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 4월 이방원 일파에게 개경의 선죽교에서 암살된 정몽주는 그의 시신은 베어져 개경의 저잣거리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우현보와 송악산의 승려들이 그의 시신을 수습하여 염습한 뒤 개경 풍덕으로 옮겨져 가매장되었다가 후일 경기도 용인으로 이장되었습니다.
<태조실록>에 의하면 정몽주가 살해되고 나서 이성계는 격노했다고 합니다. 이에 이방원은 "몽주 등이 장차 우리 집을 모함하려고 하는데, 어찌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합하겠습니까? 몽주를 살해한 이 것이 효도가 되는 까닭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즉, 이방원 등 조선 건국 세력은 정몽주를 역적으로 몰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