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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남생이120
조용한남생이12023.04.04

이집트 같은 경우 왜 장례 문화로 미라가 있는 것인가요???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이집트와 같이 미라가 있는 것은 본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집트의 어떤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미라라는 장례 문화가 생긴 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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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11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0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가장 큰 배경이라고하면 종교 때문입니다.

    이집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전에 문명이 발생한 곳들 중 하나이기에 아주 오래전부터 장례문화가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고대부터 아주 복잡하고 다양한 장례문화가 있었습니다.

    이집트 인들은 사후에도 인간이 영생할 수 있고 이 사후세계는 영혼과 더불어 시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이를 보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합니다.

    먼저 시신이 부패되지 않도록 건조한 곳에 묻고, 이걸로도 충분치 않아 여러 방부제를 개발했죠.

    잘 썩는 내장을 따로 병에 담아 보관하고, 시체는 탄산소다를 넣어 봉한다음 통풍이 좋은 아마포를 감싸 나무 또는 돌로 된 관에 넣었죠.

    이 미라는 망자의 집에서 무덤까지 장례행렬로 옮긴다음, 종교 사제들이 몇가지 염을 하고 여러 사후에 쓸 물건들을 함께 무덤속에 보관했다고합니다. 초기 무덤은 벽돌로 지은 무덤이며 사각형도 있었지만

    피라미드처럼 사각뿔형태가 더 유명하죠.

    하지만 이런 형태는 눈에 잘 띄어 도굴꾼들이 자꾸만 물건을 훔쳐가서 이후에는 왕가의 계곡과 같이 눈에 잘 띄지않는 동굴속에 묻는 형태로 바꾸었지만 기본적으로 미라 형태로 시신을 최대한 보존하려 했답니다.


  •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이집트인이 죽게 되면 그 동네에 있는 모스크에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죽으면 병원이나


    장례식장에서 '빈소'를 차리듯이 그 쪽에 천막을 칩니다.


    장례식에 도착하는 친척/가족/지인/친구들이 천막을 펼친 모스크에 들어가 망자를 위해


    간단한 이슬람식 기도를 드립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빈소에서 망자분께 조문을 하면서 의례로 절을 하는 것과 달리 여기는


    우상숭배 금지 종교계율로 인해 망자에 대해 절을하거나 고개를 숙이진 않습니다.


    망자를 위한 기도는 알라후 아크바르(알라께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를 3번 언급하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서 '쌀라아무 알레이쿰(당신께 알라의 평안이 깃들기를)'이라고


    말하고 간단히 끝냅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고 이슬람권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24시간 내에 매장을 해야하기에


    다 끝나면 망자가 담긴 나무로 만든 관을 장지로 옮깁니다.


    물론 우리나라와 같이 '운구'과정은 남자들만 합니다. 그리고 번갈아 들어주는게 이들의 상례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통 장례인 '이제가면 언제오나 어어야~' 이런 식의 상두꾼 개념은 없습니다.


    그래서 장지에 매장을 하고 추도를 한뒤 끝이 납니다.


    그리고 부조금 같은 한국식 문화는 없습니다. 물론 나중에 개인적으로 도와줄 수는 있어도


    '이슬람의 천국에 가셨을 것이다' 정도로 간단히 위로하시는 건 괜찮습니다.


    또한 질문자님이 이집트가 장례 문화가 대다수가 이슬람 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나 서구식으로


    변화가 많을 것이라 생각하시는데 자료를 많이 못 찾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부부니이 이슬람이기에 옛날 방식대로 장례를 하는 경우가 현재도 대다수입니다.


    그래서 변화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개신교 청정 지역이었는데 그 이전에는 전통 상례의 비중이 높았으나


    (유교식) 현재는 개신교가 많이 들어와서 우상숭배라고(전 웃기다고 봅니다. 그들의 조상에 대한


    예를 지키는 건 미신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개신교 청정 지역이었던 우리나라에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성스러운 의식입니다.) 반면 이집트는


    현재는 이런 구조가 많이 붕괴되어 있는 변화상을 가진


    국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과거랑 거의 비슷한 상례로 가며 변화가 많지 않기에 질문자님이 자료를 못 찾으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다만 차이를 두고자 하면 고대 이집트까지 간다 치면 고대 이집트에서는 내세를 중시했기에


    사람이나 동물을 미라로 만들어 다시 영혼이 돌아온다고 생각했지만


    7세기 이후 이슬람에 복속된 이집트의 경우 제가 상기 언급드린 문화로 변화가 있었다는 점을


    포인트로 두셔도 되겠습니다.


    크게 구분하시면 고대랑 7세기 이후에서 현재까지입니다.​



  • 이집트에서 장례 문화에 미이라가 등장하게 된 것은

    사후 세계에 대한 신앙의 발로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으면 어떻게 될까’하는 질문을 합니다.

    이집트인들도 이런 의문에 나름대로 해답을 찾아 내놓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직자들입니다.

    이들은 영혼의 수호자로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인간이 현실 세계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면서,

    오시리스의 세계인 사후에 영혼이 머무른다는 저승을 중요시하게 되면서

    미이라가 등장합니다.

    「사자(死者)의 서(書)」라는 책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사자의 서란 미이라와 함께 묻은 지하 세계의 안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양심을 상징하는 죽은 이의 심장 무게를 저울에 다는데,

    깃털보다 심장이 무거운 사람은 죄가 많은 것으로 판단되어

    아뮤트에게 심장을 먹히지만,

    착한 사람은 오시리스의 왕국에 들어가 영원한 삶을 살게 된다고 기록합니다.

    이집트인들은 사후에 인간의 영혼이 오시리스 신곁으로 갈 수 있는 자는 죽어서

    신이 될 수 있는 자뿐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특권은 왕인 파라오만이 누룰 수 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점차 귀족들에게도 그 특권이 허락되었다가,

    나중에는 모든 이집트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모든 이집트인들은 죽어서 신으로 취급되었던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영혼불멸사상에 따라

    시신에는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 이를

    보존하는 것이 고인의 내세에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미라를 만들었다.

    그밖에도 아즈텍, 잉카 등에서도 미라화

    의식이 있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집트 문명에서는 사후세계와 부활에 대한 믿음을 이유로 다수의 인공 미라를 제작, 관리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후관으로 사람이 죽으면 영혼인 '카'는 사후세계로 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시체가 있던 곳으로 돌아와 되살아난다고 믿었으며 그럴려면 그때에 돌아온 육신 '하'가 온전해야 완전히 부활할수 있다고 믿어 시체 보존에 대한 경험과 약학지식 등을 동원하여 시신을 방부처리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휴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집트는 사후세계를 믿었고 죽어서도 보존을 어떻게 해주었느냐가 그 사람의 권력이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후에 영국이 지배를 할 당시에는 그런 미라들을 판매까지 하였고 유럽전역에 이런 미라들이 유행이 되었던적도 있었답니다. 유럽전지역에 이집트 미라들이 많아지게되고 박물관도 많아졌고 파라오 미라 투탕카멘 역시 유럽에 있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집트인들은 죽음에 대한 생각과 관습이 매우 깊었습니다. 이들은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죽음이 인간의 신성한 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이집트인들은 죽음에 대한 준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미라는 죽은 사람의 몸을 보존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이집트인들은 죽음 후의 세계에서 몸을 보존해야만 부활과 함께 이어지는 삶을 보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미라는 죽은 사람의 몸을 보존하고, 영혼이 다시 돌아올 때 몸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이집트인들은 미라를 중요한 장례 문화로 여겼습니다. 이들은 미라를 이용하여 죽은 사람의 몸을 보존하고, 장례식을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장례 문화는 오늘날까지도 이집트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 이집트의 미라화는 내세에 대한 믿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영혼이 사후 세계로 계속 이어지려면 죽은 사람의 몸을 보존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미라화 과정에는 내부 장기를 제거하고 방부제로 몸을 처리하고 붕대로 감는 과정이 포함되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또한 영혼이 내세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고안된 일련의 복잡한 장례 의식과 예식을 믿었습니다. 미라 제작은 고대 이집트의 고왕국 시대(기원전 2686-2181경)에 시작되어 신왕국 시대(기원전 1550-1070경)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파라오와 왕실 구성원을 위해 예약되었지만 나중에는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사회 구성원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이집트인들은 사후에도 내세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의 육체가 남아있어야만 영혼이 돌아와 영원히 살 수 있다고 믿어 미라를 만들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이 주로 먹던 음식은 맥주와 빵이었는데, 맥주를 운반하고 마시는 사람들과 빵 굽는 양조장 모형을 담아 부장품으로 넣기도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미라를 제작한 이유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후관(死後觀)때문으로,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인 '카(Ka)'는 사후세계로 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시체가 있던 곳으로 돌아와 되살아난다고 믿었으며, 그럴려면 그때에 돌아올 육신인 '하(Ha)'가 온전해야 완전히 부활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미라는 이집트의 장례 문화와 관련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죽음에 대한 믿음과 관습을 갖고 있었으며, 그들은 영혼이 죽음 후에도 살아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죽음을 인식하고 존경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습니다.

    미라는 죽은 사람의 몸을 보존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유화나 방안으로서, 이집트의 장례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몸을 보존하고 영혼이 다음 세상으로 이동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미라를 사용했습니다.

    미라의 사용은 이집트 문명의 초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미라는 이집트인들이 죽음에 대한 믿음과 관습을 형성하면서 점차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왕족들이나 부유한 상류층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미라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이집트 문화에서는 미라가 장례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집트인들은 영혼이 다음 세상으로 이동하더라도 몸이 보존되어야 한다고 믿었으며, 그것이 가능하도록 미라를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