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왕의 삼천궁녀는 어디서 왜곡된 역사인가요?
삼국시대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삼천궁녀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삼천궁녀는 너무나 과장되고 왜곡된 이야기라고 하던데 어디서 퍼진 얘기인가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가 멸망할 때 낙화암에서 삼천궁녀와 자결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전설은 역사적으로 사실이 아니며,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문학적 표현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의자왕의 삼천궁녀에 관한 내용은 조선시대 시에서 등장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의 한 선비가 낙화암 근처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선비는 그 곳에서 우연히 '삼천 궁녀'라는 말이 나오는 시를 읊었다고 합니다. 그 시를 들은 사람들은 낙화암에서 삼천 명의 궁녀가 떨어졌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여러 선비가 시를 지을 때 '삼천 궁녀'라는 말을 즐겨 썼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낙화암 전설은 점점 더 널리 퍼져 나갔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의자왕의 '삼천궁녀' 언급이 처음 등장한 조선 시대 성종(1469-1496) 때 그 표현이 등장합니다. 삼천궁녀는 조선 성종 당시 문인인 김흔의시조에 처음 언급됩니다. '삼천 궁녀들이 모래에 몸을 맡기니'라는 표현입니다. 명종 때 문신인 민제인도 '백마강부'란 시조에 '구름 같은 삼천궁녀 바라보고'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사실 '삼천'은 많다라는 시적 수사로 표현된 과장된 허구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천궁녀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9대 왕인 성종때 입니다.
그때까지 삼천궁녀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문헌이나 자료는 없었습니다.
결국 궁녀가 3000명이라는 말은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는게 학계의 정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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