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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좀합시다
그만좀합시다23.07.30

조선시대에 군역은 언제까지 져야했나요?

조선시대에 성인 남성은 군역의 의무가 있었는데 군역의 의무는 몇살부터 몇살까지 있었나요? 군역이 면제되는 특권층도 존재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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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30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때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하는 나이는 16~60살이었다고 합니다.

    1년에 2~6개월씩 교대하기는 했지만 호호백발 할아버지(60살) 때까지 의무를 감당해야 했으니

    그 괴로움은 필설로 다할 수 없었다고 ㅎ바니다.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에는 모든 장정들이 군역 대상으로 두달 정도 복무하였습니다. 후기로 갈수록 변동되어서 조선 중기에는 3정에서 1보의 장정이 차출되었습니다. (3정은 27가호를 말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고을마다 가호수에 따라 할당된 인원만 차출된 것이죠. 그리고 차출되지 않은 인원들이 차출된 인원의 군역에 필요한 경비를 보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 전란이 발생하면 병적부에 등재된 모든 장정이 차출되며, 평시에는 면제되었을 양반과 서리, 향리도 차출됩니다. 다만 노비는 사유재산이기에 의병으로 직접 소유자가 끌고 나가지 않는 이상은 제외됩니다. 라는 답변을 구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16~60세의 남성은 대부분 병역의 의무를 지어야 했습니다.

    이를 양인개병제라 하는데 양인은 양반, 상인, 농민을 가리키는 말로 예비관료인 유생들의 관가와 양반가에 소속된 관, 사노비를 제외하면 모두 군대를 가야 했으며 , 평소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다 자신의 순번이 되면 매년 2~6개월씩 군대에 복무해야 했습니다.

    조선시대 군역은 정규군으로 입대하는 번상, 번상의 집 생계를 돕는 봉족으로 나뉘며 군역을 면제받는 대신 번상의 집에 식량과 옷감 등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대주거나 일을 대신해줬습니다.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는 60세 이상이면 면제, 전사한 사람의 자손으로 조직되어있는 궁중의 회위를 맡는 군대에 들어간 사람은 3대까지 면제, 불치병에 걸렸거나 불구인 부모를 봉양중이면 면제, 부모가 70세 이상이면 아들 중 한명이 부모가 90세 이상이면 모든 아들이 면제 , 아들이 사망한 경우 손자 중 한명은 면제 되었으며, 현직 관리와 향리, 성균관 향교 학생들은 제외, 정부가 발행하는 승려 신분증을 받은 이는 면제 대상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과 조선시대에는 16세부터 60세까지의 남자에게 군역을 지웠는데 단 군역에서 제외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관원, 공신(功臣·나라를 위해 특별한 공을 세운 관리)의 자손, 천민, 노비 등이었고 양반들도 군역 면제를 받기 위해서 제물을 바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은 국민개병제를 택한 나라였으며, 모든 성인남성들은 1세부터 60세가

    될 때까지 44년 동안 군복무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평균수명은 지금보다 짧았기 때문에 60세까지

    군복무를 한다는 것은 평생 군복무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16세부터 60세까지의 양인 남자(정남)는 모두 군대에 가거나 군대를 지원할 의무가 있었다. 이를 군역이라고 한다.


    양반과 같은 지배층과 백정, 노비 등은 군역의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되었고 주로 농민과 같은 백성들이 군대에 갔다.


    군역의 ‘역’이란 노동으로 내는 세금을 뜻하지만 돈이나 쌀, 옷감과 같은 물품으로 대신할 수도 있었다. 보통 3~4집이 한 명의 군인을 지원하도록 짜여 있었다.


    그런데 한 집에서 성인 남자 한 명이 군대를 가면 농사지을 일손이 부족해질 뿐만 아니라, 군인으로 있는 동안 의식주도 본인이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엄청난 부담이 되었다.

    이 때문에 군인이 되어야 할 사람조차 지원받은 쌀이나 옷감으로 사람을 사서 대신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조선 후기에는 군역을 져야 할 집은 1년에 2필의 옷감, 즉 군포를 내게 하고, 정부는 이 군포를 자금 삼아 군인을 모집해 군대를 운영하게 되었다.


    나중에 2필이 너무 많다고 해서 1필로 줄이는 균역법이 실시되었고, 흥선 대원군 때는 양반에게도 군포를 받는 호포법이 실시되기도 했다.

    출처 : 한국사 사전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