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에선 15세가 성인입니다.
그래서 남녀 모두 15세에 성인식(관례)를 치뤘습니다. 이때부터 남자들은 상투를 틀고(장가를 들지 않아도 관례를 치르고 나면 상투를 틀고 갓을 썼습니다.) 여자들은 비녀를 꽂는데, 여자들은 대개 관례를 생략하고 시집을 간 뒤 비녀를 꽂았습니다.
이렇게 관례를 치르고 나면 얼마 후 결혼을 했습니다. 그 나이는 16세 ~ 18세쯤이었고 자손이 귀한 집은 더 일찍하기도 하고,(13살 쯤) 왕실에선 10살 무렵이면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신분으로 마음에 든다고 만나는것은 어려웠습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 남자 형제와도 같은 자리에 앉지 않을만큼 내외법이 있었고, 또 이것이 철저하게 지켜지지 않았던 조선 전기라고 할지라도 연애 결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양반이라도 조선 후기로 가면 갈수록 당파 싸움이 심해졌는데, 만약 같은 소론의 사람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노론가의 여식을 소론가로 시집보내는 일은 절대 없었겠구요.
(왕실에서의 소론을 지지했던 사도세자와 노론을 지지했던 혜경궁만 봐도 끝은 어떠한 결말을 보여줬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혼인으로 이어지려면 부모의 승낙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만큼 반대가 더욱 심했죠. 양반 신분을 유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버지, 할아버지 덕분이기 때문에 결혼으로인해 결국 평민으로 전락해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에 생활이 고달플테니까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도 목숨을 끊지 않는 이상 부모가 강행한다면 어쩔 수 없이 같은신분끼리 해야만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