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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14

창덕궁이 어떤 역사적 의의가 있을가요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회에 창덕궁이 끼치는 영향이 뭐가 있나요? 창덕궁은 동물원이었다고했는데 돈 많이 써서 복원까지했다고 들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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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창덕궁의 역사적의의는 1405년에 건립된 이후로부터 여러 화재와 수난을 겪었으나 무난히 살아남은 궁입니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타 버린 이후에는 경복궁을 대신에 실질적인 궁궐의 역할을 도맡아 왔습니다.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 등의 왕이 이곳에서 왕으로 즉위했으며 여러 중건과 건설을 통하여 더 많은 건물들이 지어지거나 보수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창덕궁은 태종 5년(1405년)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조선의 궁궐입니다.

    창덕궁은 500여 년 조선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임금이 거처한 궁궐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조선의 법궁은 경복궁이었으나, 조선 초기부터 여러 임금이 경복궁을 기피하여 창덕궁이 그 자리를 대신할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태종은 왕위를 위해 이복동생을 죽인 곳인데다, 자신의 정적 정도전이 주동하여 건설한 경복궁을 꺼림칙하게 여겼습니다

    창덕궁의 위상은 임진왜란으로 더욱 확고해졌다. 선조 25년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서울에 있던 모든 궁궐이 불타버리자, 선조 38년(1605년)부터 재건 준비를 시작하여 광해군 원년(1609년) 10월에 인정전 등 주요 전각이 거의 복구되었으며, 이때 공사가 완벽하지는 않았는지 이듬해 2월부터 다시 공사가 진행되어 9월에 완료되었습니다. 이후 역대 왕들은 창덕궁에서 주로 정무를 보게 됩니다.


  • Slow but steady
    Slow but steady23.09.14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창덕궁은 1405년 태종 때 건립된 조선왕조의 왕궁입니다. 처음에는 법궁(法宮)인 경복궁에 이어 다른궁으로 창건되었지만, 이후 임금들이 창덕궁에 머무는 것을 선호해왔고 임진왜란이후 법궁인 경복궁이 복구되지 못하면서 창덕궁은 고종때까지 법궁의 기능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사용되면서 다양하고 복잡한 왕실 생활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되었습니다. 일제 시대 떄 동물원으로 만들었던 것은 창경궁으로 창덕궁이 아닙니다. 창경궁은 창경궁(昌慶宮)은 조선 성종(1483년) 때에 건축하였고 서쪽으로 창덕궁과 붙어 있고 남쪽으로 종묘와 통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별도의 궁이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창덕궁은 많은 재앙을 입으면서도 여러 건물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있고 1912년부터 추원인 금원과 아울러 인정전을 관람할수 있게 되었고 8.15광복 후 창덕궁과 금원을 공개했습니다. 창덕궁은 금원을 비롯해 다른 부속건물이 비교적 원형으로 남아있어 가장 중요한 고궁 중 하나로,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