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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1.07

신사임당의 업적과 상징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현 5만원권의 인물 모델은 신사임당인데요. 어떤 업적과 상징성이 있어서 5만원권 모델로 채택됐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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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01.07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은행은 한국 사회의 양성 평등 의식을 제고하고 여성의 사회 참여에 긍정적으로 기여한다는 취지로 신사임당을선정하였습니다.

    신사임당은 자리도, 초충도, 노안도 등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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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임당이 지향한 최고의 여성상은 태임으로 그녀를 본받는다는 뜻으로 당호를 지었는데, 사임당을 평한 사람들 중에는 그의 온아한 천품과 예술적 자질조차도 모두 태임의 덕을 배우고 본뜬 데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이이와 같은 대정치가요 대학자를 길러낸 훌륭한 어머니로서의 위치를 평가한 때문이다.



    그러나 사임당은 완전한 예술인으로서의 생활 속에서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을 성숙시켰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그는 조선왕조가 요구하는 유교적 여성상에 만족하지 않고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스스로 개척한 여성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교양과 학문을 갖춘 예술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그의 천부적인 재능과 더불어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북돋아준 좋은 환경이 있었다. 그의 재능은 7세에 안견 (安堅)의 그림을 스스로 사숙(私淑)하였던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그녀는 통찰력과 판단력이 뛰어나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녀 예술가로서 대성할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 감회가 일어나 눈물을 지었다든지 또는 강릉의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운 것 등은 그녀의 섬세한 감정이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4. 그림재능


    그녀의 그림·글씨·시는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운데, 그림은 풀벌레·포도·화조·어죽(魚竹)·매화·난초·산수 등이 주된 화제(畵題)이다. 마치 생동하는듯한 섬세한 사실화여서 풀벌레 그림을 마당에 내놓아 여름 볕에 말리려 하자, 닭이 와서 산 풀벌레인 줄 알고 쪼아 종이가 뚫어질뻔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녀의 그림에 후세의 시인·학자들이 발문을 붙였는데 한결같이 절찬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림으로 채색화·묵화 등 약 40폭 정도가 전해지고 있는데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그림도 수십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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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신사임당은 1504년(연산 9)에 강원도 강릉 죽헌리에서 출생하여 1551년(명종 6) 4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사임당은 시, 글씨, 그림에 매우 뛰어난 실력을 보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글과 그림을 배웠는데 신사임당은 풀벌레, 포도, 화초, 매화, 난초 등 자연물을 많이 그렸습니다. 일화로 초충도 그림을 본 닭이 와서 살아 있는 곤충인 줄 알고 쪼아서 종이가 뚫어질 뻔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화가로 유명했던 그녀가 부덕 즉 부녀자로서 지녀야 할 어질고 너그러운 덕행의 상징으로 존경받게 된 것은 그녀가 죽은 뒤 백 년이 지난 17세기 중엽 송시열이 그녀의 그림을 찬탄하면서 천지의 기운이 응축된 힘으로 율곡 이이를 낳았을 것이라는 평가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율곡 이이가 유학자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자 그녀는 화가보다는 그를 낳은 어머니로 칭송받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신사임당이 오만원 지폐의 모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심이 깊었고 결혼해서는 남편과 자식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학문에 전념할 수 있게 했으며 자식을 잘 키워 후대에 길이 남을 인재로 율곡 이이를 길러낸 점, 또 유교적 여성상에 만족하지 않고 훌륭한 예술가로서 그림, 문장, 붓글씨, 자수, 바느질 등으로 많은 작품을 남겼던 점이 아닐까 합니다.

    또 한 측면에서는 우리나라 지폐 모델이 전부 남성이다 보니 여성 위인도 지폐의 모델이 될 필요성도 조금은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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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저는 제가 답변하는 질문에는 '좋아요' 누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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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율곡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은 양반가의 며느리로 들어갔지만 그 시대를 뛰어넘어서


    시와 그림 등이 아직도 남아 있고, 율곡이이를 낳고 키운 어머니이기 때문에


    여성이지만 조선시대의 다른 남성들과 비유를 해도 비길 수 없을 만큼 능력을 가졌고


    그전의 화폐에는 남성들의 그림만 있었기 때문에 여권신장과 남녀평등을 나타내기 위해서


    일부러 신사임당을 선택을 하여 만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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