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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4

조선시대 왜적들이 일으킨 왜란 중에 삼포왜란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고 어떻게 끝이 났는지 궁금합니다.

1510년 조선 중종 때 왜적들이 부산포, 제포, 염포에서 일으킨 삼포왜란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으며 어떻게 끝이 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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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510년(중종5) 삼포에 거주하던 왜인들이 중종의 엄격한 통제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난을 말합니다.

    1510년(중종5) 부산포ㆍ내이포ㆍ염포 등 삼포(三浦)에서 거주하고 있던 왜인들이 대마도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난이다. 조선은 나라를 세운 후 무질서하게 조선으로 들어오는 왜인 통제를 위해 3포(부산포ㆍ내이포ㆍ염포)를 개항하고 왜관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이 3포에 한하여 일본 무역선의 내왕을 허락했다.

    그러다 중종이 즉위한 후 엄격한 법규 시행으로 왜인들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자, 이전까지 면세 등 다양한 혜택을 받아왔던 왜인들은 이에 불만을 품고 대마도주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1510년(중종 5) 난을 일으켰다. 이들은 이 지역에서 약탈ㆍ학살 등의 만행을 자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부산포 첨사 이우증이 살해되는 등 많은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즉시 황형을 경상좌도방어사로, 유담년을 경상우도방어사로 임명하여 삼포의 폭동을 진압하였다. 이 난으로 조선 측은 군민 270여 명이 살해되고, 일본 측은 290여 명이 죽거나 사로잡혔다.

    그리고 조정은 왜란을 진압한 이후에는 피해를 입은 백성들을 진휼하는 한편 삼포에 거주하고 있던 모든 왜인들을 추방하였다. 이 삼포왜란을 계기로 삼포는 폐쇄되어 통교가 끊겼으나, 일본이 다시 수교할 것을 간청하면서 1512년 임신약조(壬申約條)가 체결됐고, 내이포만이 개항됐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포왜란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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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바고트리니다
    토바고트리니다23.05.24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인들에게 주었던 무역상의 이점을 하나둘씩 없애나가자 불만을 품고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폭동은 진압되었고 폭동을 지원한 대마도주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여 폭동을 주도한 주모자의 머리를 바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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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510년(중종5) 부산포ㆍ내이포ㆍ염포 등 삼포(三浦)에서 거주하고 있던 왜인들이 대마도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난이다. 조선은 나라를 세운 후 무질서하게 조선으로 들어오는 왜인 통제를 위해 3포(부산포ㆍ내이포ㆍ염포)를 개항하고 왜관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이 3포에 한하여 일본 무역선의 내왕을 허락했다.

    그러다 중종이 즉위한 후 엄격한 법규 시행으로 왜인들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자, 이전까지 면세 등 다양한 혜택을 받아왔던 왜인들은 이에 불만을 품고 대마도주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1510년(중종 5) 난을 일으켰다. 이들은 이 지역에서 약탈ㆍ학살 등의 만행을 자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부산포 첨사 이우증이 살해되는 등 많은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즉시 황형을 경상좌도방어사로, 유담년을 경상우도방어사로 임명하여 삼포의 폭동을 진압하였다. 이 난으로 조선 측은 군민 270여 명이 살해되고, 일본 측은 290여 명이 죽거나 사로잡혔다.

    그리고 조정은 왜란을 진압한 이후에는 피해를 입은 백성들을 진휼하는 한편 삼포에 거주하고 있던 모든 왜인들을 추방하였다. 이 삼포왜란을 계기로 삼포는 폐쇄되어 통교가 끊겼으나, 일본이 다시 수교할 것을 간청하면서 1512년 임신약조(壬申約條)가 체결됐고, 내이포만이 개항됐다.

    출처: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2212706&cid=43667&categoryId=43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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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포왜란은 조선 중종 때인 1510년에 발생한 왜적의 침략 사건으로, 부산포, 제포, 염포 등 세 개의 포로 이루어진 해안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입니다. 다음은 삼포왜란의 발발과 종료에 대한 설명입니다:

    1. 발발:

      • 왜적의 침략: 당시 조선은 중국과 일본의 침략에 시달리는 시기였습니다. 일본의 아시나다 이토를 중심으로한 족발적인 침입으로 인해 왜적들이 삼포지역을 포함한 해안지역을 겨냥하여 침입하였습니다.

      • 왜병의 약탈과 파괴: 왜적들은 부산포, 제포, 염포 등에서 거주하고 있던 주민들을 살해하거나 포로로 잡아가며 도시와 시설물을 약탈하고 파괴했습니다.

    2. 끝:

      • 조선의 대응: 조선 정부는 삼포왜란 발발 후 왜적들의 진격을 막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고 방어에 나섰습니다. 이를 통해 조선은 왜병들을 격퇴하고 일부는 쫓아냈습니다.

      • 왜적의 철수: 조선 정부의 저항에 직면한 왜병들은 전란의 고비를 맞고 철수하였습니다. 조선의 저항과 전란으로 인해 왜적들은 약탈한 재물을 대부분 잃고,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 왜적의 재침: 그러나 삼포왜란 종료 이후에도 왜병들은 시기적절한 타이밍을 노려 조선을 침략하는 등 여러 차례의 왜란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삼포왜란은 조선 중종 때의 일련의 침략 사건 중 하나로, 왜병들의 약탈과 조선의 저항을 통해 종료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왜병들의 재침으로 조선은 여러 차례의 왜란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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