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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풍뎅이41
자유로운풍뎅이4123.04.11

조선시대의 홍수발생시 궁금한점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홍수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했는지 대처방법이 궁금합니다.

모든 분뇨들이 다 넘쳐서 온갖 냄새와 역병까지 발생했다는데 어떻게 대처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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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500년 역사 속에 홍수의 기록은 여러 곳에 보이고 또한 이를 해결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흔적도 보입니다. 강이 범람해 물바다가 됐던 지역에 임금은 내탕전을 보냈습니다. 내탕전이란 임금이 쓰는 돈을 말합니다. 수해 복구를 위해 임금은 개인 돈을 기꺼이 내놓았습니다.철종실록(1851년)에는 "여름·가을의 홍수는 근래에 드물게 있는 것으로 특별히 내탕전을 관서에 3천 민, 해서에 2천 민을 내려 하찮은 물력이나마 고락을 함께 하는 뜻을 보이니“라고 적혀 있습니다. 여기서 민(緡)이란 ‘동전 꾸러미’를 세는 단위입니다.나라에서는 수해를 입은 백성들에게는 휼전을 제공했습니다. 휼전(恤典)이란 이재민 등을 구제하기 위해 내리는 식량 등 특전을 말합니다.영조실록(1763년)에는 “강원도에 큰 홍수가 나서 민호가 표몰되고 사람과 가축이 많이 물에 빠져 죽었는데…휼전을 시행하라고 명하였다”고 돼 있고, 현종개수실록(1670년)에는 “정이원 및 자녀 손자 남녀 6명이 모두 죽었다. 휼전을 거행하라고 명하였다.”고 적혀 있습니다.1673년 현종은 홍수가 잦자 “그대들 백관은 나의 지극한 뜻을 몸 받아 편당을 짓지 말고 함께 화목하게 협력해서 나라를 위해서라면 세상의 원망도 도맡아 나서고 충성을 다 바칠 것은 물론, 과인의 잘못과 시정의 병통을 극언하여 잘못을 살피고 고칠 수 있도록 하라”며 당파 간 협력을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세금을 감면 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왕은 가뭄에는 기우제를 지내듯, 홍수에도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정조실록(1792년)에는 “공주목 옥천군에 홍수가 나 1백 40여 호가 잠기고 59인이 빠져 죽었다. 관에서 거두어 묻어주고 제사를 지내 위로하라고 명하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