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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말똥구리
땅속의 말똥구리22.10.21

우리나라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가 있을때 가야 또한 있었는데 이는 하나로 인정하지 않았을까요?

삼국시대 역사는 항상 흥미가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었고 당시에 가야도 있었지만 사국시대라고는 하지 않네요. 하나의 국가로 경상도에 위치했지만

빠져있는데 왜 그럴까요?

가야의 역사도 우리역사인데 너무작아서 그런건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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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야는 삼국시대 때 낙동강 일대의 6개 나라의 연맹왕국 이었습니다.

    가야의 시조가 김수로왕 이라합니다.

    562년 신라에 흡수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패함으로서

    신라에 흡수되었으니 흡수된 이후를 가지고 삼국시대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흡수된 이전 사국등 여러 국가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있지만 주장일뿐이고 삼국시대라고 하는 것 역시 역사의 옳바른 이름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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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역사는 고조선 이후 초기철기국가 즉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이 성립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고대국가로 발전한 나라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대국가의 특징은 왕권강화, 중앙집권적 통치제도 확립, 율령반포를 들 수 있습니다. 이 기준에 맞는 나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입니다 이 삼국은 한강유역을 놓고 경쟁하였습니다. 백제는 마한 중 소국 중 하나였으나 고이왕 대 통치체제를 정비하고 근초고왕 때 크게 국력을 발전시켰습니다. 신라는 진한의 소국 중 하나인 사로국에서 시작해 결국 가야를 병합하고 삼국을 통일했지요.

    이에 반해 가야는 연맹국가 단계에 머무른 것으로 평가됩니다. 변한 지역에서 12가야가 출현하지만 전기에는 김해 지방의 금관가야가 맹주역할을 하였고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침입을 받고 난 이후 금관가야는 쇠퇴하고 후기에는 고령 지방의 대가야가 맹주가 됩니다. 벼농사와 철기 등의 교역으로 발달했지만,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한 고대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연맹 상태의 소국으로 그쳤던 것입니다. 따라서 고대국가가 경쟁했던 시기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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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테스티아입니다.

    * 가야의 경우 중앙집권체제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며, 실제로 가야는 국가라기 보다는 연맹왕국정도로 평가를 합니다. 즉, 너무 작아서라는 것도 한편의 이유가 될 수 있고, 정확히는 중앙집권화 되지 못했었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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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차하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말씀대로 삼국시대에 가야도 존재했는데요. 가야는 보통 기원전 1세기부터 서기 562년까지 존재한 것으로 보는데요. 따라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던 삼국시대에 같이 존재했던 국가지만 사국시대가 아니라 삼국시대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야를 제외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야가 고대 국가로 인정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고대 국가로 인정되려면 왕위 계승, 영토 확장 율령 반포, 불교 수용의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가야는 이 조건들을 두루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야는 고대 국가로까지 성장하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었고 우리는 삼국시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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