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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친칠라280
대단한친칠라28023.02.26

문경지교란 고사성어의 유래는 무엇인가요?

문경지교란 고사성어는 친구간의 우정에 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경지교란 고사성어는 어떤 역시적 사실에서 유래하나요? 설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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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2.26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문경지교란 목을 벨 수 있는 벗이라는 뜻으로,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벗이라는 의미로쓰입니다.

    전국시대 조나라 혜문왕의 신하 목현의 식객에 린상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진나라 소양왕에게 빼앗길뻔했던 천하 명옥인 화씨지벽을 원상태로 가지고 돌아온 공으로 일약 상대부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리고 3년 후 혜문왕을 욕보이려는 소양왕을 가로막고 나서서 오히려 소양왕에게 망신을 주었다고합니다. 린상여는 그 공으로 종일품의 상경에 올랐습니다. 그리하여 린상여의 지위는 조나라의 명장으로 유명한 렴파보다 더 높아졌고 렴파는 분개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나는 싸움터를 누비며 성을 쳐서 빼앗고 들에서 적을 무찔러 공을 세웠다. 그런데 입밖에 놀린것이 없는 린상여따위가 나보다 웃자리에 앉다니. 내 어찌 그런놈 밑에 있을수 있겠는가. 언제든 그놈을 만나면 망신을 주고말테다.” 이 말을 전해들은 린상여는 렴파를 피했고 그는 병을 핑계대고 조정에도 나가지 않았으며 길에서도 저 멀리 렴파가 보이면 옆길로 돌아가곤 했다합니다. 이같은 린상여의 비겁한 행동에 실망한 부하가 작별인사를 하러 왔고 린상여는 그를 만류하며 이렇게 말했다고합니다. “자네는 렴파장군과 진나라 소양왕과 어느 쪽이 더 무섭다고 생각하는 가?” "그야 물론 소양왕이지요.” “ 나는 소양왕도 두려워하지 않고 많은 신하들 앞에서 소양왕을 혼내준 사람이야. 그런 내가 어찌 렴파장군 따위를 두려워하겠는가?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강국인 진나라가 쳐들어오지 않는 것은 렴파장군과 내가 버티여있기때문일세. 이 두 호랑이가 싸우면 결국 모두 죽게 돼. 그래서 나라의 안위를 생각하고 렴파장군을 피하는거야” 이 말을 전해들은 렴파는 부끄러워 몸둘바를 몰랐다고합니다. 그는 곧 웃통을 벗은 다음 태형에 쓰이는 형장을 짊어지고 린상여를 찾아가 섬돌아래 무릎을 꿇었다합니다. “내가 미욱해서 대감의 높은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소. 어서 나에게 벌을 주시오.”하고 렴파는 진심으로 사죄했다합니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문경지교”를 맺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趙) 나라 혜문왕(惠文王) 때의

    명신 인상여(藺相如)와 명장 염파(廉頗)는, 한때 인상여의 출세를 시기하는

    염파로 인하여 불화가 생겼는데,

    인상여는 염파의 시기를 무시하고

    염파를 대면하려 하지 않았다.

    이를 의아해한 신하가 인상여에게 그

    이유를 묻자, 자신은 이미 진나라왕

    앞에서도 그를 꾸짖고 모욕했으니

    내가 비록 무능하고 미련하나 염파가

    두렵진 않다는 패기 넘치는 대답과 함께, 그렇다고 염파와 대립하면 내분이

    일어나 진나라가 쳐들어올 것이 뻔하니 조나라를 위하여 자신이 피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러한 사실을 전해 들은 염파는 끝까지 나라를 위하여 참는 인상여의 넓은

    도량에 감격해, 웃통을 벗고 회초리를

    짊어지고 인상여를 찾아가 벌을 받기를 자청함으로써 다시 친한 사이가 되어,

    죽음을 함께 해도 변하지 않는 친교를

    맺게 되었다.

    -출처: 나무위키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문경지교의 뜻은 '목이 잘려 나가도 꿈쩍 않는 절친한 벗을 사귀다' 입니다.

    문경지교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전국시대, 조나라 인상여는 화씨벽을 둘러싼 다툼을 잘 해결하고 돌아와 ‘완벽’이라는 고사성어를 만든 주인공이다. 그 공을 인정받아 그는 상대부 벼슬을 받았다. 3년 후, 진왕이 조왕에게 ‘면지’라는 곳에서 만남을 청했다. 조왕은 진나라가 두려워 응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비겁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별수 없이 그 자리에 나갔다. 진왕은 조왕을 망신 주려고 일부러 그 자리를 마련했는데 옆에 있던 인상여가 조왕을 구해 주었다. 또 꾀를 써서 진왕을 궁지에 몰아넣기도 했다. 그 공으로 인상여는 다시 상경이라는 더 높은 벼슬을 얻었다. 상경은 당시 뛰어난 조나라 장수 염파보다 윗자리였다. 염파는 이를 매우 불쾌하게 여기며 이렇게 말했다.

    “조나라 장군인 나는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런데 인상여는 겨우 입과 혀를 조금 놀렸을 뿐인데 나보다 지위가 높다. 더구나 인상여는 본디 천한 출신 아닌가? 도저히 부끄러워 그의 밑에 있을 수 없구나. 인상여를 만나면 기필코 모욕을 주고 말리라!”

    인상여는 이 말을 전해 듣고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조회가 있을 때에도 병을 핑계대고 잘 나가지 않았다. 염파와 지위 다툼을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뿐만 아니라 외출했을 때도 멀리에서 염파가 오면 급히 수레를 끌고 숨었다. 그를 따르던 부하들은 슬며시 화가 치밀어 불평을 쏟아 놓았다.

    “우리는 사내대장부다운 기개와 의기를 우러러 상공을 모시고 있습니다. 지금 상공께서는 염파에게 모욕을 당할까 두려워 피하고 숨기만 합니다. 이는 평범한 사람들도 부끄러워하는 일이거늘 공은 상경이 아닙니까? 저희는 이를 두고 볼 수 없어 떠날까 합니다.”

    인상여가 이들을 붙들며 물었다.

    “그대들은 염 장군과 진왕 중 누가 더 무서운 사람이라 여기는가?”
    “염 장군보다야 진왕이 훨씬 더 무섭지요.”

    “그럼, 내 말을 잘 듣게. 나는 일찍이 진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궁에서 그와 당당히 맞서며 그 신하들을 꾸짖었다. 그런 내가 어찌 염 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다만 강한 진나라가 감히 우리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나와 염 장군 두 사람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두 마리 호랑이가 서로 물어뜯고 싸운다면 그 결과가 어떻겠나? 둘 다 무사하지 못하거나 어느 한쪽은 죽고 말 테지. 나는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한을 뒤로 제쳐 두어 염 장군을 피하고 있다네.”

    부하들은 비로소 인상여의 깊은 마음을 깨닫고 눈물을 글썽거리며 속이 좁은 행동을 뉘우쳤다. 이 이야기를 듣고 부끄러움을 느낀 염파 장군도 인상여를 찾아가 스스로 벌을 청했다. 염파는 웃통을 발가벗고 가시나무 묶음을 등에 진 채, 대문을 두드렸다. 그 가시나무로 자신을 때려달라는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나를 벌해 주시오. 내가 어리석어 상공의 깊고 넓은 뜻을 모르고 함부로 굴었소. 미안하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염파는 진심으로 사죄했다. 두 사람은 마침내 화해하고 문경지교를 맺어 죽는 날까지 뜻을 함께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경지교 [刎頸之交] (공부왕이 즐겨찾는 고사성어 탐구백과, 2016. 1. 15., 글터 반딧불, 황기홍)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경지교는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벗 이라는 의미입니다.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에 인상여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무현이란 신하의 식객이었는데 진나라와의 외교에서 몇번의 큰 활약을 하여 상경이라는 높은 벼슬에 올랐다.

    한편 조나라의 염파장군은 전장을 누비며 큰 공을 세웠던 자신보다 인상여가 높은 자리에 오르자 이를 매우 불쾌하게 여기며 다음에 인상여를 만나게 되면 망신을 줄 것이라 다짐한다.

    이 소식을 들은 인상여는 이후에 염파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계속 피해다녔다. 이를 본 인상여의 부하들은 인상여에게 불만을 토로하자 인상여는 강국인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와 염파장군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염파장군과 다투게 되면 나라가 위태로워 질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염파는 웃통을 벗고 가시나무를 지고 인상여의 집으로 찾아와 비천한 제가 장군의 너그러우심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라고 한다.

    마침내 두 사람은 목을 베어 내어줄 정도의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친구 간의 우정에 관한 고사 성어 들은 많이 있지요. 관포 지교 등같은 말도 있습니다. 문경 지교란 목이 잘리는 한이 있어도 마음을 변치 않는 우정. 중국 전국 시대의 인상여와 염파의 친교 에서 생긴 말이라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경지교란(文經之交爛)은 고사성어 중 하나로, 예로부터 전해지는 사상이나 문화를 공유하며 서로 교류하는 정신적 교제가 서로 상충하거나 무례해지는 상황을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이 고사성어의 유래는 고려시대의 문신인 이광수(李光守)와 손숙(孫淑)의 이야기에서 비롯됩니다. 이 교류는 문학, 철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들은 서로 문화를 공유하고 교류하며 정신적인 교제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이광수가 손숙을 방문하였을 때, 손숙의 후궁과 무례한 짓을 하였습니다. 이에 이광수는 교제를 중단하고, 이후로는 손숙과 교류하지 않았습니다. 이 교제가 상충하거나 무례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이후로는 서로 교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문경지교란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면서 고사성어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문경지교는 전국시대 조나라의 인상여와 염파의 이야기에서 유래되었습니다.어느 날 진나라 왕은 조나라 왕에게 만남을 요청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문경지교(文經之交)는 고사성어 중 하나로, 서로 지식과 학문을 교류하고 나누는 친구나 동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의 유래는 중국의 성리학자인 이이(李瀷)가 자신의 저서인 《성리대전》에서 서로 지식을 교류하는 친구나 동료를 '문경지교'라고 표현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이는 지식을 나누는 과정에서 친구나 동료와 서로 공부를 돕고 발전시키며, 이것이 사회 발전과 인재 양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이이의 성리학 이념이 중국 교육, 문화, 지성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나라들에서도 이와 관련된 말과 개념이 유지되고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경지교란 조나라의 인상여와 염파의 우정을 뜻한 것으로 유래는 다음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sgsg.hankyung.com/article/2019092024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