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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은 흉노를 압박하면서 황하 북쪽에 만리장성을 쌓아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였습다.
진의 북진 정책으로 위축되어 있던 흉노는 중원이 진한 교체기 혼란한 틈을 타 세력을 확대하고 남으로 한나라를 압박하였습니다. 한 고조 유방이 대군을 동원하여 흉노를 응징하는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황제가 7일 동안이나 포위되어 있다가 가까스로 풀려나는 수모를 겪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이 사건은 중원왕조와 유목왕조가 최초로 벌인 대결에서 중원왕조가 참패했다는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었고, 대외 관계를 설정할 때 교훈이 되었습니다. 또한 공주를 시집보내고 많은 예물을 주는 것도 선례가 되어 후세에 계속 답습했습니다. 흉노와 한이 형제의 관계를 맺었다고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흉노가 한으로부터 예물을 받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한이 조공국의 위상이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