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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양241
빼어난양24124.02.11

조선시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부검하고 조사를 했나요?

조선시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꼭 지금처럼 부검도 하고 조사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부검을 맡거나 조사를 한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며 어떻게 처리햇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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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의문사나 갑작스러운 죽음, 범죄 피해 사망 등의 경우 관부가 부검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해부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부검과 조사의 정확도가 떨어졌습니다.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검시관은 이들 재료 등을 이용하여 시체의 머리부터 검안하기 시작하여 신장과 얼굴의 빛깔, 팔과 다리,피부의 손성 여부등 모든 신체 부위를 살펴보고 시체의 사망원인을 밝히려고 노력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시체를 부검하는 절차는 다음과 같은데.일단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사체가 있는 곳의 지방관이 먼저 제1차 시체검험을 행합니다.이를 초검(初檢)이라 하며 초검관(初檢官)은 검안서(檢案書)를 『무원록』의 시상식(屍狀式)에 의하여 상부관청에 제출하고

    인근의 다른 지방관은 초검관으로부터 사건을 인수받아 복검(覆檢:두번째 부검)을행한합니다.초검관은 그의 검시내용을 복검관에게 누설해서는 안 되도록 규정되었다. 복검관의 독자적인 검안서도 역시 상부관청에 제출된다.상부관에 제출된 초검·복검의 내용이 일치될 때는 이것으로 그 사건을 종결하게 되지만, 만약 두 검안의 내용이 일치되지 않을 때는 삼검이실시된되는데 삼검은 중앙과 지방에서 공동으로 실시하는데, 중앙에서는 형조의 낭관(郎官: 六曹의 5∼6품급 문관)이, 지방에서는 관찰사가 지명하는 차원(差員: 지방 관아의 관리)이 다시 세밀하게 시체를 검험한 뒤에 초검관·복검관들의 검안서를 참작하여 최후의 판결을 내리게된다.고 합니나. 그래도 사건에 따른 의혹이 풀리지 않거나 피해 당사자들의 원성이 있을 경우 사검(四檢)·오사(五査)·육사(六査)를 거치거나, 또는 국왕에까지 직소하는 예도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부검을 하던 사람은 지방 관아에 속하여 수령(守令)이 시체(屍體)를 임검(臨劍)할 때에 시체를 수습하는 일을 하던 하인인 오작인이니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