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흔히 누군가 실수를 하게 되면 돌아보고 반성하고 고치라는 의미로 " 너 자신을 알라 " 라고 충고를 하잖아요. 이 말을 남긴 소크라테스는 어떤 인생을 살았었나요.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남긴 말은, 사실 신전의 벽에 쓰여져 있는 말이고,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전쟁에 3번이나 참전했던 사람으로,
가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청년들이 전쟁터에서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인간과 국가와 법에 대하여 무한한 질문을 통해 구체적인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기를 원했는데,
전쟁영웅을 그리는 신화를 통해, 정부의 입장에서는 영웅주의를 부추겨 전쟁터로 청년들을 내몰아야하는데,
소크라테스가 청년들에게 전쟁에 나가는 것에 대하여 끝도 없이 회의하고 스스로 답을 찾으라고 했으니,
신성모독죄, 청년들을 부패시켰다는 죄로 사형선고를 내릴 만 했죠.
소크라테스가 뉘우치는 자세를 취했다면,
사형집행이 되지 않았을 텐데........
이 사람은 악법도 법이다고 하면서 독배를 마셔버립니다.
71세의 나이에 독배를 마셨네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더대왕으로 이어지는 제자관계도 있는데
소크라테스 자신은 글을 남기지 않았고
그에 대한 기록은 플라톤, 크세노폰,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파네스의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알렉산더는 헬라철학을 전세계에 퍼뜨리기 위해 전쟁을 한 사람이죠.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노준형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테네에 살면서 많은 제자들을 교육시켰는데, 플라톤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 활동은 아테네 법에 위배된다 하여 사형을 당했다. 당시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제도가 쇠퇴하면서, 사회적 황폐가 확대되는 상황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그 당시의 지배계급인 귀족계급을 대변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신흥계급의 출현으로 반민주주의적인 귀족계급이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종래의 그리스의 유물론적인 자연철학에 대립하여 그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기초로 하여 '영혼'에 대해 깊게 생각하면서 삶의 온당한 방법을 아는 것을 지식의 목적이라 하고 이로써 도덕적 행위를 고양시키는 것을 지향하였다.
즉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실천지(實踐知)를 중시하였다. 이러한 참된 지(知)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귀납법에서 찾고, 사람들의 대화에 의한 문답법에서 독단적인 잘못된 지식을 비판하고 제거하면서 일반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라고 불리우는데 그는 이것을, 진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의미에서 '산파술'(産婆術, 그 maieutikē)이라 칭하였다. '영혼'을 주제로 한 그의 학설은 정신주의적이고 관념론적인 것이고 이것은 그의 제자인 플라톤에게 계승되었다. 소크라테스의 저작은 없으나 그의 사상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 나타나고 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서 유명하지만 실제 그의 기록이나 일기 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소크라테스의 내용들은 모두 플라톤 등의 제자 등의 기록에 의해서만 그의 사상을 알 수 있습니다.
못생긴 외모로 고대 그리스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그는 제자인 미남 제자인 알키비아데스이 그를 찬영하는 연설을 하면서 주목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생을 철학의 제 문제에 관한 토론으로 일관한 서양 철학에서 첫번째 인물로 평가되고 있으며, 신성 모독죄, 청년들을 부패시킨 죄 등의 이유로 기소당해 사약을 마시고 처형을 당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소크라테스의 삶은 그의 죽음을 빼놓고 조명할 수 없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 신에 대한 경건치 못함과, 청년 타락죄로 이유를 애써 붙여놓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그가 다수 대중의 민주정이 아닌 몇몇 소수로 통치되는 과두정을 옹호했기 때문으로 보는 게 보다 타당합니다. 그는 '너 자신을 알라' 는 끊임없는 물음으로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며, 대중의 무지를 저격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민주정에 편에 선 아테네 시민들은 과두정 세력을 옹호하는 소크라테스를 고운 시선으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끝내 그를 고발하게 되고, 의도치는 않았어도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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