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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한발발이142
로맨틱한발발이14223.05.08

신라의 승려 원효대사님은 머리도 기르고, 술도 마셨다는 게 사실인가요?

해골에 담겨있는 물을 마시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것으로 유명한 승려 원효대사님이 일반 승려들과는 다르게 술도 마셨고, 머리도 길렀다는 얘기가 있던데 이게 사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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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효는 교학연구나 관념적인 사상에 머물러 있던 인물이 아닙니다.

    그에게 염정불이 진속일여가 그의 학문적 이론이자 종교적 실천의 기초입니다.

    더럽고 깨끗함이 둘이 아니고, 진리의 길과 세속의 길이 본래 같다는 깨달음이

    그의 모든 사상체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반적인 승려들처럼 왕실과 귀족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성내의 대사원에서 귀족생활을 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니면서 승려가 아닌 세속인의 모습으로 무애가(모든 것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다번에 생사를 벗어나리로다)를 부르면서 가무와 잡답으로 서민들 사이에 끼어 들어

    불법을 설법하는 교화작업에 힘썼습니다. 성속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소성거사였습니다.

    거사들과 어울려 술집이나 기생집에도 드나들고 석공들의

    쇠칼과 쇠망치를 가지고 다니며 글을 새기기도 하고,

    일정한 틀에 박힌 생활을 하지 않은 자유로운 무애사상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술도 마시고 머리도 길렀다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충분한 개연성이 있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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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효대사는 계율을 어긴 이후에는 머리를 깎지 않고 세속의 옷을 입으며 스스로를 소성거사라 칭하며 술집, 기생집을 드나들기도 하고 말이나 행동을 험하게 하거나 금속으로 된 칼이나 쇠로 만든 지팡이를 들고 다니거나, 소를 짓고 강론을 하거나 사당에서 여염집에서 잠을 자고 혹은 산, 강을 따라 좌선을 하는 등 일정한 법식이 없는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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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효와 의상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당나라 유학길에 나섰으나 고구려를 통해 가려다가 간첩으로 몰리고 백제를 통해 가려다가 어려움에 봉착하여 하룻밤 묵었던 동굴에서 목이 말라 물을 찾아 먹었던 물이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썩은 해골에 고인 물이었음을 알고 모든 것을 토해내는 자신의 모습에서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사실을 깨닫고(일체유심조) 의상만 보내고 원효 자신은 신라로 돌아와 해동종을 창시합니다. 그때까지 귀족 중심이었던 불교를 민중불교로 만들어 불교의 대종화에 공헌하였고 밥먹다가도 설법이 생각나면 가차없이 일어나 설법을 하는 등 무애행을 실천한 사상가였으며 화쟁사상(일심사상, 원융회통사상)을 통해 대립되는 종파를 하나로 통합시키고자 했습니다. 어떤 고승도 해석하지 못했던 대승기신론에 해석을 한 대승기신론소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고승들의 모습이 고상한 모습을 띈 반면 원효대사의 화상은 한 손에 술병을 들고 뛰어갈려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모습에서 틀에 박혀 있는 사람이 아닌 비범한 인물임을 알 수 있으며 설법을 할 때도 북치고 장구치며 하는 모습이 여느 고승들의 모습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고 진평왕의 딸인 요석공주와의 합방으로 화왕계와 이두문자의 대가인 설총을 낳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여러 모습으로 미뤄볼 때 원효대사는 자유분방하면서도 뛰어난 실력을 갖춘 고승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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