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는 6세기 초반 지중왕이 중국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 뒤를 이은 법흥왕은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가야를 정복합니다.
법흥왕은 당시 상대등이라는 제도를 마련했는데 상대등은 신라에서 최고의 관직으로 국사를 관장하고 귀족회의인 화백회의를 주최하는 등 귀족의 대표였습니다 .
이러한 시기를 거친 신라는 6세기 중반이 되어 본격적인 전성기가 시작되는데 진흥왕은 이 시기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개편하고 대규모 불교집회를 통해 나라 기반을 다지기 시작, 당시 고구려는 귀족들간 권력을 다툼하기에 바빠 나라의 기반이 약해지고 흔들리던 시기였습니다.
기회를 잡은 진흥왕은 백제의 성왕과 손을 잡고 고구려를 공격해 영토를 넓히기 시작, 당시 백제와 함께 고구려로부터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한강유역 북쪽은 신라, 남쪽은 백제가 나눠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신라는 다시 백제를 공격, 결국 한강 남쪽까지 차지하게 되면서 중국과의 교류를 더 활발하게 할수있는 조건을 마련합니다.
이 여세를 몰아 진흥왕은 고구려를 공격해 함경대 일대까지 신라의 영토를 넓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