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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양241
빼어난양24124.02.23

조선시대에선 지금의 휴게소는 어느곳에서 역할을 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지금의 휴게소 역할을 했던것이 있었을텐데요.

그렇다면 지금의 휴게소는 조선시대에서는 어떤곳이 그 역할을 하였고 음식이나 숙박은 어떤 형태로 제공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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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미 삼국시대에 역참또는 역원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고려시대에 전국으로 확대되어서 조선시대까지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역참은 "공공기관"으로 일반인이 아예 못쓰는건 아니고

    조선시대까진 밤에 돌아다니는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일단 여관업도 하긴 했지만

    주요 업무는 말을 키우고 관리하고 대여하는 것이었으며

    이 말 대여 서비스는 관리들 전용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 중기 상업이 발달하면서 , 술과 음식, 그리고 숙박을 제공하는 업체인

    주막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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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지금의 휴게소는 예전에 주막 이였습니다. 주막은 시골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도회지에도 많이 있어 주막거리라는 이름이 생겼을 정도인데 대체로 주막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곳으로는 장터, 큰 고개 밑의 길목, 나루터, 광산촌 등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주막이 많기로 유명했던 곳으로는 서울은 물론이고, 서울에서 인천으로 가는 중간인 소사·오류동에 많았는데, 서울에서 출발하면 점심 때쯤 그곳에 도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영남에서 서울로 가는 문경새재에 주막촌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곳에는 나라에서 운영하던 조령원(鳥嶺院)·동화원(桐華院) 터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천안 삼거리는 능수버들의 전설과 함께 주막이 번성했던 곳이고, 경상도와 전라도의 길목인 섬진강 나루터의 화개(花開), 한지와 죽산물·곡산물의 집산지인 전주 등이 주막이 많았던 곳으로 꼽힐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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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염민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각 마을에 위치한 주막같은 곳이 휴게소와 비슷한 역할도 하였으며

    또한 조선시대에는 "역"이라는 곳이 존재하였는데

    사신들이 말을 타고 이동할때 중간에 휴식을 취하거나 숙박을 할수 있는 시설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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