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본명은 이척(李坧), 왕비는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왕릉은 유릉(裕陵)이다.
1874년 2월 고종과 명성황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1875년(고종 12년) 2월 세자에 책봉되었다가 1897년 대한제국 수립에 따라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1907년(융희 1년) 일본의 압력과 친일파 이완용 등의 강요로 헤이그특사사건의 책임을 지고 고종이 양위하자 그 뒤를 이어 즉위하였고, 연호를 융희(隆熙)로 고쳤다.
그러나 순종이 즉위하던 1907년 일본은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시키면서 사실상 국내정치는 일본의 손에 넘어갔으며, 한국 군대도 강제 해산되었다. 1908년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설립을 허가하여 일본의 경제침탈의 길이 열렸고, 1909년 7월에는 기유각서에 의해 조선의 사법권마저 강탈당했다. 그러다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가 그해 10월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해 암살당하자 조선 지배 야욕을 더욱 드러내었고, 결국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조약(경술국치)을 성립시키면서 대한제국은 멸망하게 된다.
이처럼 순종은 재위 시 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것은 물론 왕조의 멸망을 지켜봐야 했고, 이후 황제의 지위에서 왕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일제는 순종을 창덕궁(昌德宮)에 머물게 하고, 창덕궁 이왕(昌德宮 李王)으로 불렀다. 폐위된 순종은 창덕궁에서 거처하다가 1926년 4월 25일 승하하였다.
출처 : 시사상식사전