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조선 국민의 대일 감정이 극도로 악화하고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전국이 소란해지자 러시아 공사 베베르는 공사관 보호라는 명목으로 수병 백명을 서울로 데려왔습니다. 이에 친러파인 이범진 등은 베베르와 공모하여 건양 1년(1896년)에 국왕의 거처를 궁궐로부터 정동에 있는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시킨것입니다.즉 을미사변으로 고종이 생명위협을 받게되자 일본을 믿을수도 없어 러시아를신뢰하고 결정한것입니다.
고종은 아관파천 당시, 자신을 받아 준 러시아를 꼬득여 러시아의 힘으로 일본을 견제하려 하였으며 러시아에게 어느정도 삼림 채벌권과 광산 채굴권을 조건으로 넘겼기때문에 고종을 받아들인 것이라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