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후 조선 백성들끼리 식인을 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임진왜란 이후에 전쟁에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식인을 저질렀다는 게 정말 기록되어 있나요? 어떤 원인 때문에 식인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건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선비 오희문이 쓴 임진왜란 피난 일기 <쇄미록>에 나오는 구절에 인육 먹는 기록이 나옵니다.
"최근에는 걸인이 매우 드물다. 모두들 두어 달 사이에 이미 다 굶어 죽었기 때문에 마을에 걸식하는 사람이 보기 드물다고 한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이 고을 근처에도 굶어 죽은 사람이 길가에 즐비하니, 사람들의 말이 거짓은 아니리라. 영남과 경기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일이 많은데, 심지어 육촌의 친척을 죽여서 먹기까지 했단다. 항상 불쌍하다고 여겼는데 지금 다시 듣자니, 한양 근처에서 전에는 1, 2되의 쌀을 가진 사람이라야 죽이고 빼앗더니 최근에는 혼자 가는 사람이 있으면 마치 산짐승처럼 거리낌 없이 쫓아가서 죽여 잡아먹는다고 한다.이러다가는 사람의 씨가 말라 버리겠다.”<쇄미록>, 1594년 4월 3일
비록 개인의 일기이고 인육 먹는 장면을 직접 본 것은 아니고 뜬 소문을 옮겨다 쓴 내용이지만 가능성이 실제 가능성도 있어요.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때 워냑에 많은 약탈과 집등이 불에 타서 먹을게 부족하고 정부도 딱히 도와줄게 없었습니다.
이때기록 따르면 산에 산나물도 보기 힘들고, 나무껍질 죽을 많이 먹어서 나무가 벌거벚었따라는 기록이 있어서
백정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아기를 잡아서 먹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 때문에 호남지방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난이 일어난 이후 2년간 폐농(농사 포기함)할 정도로 국토가 황폐해 졌습니다.
전쟁 끝났다고 박살난 집하고 타버린 밭이 원상복구 되는건 아니니까요
전부 시간과 자원을 들여서 노력해야 복구가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선조실록에 선조27년 굵어죽은 자의 시신에 베어먹은 흔적이 있었단 기록이 나옵니다
≪宣祖實錄≫권 47, 선조 27년 정월 병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