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26대 왕이자 대한제국 황제인 고종은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과 아내 명성황후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고 대원군의 섭정으로부터 고종의 친정을 위해 명성황후가 자행한 것은 고무적이라고 보이며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하고 연호를 광무라고 하여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국가임을 선포했지만 이미 국운은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의미가 퇴색되었으며 이상설 이위종 이준 등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민평화회의에 파견하는 등 자주독립을 유지하고자 했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일제를 피해 198년 2울 아관파천을 단행하여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였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못하고 1897년 2월 25일 러일의 협상에 따라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으로 환궁하였습니다. 8월에는 연호를 광무로 10월에는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하고 황제즉위식을 거행했습니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고문정치를 단행하였고 11월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국가존망의 위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고종은 끝까지 자주국의 지위를 유지하고자 했으나 이를 지켜낼 힘을 갖지 못한채 1921년 승하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