 정복한 사람들입니다. 탁자식 고인돌을 남기고 미송리식 토기도 사용했습니다. 요녕지방을 중심으로 생활하다 중심지가 평양으로 옮겨졌습니다. 이 나라가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입니다. 일반적으로 국가단계까지 발전하려면 일정한 생산력과 정복력이 필요한데 청동기무기를 바탕으로 형성된 최초의 국가입니다. 고조선은 한 무제에 의해 멸망했는데 고조선남쪽에 진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진과 한의 직접교역을 방해했다는 구실이었습니다. 고조선 후기는 철기를 사용해 철제무기와 철제농기구도 등장합니다.고조선 멸망 후에는 이러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초기국가가 다양하게 생겨나는데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초기국가 중 고구려, 백제, 신라가 고대국가로 성장 발전하게 됩니다.말씀하신대로 청동기를 사용한 국가단계의 다른 나라는 고조선 이외에는 특별히 나타나지 않습니다. 부족사회 단계였거나, 군장이 출현했더라도 규모가 작았던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