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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르름
푸르르름23.11.26

고려의 외왕내제가 무엇인가요?

고려는 자국에서는 황제국의 체제를 갖추도 외국을 상대로는 제후국을 칭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내부와 외부 외교를 다르게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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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2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1.26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외왕내제는 대외적으로는 자국의 군주를 왕으로 칭하지만 속내는 황제로 내세우는 체제입니다.
    뒤집어서 내제외왕이라고도 합니다.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같은 화이론이 강한 국가의 체제를 따르지만 내부적으로는 황제를 칭하거나 황제에 준하는 칭호나 체제를 갖추는 것을 뜻합니다.

    고려가 건국됐을 때엔 한반도에 후백제, 신라가 건재했고 만주에는 요, 발해가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천자국인지 누가 제후국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려웠기에 유교적 외교 질서가 혼란스러웠습니다. 시간이 지나 중국 대륙은 송, 만주는 요, 한반도는 고려로 동북아는 세 나라로 수렴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유교적 외교 질서가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송과 요는 자주 다투었고 전쟁을 여러번 치뤘습니다. 단 하나의 천자국이 존재해야 되는데 동북아에는 천자국을 자칭하는 나라가 송, 요 두 나라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천자국의 위상은 떨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려는 이미 외왕내제의 전통이 있던 상태에서 요나라와 갈등까지 겪자 자국 또한 천자국이 될 수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외왕내제는 대외적으로는 자국의 군주를 왕으로 칭하지만 속내는 황제로 내세우는 체제 입니다.

    신라의 통치 체제 이념으로 자리잡은 삼한통일의식은 후삼국 시대에 이르러 다시 이를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역사적, 정치적 당위성을 제공, 고려 태조 왕건은 즉위 당시 해내의 겸병을 역설, 그가 주인을 죽이는 후백제로부터 신라를 구원한 것은 옛 주인임을 늘 생각하며 잊지 않은 것이라 최승로에게 칭송받았습니다. 이처럼 고려는 고구려의 계승을 표방했으나 실질적으로 신라에서 연원했기 때문에 후삼국 통일 후 체제 이념이 근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고려는 통일을 실질적으로 건국 으로 의식, 왕건은 삼한통일을 이룩한 군주로 평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