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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와 유점사에서 있었던 일화는 어디에 기록되어 있던 건가요?

임진왜란 때 왜장이 유점사에서 사명대사와 필담을 나누고 칼을 거두어 돌아갔고,

다른 일본군들이 유점사에 침입하지 못하게 글까지 써주고 갔다고 하는데 이 일화는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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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수려한벌11
      수려한벌11

      임진왜란 당시 유점사와 사명대사 간의 일화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覧)"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조선 시대의 최초의 지리서로서, 이는 1530년에 완성된 "신분도감록(新分圖監錄)"을 기반으로 한 작품입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임진왜란 당시 유점사와 사명대사의 일화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왜군)은 배가 닻을 내리자마자 도시를 태웠고, 모든 사람들이 도망갔으나 유점사는 그 자리에 남았다. 그는 이들에게 당부하여 왜장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장이 떠나면서 그는 글을 써 그들로 하여금 이 사찰을 훼손하지 말 것을 요청하였다."

      따라서, 이 일화는 "동국여지승람"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일화의 실제 역사적 정확성에 대해서는 연구가 계속 진행되고 있으며,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일화의 정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명대사 기적비는 조선시대의 승려 의병장인 사명대사 유정(泗溟大師 惟政, 1544~1610)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정조 24년(1800)에 세웠다고 합니다. 기적비란 한 인물의 행적 또는 어떤 사건에 관련된 사실과 자취를 기록한 비(碑)를 말하는데 사명대사의 기적비가 건봉사에 세워진 것은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건봉사에서 승병을 모집해 공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비문은 당시 강원도 관찰사였던 남공철(南公轍, 1760~1840)이 지었고 허질(許晊, 1734~1804)이 글씨를 썼다고 합니다. 비문에는 사명대사가 건봉사 낙서암에서 출가하였고, 선조 37년(1604) 일본과의 화의를 협상하기 위해 사신으로 일본에 파견되었으며, 이듬해 성공적인 외교적 성과를 거두고 전쟁 중에 잡혀갔던 3천여 명의 백성까지 데리고 귀국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또한 전쟁 때 왜적이 통도사에서 약탈해간 치아사리를 되찾아와 건봉사에 안치했다는 사실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