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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달한거북이38
활달한거북이3823.07.10

조선시대에 편지 같은 것들은 어떻게 전달을 했나요?

현재 핸드폰, sns, 메일 등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본인의 의사나 중요한 일이나 정보 등을 쉽게 전달합니다.

이런 문명이 없을 때는 본인의 의사 등을 전달하기란

쉽지 않았을 건데요~

그렇다면 조선시대 편지 같은 것들은 어떻게 전달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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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8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10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편지는 인편으로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품삯을 받고 이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생각하는 집배원, 배달원 등을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집배원은 조선시대 후반 개화기 우정국이 생겼을 때 처음 생겼으며, 벙거지꾼으로 불렸습니다.

    조선시대의 집배활동은 알려진 것이 많지 않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근대적인 우편제도가 실시되기 전의 통신 방식은 중앙정부에서 지방관서에 이르는 도로 곳곳에 역을 세워놓고 말을 갈아타고 달리며 공문 등을 전하는 역전제(驛傳制)였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우체국과 옛날의 역이 다르고 우편물을 전달하는 방식이 다르듯이 근대적인 우편 제도와 전통적인 역전제는 크게 차이가 났다고 합니다. 우선 봉사하는 대상이 달랐습니다. 전자는 일반 백성에게 생활 편익을 제공하기 위함이었는데, 후자는 지배계층의 통치에 부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전달하는 내용물에도 차이가 있었다. 전자는 백성들의 소식을 전하는 순수한 편지였는데, 후자는 중앙정부에서 지방관청으로 또는 지방관청에서 중앙정부로 보내는 공문이나 물품이었다. 후자의 경우, 사신이나 관원의 출장용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조선 시대 개인적인 편지는 양반의 경우 노비들을 시켜 인편으로 전하는 경우가 많았고 일반 평민의 경우에는 글도 쓸 줄 모르니 거의 편지를 전하는 것이 불가능 했다고 보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는 개인의 우편물은 대부분 사람이 직접 전달하였습니다. 글을 아는 중상위층이 주로 사용하였으며, 자신이 직접 가지고 가던지 가노를 시켜 전달하게 했습니다.

    근대적인 우편제도가 실시되기 전의 통신 방식은 중앙정부에서 지방관서에 이르는 도로 곳곳에 역을 세워놓고 말을 갈아타고 달리며 공문 등을 전하는 역전제였습니다. 또다른 말로는 우역제라고도 합니다. 일반 백성들이 이용하는 편의가 아닌 공무 또는 지배계층 즉 양반들이 이용하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조선시대의 법전인 경국대전에 보면 “걸어가 전하는 것을 우(郵)라 하고 말을 타고 가 전하는 것을 역(驛)이라 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역제는 말을 타거나 걸어가 공문서나 명령을 전달하는 것이죠. 긴급을 요할 때는 말을 타고 달리며 통신 업무를 수행했고, 급하지 않으면 걸어가 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전상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는 역참제라고 해서 주요길목마다 마굿간을 설치했습니다. 계급에 따라 빌릴 수 있는 말의 수가 새겨진 마패를 내밀면 말을 빌릴 수 있었죠. 권세가들은 집에 있는 노비를 보내서 서신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편지를 전달하는 방법이 공인편과 사인편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공인편은 관청이나 관리가 전달했고, 사인편은 개인적으로 전달해주는 업을 하는 사람이 전달했습니다. 공인편은 더 빠르고 안전했지만, 비용이 많이 들었고 공적인 업무에 한해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사인편은 비용이 저렴하고 개인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지만 전달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전달자의 신뢰도가 떨어졌습니다.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편지는 주로 인편(人便)으로 전했다. 인편이 닿지 않으면 편지를 써두고 기다렸고, 일정과 행선지가 맞는 사람을 찾으면 밀린 편지를 한꺼번에 써서 전했다.

    품삯을 받고 편지 배달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은 전문 배달꾼도 있었다. 이들은 전인, 전족(專足), 전팽(專K)이라고 불렸다. 전인은 그 나름대로의 전문성이 필요했다. 주소가 없던 시대에 사는 곳과 이름만 듣고 편지를 전달했기 때문에 수취인이 사는 곳 지리를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어야 했다. 물어물어 수취인을 찾아야 하니 말귀도 밝아야 했고, 먼 길을 일정에 맞춰 다녀갈 빠른 발걸음도 필요했다.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때 공식적인 문서는 파발마를 통해 전달했고, 왕이 중요한 서신을 보낼 때는 선전관이나 내관을 이용했습니다. 양민들은 노비를 통해 편지를 전달하기도 했지만, 행상(장날 시장에 오는 사람), 향리 등 인편을 활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