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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탈한하늘소43
소탈한하늘소4323.05.07

백제의 전성기를 이끈 백제의 대표적인 왕은 누구인가요?

삼국시대에서 보통 신라에는 무열왕, 문무왕이 떠오르고, 고구려에는 단연 광개토대왕이 떠오르는데요, 근데 백제는 대표적인 성군이 떠오르지 않아서요, 혹시 백제의 전성기를 이끈 백제의 대표적인 왕은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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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는 고이왕 대 체제를 정비한 후 마한과 목지국을 병합하여 한반도 중부에서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고, 이후 근초고왕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주변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해 갔습니다.

    백제는 건국 직후부터 말갈, 낙랑 등 북방 세력의 침략을 계속해서 받았는데, 이들 지역을 고구려가 병합하면서 서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백제의 고구려에 대한 대응은 이 기사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근초고왕 대에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이는 고구려의 남진을 막는 한편, 더 나아가 적극적인 북방 진출의 시도라는 형태로 이뤄졌습니다. 양국의 전쟁이 본격화된 것은 「백제본기」에 따르면 고구려의 선제공격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근초고왕 24년(369) 백제의 세력이 점차 커지는 것을 우려한 고구려 왕 사유가 치양을 공격하였습니다.

    한편, 일본서기 신공기 49년조에 따르면, 백제 왕 부자(근초고왕과 근구수)가 남만 침미다례를 평정하자, 비리⋅벽중⋅포미지⋅반고 등 4읍이 항복을 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실제 근초고왕 대에 이 지역을 백제가 직접 통치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백제의 영향력이 미쳤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백제의 남방 진출이 활발해지자 고구려는 백제가 주변국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남쪽으로 진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백제가 고구려에 가장 우세했던 시기는 근초고왕 26년(371)이었습니다. 근초고왕은 태자 근구수와 함께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켰습니다. 이후 백제가 도읍을 한산으로 옮겼다는 기사가 「백제본기」 근초고왕 26년조에 전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도읍을 옮겼다기보다 고구려와의 전쟁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운영된 일종의 군사령부와 같은 부서를 두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이후 백제는 북방 지역으로의 진출이 여의치 않아 보입니다. 근초고왕 30년(375)의 기사에 따르면 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최북단은 예성강 일대로 추정되는 수곡성이었던 듯합니다. 백제는 평양성까지 공격하였으나 그곳에 군사를 주둔시키는 등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다만 수곡성에 진출하였고, 이 지역까지 영향력을 미쳤을 뿐입니다. 백제는 수곡성을 상실할 때까지 이곳을 경계로 고구려와 맞섰던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근초고왕은 백제의 최고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신라의 진흥왕과 비견될 만하지만 광개토대왕은 18세에 즉위 하자마자 백제 10성을 점령하는 등 치세를 전쟁과 정복으로 보낸 진정한 정복군주며 진흥왕도 10대 후반~20대의 나이 때 영토를 즉위 시점의 2배~3배로 확장시켰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