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중국이 다민족국가가 된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국은 한족이 대다수인 다민족국가 입니다. 인구의 92%(정확히는 91.6%)를 차지하는 한족을 비롯해 현 중앙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55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중국은 1949년 수립 이래로 한족과 소수민족을 따로 구분하여 인구조사를 했는데 소수민족들은 한족 주거 지역의 변방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들이 다른 나라에 병합되거나 독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수천 년 전부터 국경 지역, 특히 소수민족들이 거주하는 변방에 한족을 이주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한족 이주 정책은 해당 지역 소수민족과의 끊임없는 갈등을 초래하고 있습니다.90% 이상을 차지하는 한족 외에도 좡족, 후이족, 몽골족, 다우르족, 에벤크인, 허저족, 만주족, 시버족, 조선족, 먀오족, 위구르족, 티베트족 등이 있고 대개 한족들은 소수민족들이 사는 지역에도 많이 거주하며, 많은 소수민족 지역에서는 절반 이상 또는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소수민족에 따라 자신들의 언어를 구사하는 경우도 많지만 중국어를 쓰는 경우도 많으며 한족화 때문에 고유언어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만, 후이족은 의복, 생활, 종교를 제외하고 한족과 구별이 없고 중국어도 사용합니다.중국의 민족은 공식적으로 56개이지만, 중국의 민족 분류는 비슷한 소수민족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묶는 경우가 많은 편이라 실제로는 이보다 많은 숫자의 민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령 중국에서 '고산족'으로 분류하는 대만 원주민의 경우 대만(중화민국) 정부는 16개 민족으로 분류하고 있고 미식별민족까지 치면 중국의 민족은 더 늘어납니다.부모의 민족이 다른 경우에는 자식은 아버지-어머니 중 하나의 민족을 선택할 수 있는데 대체로 소수자 혜택(대학입시, 계획생육정책 면제 혜택) 이 많은 소수민족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Q. 바나나 현상과 님비현상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님비현상은 유해물질로 인한 환경오염과 인체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거나, 재산 하락이나 지역 발전 후퇴를 야기하는 시설물을 거부하는 현상입니다. 주로 공동묘지, 화장터, 쓰레기 소각장 등이 있습니다.바나나현상은 좀 더 극단적이고 광범위한 지역이기주의를 뜻하는데 '어디에든 아무것도 짓지 마라' 'Build Abosolutely Nothing Anywhere Near Anybody' 단어의 앞자만을 따서 만든 용어로 님비 현상은 모두에게 필요한 시설이지만 내가 사는 곳 근처 설치를 반대하는 것이라면 바나나 현상은 내가 사는 지역권에 시설물의 건립 자체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Q. 대한민국 국명 후보가 다양했다고 하는데요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 국민은 강제 병합 이후 비밀결사형태의 항일운동을 전개하면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여러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지만, 주제와 관련 있는 사건은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대규모 민족해방운동입니다.3·1 운동은 현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역사적 기원으로 임시정부의 설립 주체인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의장 이동녕)이 1919년 4월 10일 밤 10시 중국 상하이에서 개원하고, 각도 대의원 30명이 모여서 임시헌장 10개 조를 철야 심의한 후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했습니다.이때 국호도 정했는데,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는 신석우(申錫雨) 선생의 의견이 지지를 받아 국호가 대한으로 정해졌고, 주권이 황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 있다는 의미로 백성 민(民)자가 붙어서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국호가 탄생했습니다.그리고 광복 이후 유엔 결의에 따라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적 선거인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제헌국회를 구성했고,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했습니다.참고로 당시 총선거에는 만 21세 이상의 유권자 813만2517명 중에서 96.4%에 해당하는 784만871명이 선거인 명부에 등재됐고, 이중 95.5%가 투표에 참여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Q. 대만의 장제스에 대한 평가는 어떤게 맞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장제스에 대한 기존의 평가는 무능력하며 봉건적 사고를 답습한 군벌이라는 등의 부정적 평가가 주류였는데 이는 국공내전의 패배의 원인을 장제스에게 찾거나 장제스를 몰아낸 중국 공산당의 공산혁명 신화 만들기로 인한 영향이 큽니다. 그런 이유로 학계 및 민간에도 장제스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주류로 자리잡게 되었는데요.문화대혁명 등의 사건으로 인해 중국 공산당의 신화가 파괴되었고 학계에서도 중화민국 시기의 사건은 중화민국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관이 일본에서 대두되면서 1970년대부터 중화민국과 장제스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 됐습니다. 1996년 레이 황은 지적하길 장제스는 비윤리적이고 전근대적인 수단으로라도 근대 국가를 강제로 만들어냈어야 했다고 말했으며 2003년 영국의 저널리스트 조너선 펜비가 장제스 평전에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장제스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을 시도, 장제스의 단점들에 대해 혹독히 비판하면서도 장제스가 없었을 중국의 파멸적인 결과를 지적하고 장제스의 정권이 결국 최초의 근대 국가의 기구들을 중국에 제공했으며 마오쩌둥의 정권과 달리 최소한의 정상적인 정권이었다고 규정함으로 매우 전향적인 재평가를 시작했습니다. 국민 혁명군 장교 출신의 학자 레이 황, 영국 학자 라나 미터, 미국 외교관 출신의 제이 테일러 등의 연구자들이 장제스에 대해 매우 전향적인 재평가를 하게 되면서 무능한 장제스 사관은 학계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장제스와 적대한 중국 조차도 장제스의 항일 일대기에 대해 재평가하며 장제스의 위상이 올라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