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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17

우리나라 기생은 언제 처음 생겼나요?

옛날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보면 기생이 가끔 나오는 데 문득 우리나라 기생은 언제 처음 생겼는지 궁금하게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기생은 언제 처음 생겼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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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8개의 답변이 있어요!
  • 든든한소쩍새224
    든든한소쩍새22423.07.17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생은 고대의 유녀(遊女)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제사장의 역할에서 밀려난 무녀가

    기생화된 결과라고도 하며, 신라의

    원화제도가 폐지된 뒤 갈 곳 없어진

    원화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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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생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유신 장군이 말의 머리를 베어버린 일화에서도 기생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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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반도에서의 유래는 삼국시대로 올라가며 백제에서는 백제 유기장의 후예인 양수척이 수초를 따라 유랑하메, 고려의 이의민이 남자는 노를 삼고, 여자는 기적을 만들어 기를 만드니 이것이 기생의 시초라 생각됩니다.

    고구려에서는 정복활동을 하고 끌고온 여자들이 유녀 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역할을 했다고 하며 백제에서는 꽃쟁취라 했으며 신라에서도 천관녀 등을 보아 기생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삼국시대 이전에 이러한 계층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 이후 고려에서도 기생에 대한 기록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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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생을 고구려에서는 유녀라고 했고, 백제에서는 꽃쟁취라고 했고, 신라에서는 천관녀라고 했습니다. 즉, 삼국시대 때부터 기생이 존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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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알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기생은 조선시대의 배경인데 고려시대정도부터 비슷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얘기 합니다. 신라시대에서도 궁궐에서 춤과 노래를 하던 원녀가 있었고, 고려시대에서도 비슷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와서 부터 궁중에서 춤과 노래를 하던 내무반과 양반집에서 활약하는 외무반으로 나뉘면서 좀더 명확해졌다고 합니다. 확실한 문서는 잘 없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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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종의 사치노예(奢侈奴隷)라고 할 수 있으며, ‘기녀(妓女)’, 말을 할 줄 아는 꽃이라는 뜻에서 ‘해어화(解語花)’, 또는 ‘화류계 여자(花柳界女子)’라고도 하였다.


    이익(李瀷)은 『성호사설』에서 기생이 양수척(揚水尺)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양수척은 곧 유기장(柳器匠)으로서, 고려가 후백제를 칠 때 가장 다스리기 힘들었던 집단이었다. 이들은 원래 소속도 없고 부역에 종사하지도 않고,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버드나무로 키·소쿠리 등을 만들어 팔고 다녔다.


    후에 이들이 남녀노비로서 읍적(邑籍)에 오르게 될 때, 용모가 고운 여자를 골라 춤과 노래를 익히게 하여 기생을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기(妓)와 비(婢)는 원래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하고, 그 중 비가 기보다 먼저 발생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비나 기는 한 사회의 계급 분화과정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기생의 발생을 무녀(巫女)의 타락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즉, 고대 제정일치사회에서 사제(司祭)로서 군림하던 무녀가 정치적 권력과 종교적 권력이 분화되는 과정에서 기생으로 전락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원래부터 세습되어 내려온 기생 이외에도, 비적(婢籍)으로 떨어져내려와 기생이 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반역을 꾀한 역신(逆臣)의 부녀자들이다.


    고려시대에 근친상간의 금기를 범한 상서예부시랑 이수(李需)의 조카며느리를 유녀(遊女)의 적에 올린 경우와, 조선 초기 사육신(死六臣)의 처자들을 신하들에게 나누어준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조선 광해군 때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친정어머니를 제주감영의 노비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기생은 노비와 마찬가지로 한번 기적(妓籍)에 올려지면 천민이라는 신분적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기생과 양반 사이에 태어난 경우라도 천자수모법(賤者隨母法)에 따라 아들은 노비, 딸은 기생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생이 양민으로 되는 경우도 있었다. 즉, 속신(贖身)이라 하여, 양민부자나 양반의 소실이 되는 경우 재물로 그 대가를 치러줌으로써 천민의 신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한편, 기생이 병들어 제구실을 못하거나 늙어 퇴직할 때 그 딸이나 조카딸을 대신 들여놓고 나오는데, 이를 두고 대비정속(代婢定屬)이라 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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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생은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존재한 현상으로, 처음 등장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부터 보고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귀족 사회에서 기생들이 사회적 영향력을 가졌으며, 궁중이나 양반 가문에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세기 이후로는 기생 제도가 사라지고 기생 문화도 변화하였습니다. 기생은 한국의 역사와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으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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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생(妓生) 혹은 기녀(妓女)는 춤·노래·풍류 등으로 주연석이나 유흥장의 흥을 돋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관기(官妓) ·민기(民妓) ·약방기생 ·상방기생 등 예기(藝妓)의 총칭인데요! 천인 신분이었지만 춤, 노래, 시(詩) 등에 능한 예인(藝人)이었으며, 대표적인 기녀로는 16세기 사람인 황진이가 있습니다.

    기생제도는 조선시대에 발전하여 자리를 굳히게 되어 기생이라 하면 일반적으로는 조선시대의 기생을 지칭하기도 하며, 유교적 질서를 중시했던 당대 사회계급상으로는 천민에 속해 사회적 대우를 받지는 못했으나, 시와 글에 능한 지식인으로서 대접받는 특이한 계층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기녀 중에는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권번의 착취와 일본 제국주의에 항쟁한 김향화 같은 기녀도 있습니다.


    답변에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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