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백제의 역사가 빈약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삼국사기를 보면 백제의 역사가 고구려나 신라에 비하여 많이도 축소 되었습니다.
이는 김부식이 신라후손인 동시에 백제가 신라와는 사이가 안 좋았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한 왕조의 역사가 너무 초라합니다.고구려 본기는 10권 열전 인물은 7명입니다.(연개소문의 아들과 손자 헌성같이 합하면 총 11명 인물)신라는 그 보다 더 많습니다. 그러나 백제는 본기 6권에 열전 인물은 3명입니다.
고구려나 신라에 비하여 백제의 역사가 적고 오히려 신라 위주만 쓰고 있습니다.
당시에 백제고기와 여러 고구려고기 등의 사서가 남아있었습니다.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스님은 삼국유사를 통하여 삼국 여러 책 외에 고구려고기라는 책도 인용하였다고 하는데...김부식은 의도적으로 백제 역사를 축소했나요. 비록 그 당시 백제 역사가 많이 없다고 칩시다. 고구려본기를 보면 고구려 열전에 김부식은 부족한 고구려 인물들의 고구려 본기에 인용하여 그대로 열전에 넣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밀우와 을파소, 을지문덕, 창조리 등등
하지만 백제 열전은 보면 고작 흑치상지...도미...계백 뿐입니다. 김부식이 제대로 된 역사가였다면 고구려 열전처럼 백제본기에서 몇명의 인물의 백제 열전에 추가하여 빈약한 백제인물들의 채우려는 노력을 해야하였습니다.
삼국사기 열전에 보면 신라측 인물중에서 3글자 미만도 안되는 신라인물도 있습니다.
김부식이 제대로 된 역사가였다면 삼국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백제 인물 막고해나 부여융, 부여풍, 복신, 여신, 진무등의 백제 인물을 열전에 넣어서 균형을 잡도록 해야 하나 그런 것도 없습니다.
삼국사기를 저술한 김부식은 그냥 당시에 있던 우리 측 자료와 중국 측 자료를 조합하여 저술했는데 그가 제대로 된 역사가라면 중국에 가서 당시에 흩어진 백제유민이나 고구려 유민 그리고 더 나아가 고려 전국의 돌아다니면서 삼국의 역사를 균형있게 하려는 것을 보여야 하는데 그것도 없습니다.
그저 방구석에서 있는 역사로 썼으니 볼 만 합니다.
삼국사기 백제의 역사가 백제 본기부터 열전까지 고구려나 신라에 비하여 빈약한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요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사는 흔히 승자의 역사라고 합니다.
신라가 3국을 통일한 후 삼국유사 삼국사기등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3국을 통일한 신라 위주의 기록입니다.
따라서 백제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역사 기록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