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평양을 거쳐 왜란 2개월만에 6월에 의주까지 피천하였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파천을 하게된 이유는 일본군이 4월 13일 부산포에 상륙하자 파죽지세로 북진해 보름만에 4월 28일 믿었던 신립마저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입니다. 조선은 개국 이후 200년 기간의 평화 기간으로 국방에 대한 소홀, 군기 약화로 만일의 외침에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왜군이 쉽게 북진할 수 있었던 것도 진관체제를 대신해서 부족한 병력을 활용한 제승방략체제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당시 일본군의 침략 규모는 약 16만에서 최대 23만 5천여명의 규모로 추정되고, 개전 당시 조선군의 규모는 8만 4천의 규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