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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31

동사회강이라는 책은 어떤 책이었나요?

안녕하세요.

'동사회강'이라는 책은 어떤 책이었나요?

동사회강의 저자는 누구이며

동사회강이 지닌 역사적 가치는 뭐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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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후기 문신·학자 임상덕이 삼국시대부터 고려말까지를 서술한 역사서.

    *서지적 사항: 27권 10책. 목활자본.

    *내용:

    임상덕은 어려서부터 소론파의 거두이던 윤증을 사사해 그의 학문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관직에 있을 때는 단종 때 권력을 장악했던 김종서의 죄를 용서할 것을 주장하고, 당론을 배격하며 숙종의 전제권 강화를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저작된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지방 수령을 지내던 1711년(숙종 37)부터 1719년 사이로 추측된다. 책의 앞 부분에 서례 · 범례 · 논변그리고 연표가 실려 있고, 본문은 삼국기 · 신라기 · 고려기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고려기가 본문 12권 중 9권으로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먼저 저자 자신이 쓴 서례에서는 『삼국사기』 이후의 역대 사서들을 평가, 비판하였다. 그러면서 17세기 중엽 유계(兪棨)가 쓴 『여사제강(麗史提綱)』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 그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사제강』은 강목법을 따르면서도 범례가 자세하지 않은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약점을 보완해 21개항의 범례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주자(朱子)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의 범례를 따르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현실에 알맞게 가감, 조정한 것이었습니다.

    즉, 『자치통감강목』은 중국사만을 다루었지만, 이 책은 중국 중심의 아시아 세계 테두리 속에서 한국사를 서술하는 까닭에 주자 강목의 범례를 조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논변에서는 기자봉조선(箕子封朝鮮), 황괴참위설(荒怪讖緯說)의 존삭(存削), 천추태후(千秋太后)의 흉졸(薨卒), 삼한지방(三韓地方), 동국지명(東國地名), 단군 이하 시조의 출자(出自), 도선(道詵)의 사적(史蹟)에 대한 의문 등 일곱 가지 항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을 시도한 것으로서, 그 뒤 안정복(安鼎福)의 『동사강목』에 보이는 고이(考異)의 선구적 형태이다. 따라서 이 책은 고증사학적 역사 서술의 단서를 연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다음 연표에서는 삼국 · 신라 · 고려의 순으로 왕력(王曆)을 작성하였다. 여기에 중국 왕력이 대비되어 있어서 본문 기사에서는 중국 왕력을 일일이 적는 것을 피하고 본국의 왕력만을 적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동사회강』에서 비롯되어 『동사강목』에서도 답습되고 있다.

    본문은 삼국시대부터 서술하고 삼국 이전의 상고사는 편년 기사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신라 시조에 관한 기사 밑에 3조선과 삼한에 관한 서술을 안설(按說)로 소개했고, 또 논변에서도 단군조선 · 기자조선 · 삼한의 위치 등에 관해 고증했으므로 실제상으로 상고사를 부인한 것은 아니다.

    특히, 범례와 논변에서 기자수봉설(箕子受封說)을 부인하고 기자가 주무왕(周武王)에게 신하로 복종하지 않은 독립군주였음을 강조하고 있어, 중국에 대해 조선이 자주적 국가였음을 명시하고 있다.

    기자와 기자조선의 후신인 마한을 높이는 태도는 17세기 사서의 공통된 성격으로서 이 책에서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삼국 이전을 편년에서 삭제함으로써 기자조선과 마한을 정통국가로 취급하지 않았으며, 삼국시대를 무통(無統)의 시대로 간주하였다. 한국사에 있어서 정통의 시대는 신라 통일 이후와 고려 통일 이후만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통 체계는 17세기 중엽 홍여하(洪汝河)의 『동국통감제강(東國通鑑提綱)』에서 기자-마한-신라(삼국)-신라(통일)를 정통 국가로 인정한 것과 비교해 차이가 드러난다. 이는 임상덕이 홍여하보다 삼국을 대등한 시각에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의 삼국무통론(三國無統論)은 그 뒤 『동사강목』에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편년 기사에서 재상의 구실을 어떻게 서술하느냐 하는 것은 편자의 정치사상을 예민하게 반영하는 것인데, 『동사회강』에서는 재상의 사망 뒤에 졸기(卒記)를 적어 재상의 구실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유계의 『여사제강』에서도 나타나는 이같은 점은 17, 18세기의 붕당정치 운영에 있어 왕권 전제를 반대하고 재상권의 자율성을 높이려는 서인(西人)의 정치사상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사회강


  • 빛나라하리
    빛나라하리23.06.02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독서회강 >조선 숙종 때 임상덕이 지은 고려 말까지의 한국사 입니다.

    저작된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지방 수령을 지내던 1711년 숙종(37년) 부터 1719년 사이로 추측 됩니다.

    책의 앞 부분에 서례.범례.논변 그리고 연표가 실려 있고, 본문은 삼국기.신라기. 고려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을 시도한 것으로서 그뒤 안정복의 동사강목에 보이는 고이의 선구적 형태 입니다. 따라서 인책은 고증사학적 역사 서술의 단서를 연 것으로 평가 할 수 있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사 회강은 조선후기 문신·학자 임상덕이 삼국시대부터 고려말까지를 서술한 역사서입니다. 안정복의 『동사강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홍여하의 『동국통감제강』과 유계의 『여사제강』에서 비롯된 강목법과 정통론 도입의 역사 서술 방법은 『동사회강』을 거쳐 한 단계 심화되고, 『동사강목』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상덕의≪東史會綱≫(숙종 37:1711)은 그의 나이 29세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동사회강≫은 유계의≪여사제강≫을 계승하는 한편, 조선 초기의≪동국통감≫을 저본으로 하여 고대사 부분을 보충하고 강목체 사학의 체제를 보다 정비하였다. 마한은 나라를 잃은 기자의 후예가 피난을 와서 세웠다는 이유로 정통에서 제외하고 삼국을 무정통으로 보았다. 이것은 홍여하의 입장과 다르다. 임상덕이 강목체의 명분론에 서면서도 현실을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유계의≪여사제강≫이 고려말 기사가 조선의 건국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을 비판하였다. 당시≪여사제강≫은 노론계열에서 추앙되던 역사서였다. 임상덕이 이를 비판한 것은 소론계열로서의 그의 입장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동사회강≫의 저술시기는 숙종 후반 노론의 집권이 점차 공고해져 가던 때이다.

    -출처:우리역사넷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상덕은 어려서부터 소론파의 거두이던 윤증(尹拯)을 사사해 그의 학문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관직에 있을 때는 단종 때 권력을 장악했던 김종서(金宗瑞)의 죄를 용서할 것을 주장하고, 당론을 배격하며 숙종의 전제권 강화를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저작된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지방 수령을 지내던 1711년(숙종 37)부터 1719년 사이로 추측된다. 책의 앞 부분에 서례(序例)·범례·논변(論辯) 그리고 연표가 실려 있고, 본문은 삼국기(三國紀)·신라기(新羅紀)·고려기(高麗紀)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고려기가 본문 12권 중 9권으로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먼저 저자 자신이 쓴 서례에서는 ≪삼국사기≫ 이후의 역대 사서들을 평가, 비판하였다. 그러면서 17세기 중엽 유계(兪棨)가 쓴 ≪여사제강 麗史提綱≫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 그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밝히고 있다.

    ≪여사제강≫은 강목법을 따르면서도 범례가 자세하지 않은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약점을 보완해 21개항의 범례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주자(朱子)의 ≪자치통감강목 資治通鑑綱目≫의 범례를 따르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나라 현실에 알맞게 가감, 조정한 것이었다.

    즉, ≪자치통감강목≫은 중국사만을 다루었지만, 이 책은 중국 중심의 아시아 세계 테두리 속에서 한국사를 서술하는 까닭에 주자 강목의 범례를 조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논변에서는 기자봉조선(箕子封朝鮮), 황괴참위설(荒怪讖緯說)의 존삭(存削), 천추태후(千秋太后)의 흉졸(薨卒), 삼한지방(三韓地方), 동국지명(東國地名), 단군 이하 시조의 출자(出自), 도선(道詵)의 사적(史蹟)에 대한 의문 등 일곱 가지 항목을 다루고 있다.

    이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을 시도한 것으로서, 그 뒤 안정복(安鼎福)의 ≪동사강목≫에 보이는 고이(考異)의 선구적 형태이다. 따라서 이 책은 고증사학적 역사 서술의 단서를 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음 연표에서는 삼국·신라·고려의 순으로 왕력(王曆)을 작성하였다. 여기에 중국 왕력이 대비되어 있어서 본문 기사에서는 중국 왕력을 일일이 적는 것을 피하고 본국의 왕력만을 적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동사회강≫에서 비롯되어 ≪동사강목≫에서도 답습되고 있다.

    본문은 삼국시대부터 서술하고 삼국 이전의 상고사는 편년 기사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신라 시조에 관한 기사 밑에 3조선과 삼한에 관한 서술을 안설(按說)로 소개했고, 또 논변에서도 단군·기자·삼한의 위치 등에 관해 고증했으므로 실제상으로 상고사를 부인한 것은 아니다.

    특히, 범례와 논변에서 기자수봉설(箕子受封說)을 부인하고 기자가 주무왕(周武王)에게 신하로 복종하지 않은 독립군주였음을 강조하고 있어, 중국에 대해 조선이 자주적 국가였음을 명시하고 있다.

    기자와 기자조선의 후신인 마한을 높이는 태도는 17세기 사서의 공통된 성격으로서 이 책에서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삼국 이전을 편년에서 삭제함으로써 기자조선과 마한을 정통국가로 취급하지 않았으며, 삼국시대를 무통(無統)의 시대로 간주하였다. 한국사에 있어서 정통의 시대는 신라 통일 이후와 고려 통일 이후만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통 체계는 17세기 중엽 홍여하(洪汝河)의 ≪동국통감제강 東國通鑑提綱≫에서 기자-마한-신라(삼국)-신라(통일)를 정통 국가로 인정한 것과 비교해 차이가 드러난다. 이는 임상덕이 홍여하보다 삼국을 대등한 시각에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의 삼국무통론(三國無統論)은 그 뒤 ≪동사강목≫에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편년 기사에서 재상의 구실을 어떻게 서술하느냐 하는 것은 편자의 정치사상을 예민하게 반영하는 것인데, ≪동사회강≫에서는 재상의 사망 뒤에 졸기(卒記)를 적어 재상의 구실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유계의 ≪여사제강≫도 나타나는 이같은 점은 17, 18세기의 붕당정치 운영에 있어 왕권 전제를 반대하고 재상권의 자율성을 높이려는 서인(西人)의 정치사상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의의와 평가

    ≪동사회강≫은 안정복의 ≪동사강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홍여하의 ≪동국통감제강≫과 유계의 ≪여사제강≫에서 비롯된 강목법과 정통론 도입의 역사 서술 방법은 ≪동사회강≫을 거쳐 한 단계 심화되고, ≪동사강목≫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사회강 [東史會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