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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05.28

현종 때 일어난 예송논쟁의 결과는 무엇이었나요?

효종이 승하 후 현종 때 일어났던 남인과 서인의 예송논쟁이 있잖아요.

상복을 두고 논쟁이 있었다는 건 아는데 그 논쟁에 대한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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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8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예송 논쟁은 크게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첫 번째 논쟁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왕위에 오른 효종이 죽자 그 어머니인 조대비가 얼마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느냐를 두고 일어났습니다.

    서인은 효종이 조대비의 둘째 아들이므로 성리학의 예법에 따라 1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자가 정리한 ‘가정에서 지켜야 할 예법(주자 가례)’에는 장자가 죽었을 경우, 부모는 3년 동안 장례의 예를 갖춰야 하고, 차남 이하는 1년간 해야 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인은 효종이 비록 둘째 아들이지만 임금이 되었으므로 장남과 같이 대우하여 3년(만 2년)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결국 조대비가 상복을 입는 기간은 1년으로 결정되었고, 논쟁에서 승리한 서인이 정치의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두 번째 논쟁은 효종의 아들이었던 현종이 임금이 된 후에 효종의 왕비였던 인선 왕후가 죽자 시어머니인 조대비가 얼마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를 두고 벌어졌습니다. 주자 가례에는 첫째 며느리의 경우는 1년, 둘째 며느리에게는 9개월간 장례의 예를 치르도록 하고 있다. 서인은 인선 왕후가 조대비의 둘째 며느리이므로 성리학의 예법에 따라 9개월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남인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효종이 둘째 아들이라도 임금이 되었으므로 장자로 대우해야 하며, 인선 왕후에게도 장자의 며느리에 해당하는 예를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논쟁에서는 조대비가 1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논쟁에서 승리한 남인과 이에 동조한 세력이 권력을 잡았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예송 논쟁 - 성리학의 예법을 어떻게 풀이할지를 두고 벌인 논쟁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2015. 2. 10., 김한종, 이성호, 문여경, 송인영, 이희근, 최혜경, 이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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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입니다.

    ✅️ 1차 기해예송에서는 서인이 승리함에 따라 서인이 실질적인 정권을 잡게 되었고, 2차 갑인예송에서는 남인이 승리함에 따라 남인이 정권을 잡는듯 하였으나 현종이 1674년 급서하면서, 서인과 남인이 연립해서 정권을 이루는 형태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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