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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09

임진왜란 당시에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도망을 간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 조선의 역사 중에서 임진왜란은 우리역사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선조 임금은 임진왜란 때 왜 한양을 버리고 피양을 하였는지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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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우선은 왜군의 진격 속도와 기세에 너무 주눅이 든 탓도 있습니다.

    왜군의 선발대는 25일에 상주에서 순변사 이일의 군대를, 28에는 탄금대에서 신립의 군대를 괴멸시켰습니다.

    둘째로 조선은 그때까지도 전란체제가 갖추어지지 않아 그 넓은 도성을 방비할 병력이 충분치 않았습니다. 일단의 병사들은 이일과 신립이 이끌고 간 상태였기 때문에 남은 병력이 없어서 성루에 초병을 세울 경우에 수십 미터당 한 사람씩 배정해야 할 판이니 수비도 문제 였겠지요

    셋째는 왜장 고니시가 줄곧 외쳐온 '우리는 조선을 칠 의도가 없다. 우리는 그저 명을 치려고 길을 빌리려 할 뿐 조선은 길만 빌려주면 된다.'고 하였는데 이게 선조와 조정 대신들이 받아 들이기에는 너무도 부담되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길을 내주면 상국인 명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니 그러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명으로 가자는 데 의견이 모아진 것이지요. 그리하여 여러 북행길 중에서도 의주로 결국 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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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리한밀잠자리144
    예리한밀잠자리14423.04.09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한 나라의 국왕의 목숨은 자신만의 것이 아닙니다. 모든 국가와 신하와 백성들의 운명까지도 손에 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고 싶어도 함부러 죽을 수 없습니다. 물론 인조처럼 목숨을 걸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면 지금같이 나중에는 멋있었다, 훌륭했다. 라는 말을 많이 듣겠지만 그때의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이는 어불성설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죽는다는 것은 국가의 비상사태입니다. 즉 수뇌부가 없어지는 것이지요.

    태자로 광해군이 책봉되었지만 선조가 왜군에게 죽는 상황까지 갔다면 광해군이라고 안전할까요? 그런 점에서 제 생각으로는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가서 명나라의 원군을 기다린 것은 한 나라의 왕으로서 제대로 된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왕이 죽는다는 것은 군사의 사기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그 것이 왕의 복수를 하기 위해 사기가 오른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왕이 죽었으니 이제 나라가 망했다고 생각하고 싸울 마음을 안 가진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결국 결론은 선조가 내린 판단은 제대로 된것이었으며 선조의 피난을 무턱대고 그 시대의 사정도 생각하지 않고 비난한다는 것은 조금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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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면적으로 본다면 자신 한 몸 살기 위한 피난이었다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다른 면에서 살펴 본다면 이해할 수 있는 면도 있습니다.

    조선의 병사들이라야 그저 모은 오합지졸의 병사들로 16만 명의 훈련된 왜군을

    막아서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대신들도 대부분 피양을 반대했습니다.

    막아설 병력도 변변치 않은데 궁에 머문다면 왜군에 나라를 빼앗길 것입니다.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피양을 하면서 시간을 벌고 있을 때 전열을 가다듬은 조선 수군 이순신의 등장으로

    왜군을 격퇴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선조의 처신이 문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문제는 선조 한 왕의 문제는 아니었겠지요.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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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은 수년간 지속된 중요한 군사적 충돌이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선조는 그의 수도인 한양을 일본군에게 빼앗기는 등 몇 가지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그가 한양을 포기한 이유는 완전히 명확하지 않지만, 역사가들은 그것이 침략군에 의해 체포되거나 살해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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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 예상보다 너무 빠른 일본군의 북상 속도(제승방략 국가 방어체계의 허점: 한번의 전투로 너무 쉽게 방어선이 무너짐)

    * 조선군의 연전연패

    2. 선조는 당시 조선최고의 장군 신립 장군을 파병하여 왜군을 막으려 하였으나 탄금대 전투에서 전멸함

    3. 한양의 방어력으로는 왜군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고 여차하면 명국으로 망명을 고려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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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선조는 원래 평양이나 의주가 아닌 요동에 가겠다고 징징대는 것을 신하들이 애써 말리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선조는 왕위도 다 넘기고, 신하들도 안 따라와도 되니 자신이 요동에 가게 해달라고 합니다. 이 와중에 광해군은 정권을 맡게 된 것이고 양위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광해군에게 국정위임을 한 상황도 아니었고 신하들이 반대해서 양위도, 국정위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듯 선조는 개인의 안위가 중요했던 책임감이 부족했던 왕일 뿐 이었다고 역사는 평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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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은 7년간의 전쟁 상태와 자연재해로 인한 인구 감소와 식량 부족 등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선조는 대전환책으로 인해 한양의 중심지를 비롯한 주거지역을 포기하고, 함경도로 향해 도주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한양을 버리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군사적인 이유로, 선조는 왜군의 압력을 받으면서도 군사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리기 위해 함경도로 향해 도주하였습니다.

    둘째는 안전을 위한 이유입니다. 선조는 왜군의 침입으로 인해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한양에서는 국민들을 지키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따라서, 함경도로 도주하여 안전한 곳으로 국민들을 이동시키고, 전란이 종료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선조의 결정은 국민들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으나, 이를 통해 왜군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고, 미래를 생각하는 대전환책의 일환으로 인해 조선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선조의 대전환책과 그의 대처 방식은 조선의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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