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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가오리188
즐거운가오리18823.12.05

조선시대에 훈민정음이 반포되고나서 백성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기관이 따로 설립되었나요? 어디서 교육을 한 건가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백성들이 문자를 알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훈민정음이 반포되었어도

어떤 누군가는 글자의 체계를 가르쳐야

백성들도 글자를 배울 수 있었을 것인데

훈민정음이 반포된 후

백성들에게도 한글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만들어졌나요?

백성들은 한글을 어디서, 어떻게 배울 수 있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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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따로 한글을 가르치기위한 교육 시설은 없었던 걸로 나옵니다. 사적으로 집에서 어린이나 부녀자들에게 말을 가르치기 위해서 교육되었고, 반포 후 바로 평민들에게는 교육도 없었습니다.

    반포후 기존의 한자 책들이 한글로 번역도 되고, 전쟁 때 중국이나 일본 등 같은 한자문화권인 나라들이 잘 못알아 듣게 한글로도 내용을 전달하고, 특히 갑오개혁 이후 신식 교육시설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한글이 교육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은 서당(書堂)인데 서당에서도 한글만 전문적으로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한글을 배우기에는 별다른 교육 기관이 없었습니다. 그이유는 한글 자체가 한자에 비해서 그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였고 한글을 우습게 보는 양반들의 태도 때문 이였습니다. 그래서 한글은 혜례본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주로 아녀자들을 통해서 전파 되어 갔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446년 음력 9월 훈민정음 반포, 훈민정음 해례본이 같이 간행되었는데 이 책에 훈민정음의 창제목적과 원리, 사용법 등을 설명했습니다.

    세종은 하급 관리를 뽑을 때 훈민정음을 시험 과목에 추가, 삼강행실과 같은 국가 윤리를 훈민정음으로 풀어 백성들에게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사서를 훈민정음으로 번역하게 했고 백성들이 관가에 제출하는 서류를 훈민정음으로 작성토록하며 형률 적용 과정에서 그 내용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해 알려주도록 했습니다.

    궁중의 여인들에게 훈민정음을 익히도록 하고 세종 자신은 조정의 대신과 기관에 훈민정음으로 글을 내리기도 했으며 이후 민간과 조정의 일부 문서에서 훈민정음을 사용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훈민정음은 반포(1446) 직후 세종의 뜻으로 서리(胥吏) 선발 시험에 잠시 부과되었다. 그 후 갑오개혁(1894)에 이르기까지 440여 년 동안 훈민정음은 국가의 공식적 교육 제도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