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단심가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단심가는 고려왕조가 멸망할 무렵, 뒤에 조선조 태종이 된 이방원(李芳遠)이 정몽주를 초대한 자리에서 <하여가(何如歌)>를 지어 그 마음을 떠보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응답하여 지은 것이 이 노래입니다. 이방원은 만수산 드렁칡과 같이 서로 얽혀 백년까지 누리자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받아 정몽주는 일백 번 고쳐 죽더라도 뜻이 변하지 않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조선조 개국과정에서 반대파의 주장을 대변하였던 이 노래가 개국 후에는 신하의 충성심을 나타내는 노래로 널리 퍼졌습니다. 조선조가 내세운 유교적 지배질서와 부합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노래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묘미있는 표현을 개척함으로써, 고려말 새로운 갈래로 등장한 시조가 정착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였습니다.
정몽주는 단심가를 통해 '설사 죽더라도 고려를 향한 충심은 바꾸지 않는다'라고 답한 것입니다.
이에 이방원은 회유를 포기하고 부하를 시켜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철퇴로 때려 죽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